자카르타서 또 만난 블링컨·왕이 ‘평행선’… 중국발 해킹으로 소통 먹구름

ARF로 방중 24일 만 다시 만나
‘대만문제’ ‘대중제재’ 두고 이견
블링컨 “중국 해킹 책임 물어야”

토니 블링컨(오른쪽) 미국 국무부 장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당 중앙 외사판공실 주임)이 13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이 열리고 있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회담을 갖고 악수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블링컨 장관의 방중을 계기로 베이징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날 24일 만에 재회했다. 자카르타=AP 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당 중앙 외사판공실 주임)이 13일(현지시간) 회담에서 미중 군사 ‘핫라인’ 재개와 수출규제 등을 두고 이견을 보였다. 블링컨 장관의 지난달 방중 후 불과 24일 만에 다시 마주한 두 사람이지만, 중국 소행으로 추정되는 미국 정부에 대한 이메일 해킹 사건 등 양국 간 소통에는 먹구름이 꼈다.

미 국무부는 이날 블링컨 장관과 왕 위원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가 열리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회담을 갖고 현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블링컨 장관은 인도네시아에 도착하자마자 왕 위원을 만났다. 블링컨 장관은 이 자리에서 방중 당시 합의된 미중 고위급 소통 재개와 기후변화 대응 등 실무 협력에 대한 후속 조치 및 군사 핫라인 재개, 대만 해협 안정 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 중단과 리상푸 중국 국방부장 등에 대한 제재 철회를 요구했다. 중국 외교부는 왕 위원이 블링컨 장관에게 “중국에 대한 경제·무역 및 과학기술 탄압을 중단하고 불법적이고 무리한 제재를 취소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대만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엄정한 입장을 강조하면서 “미국은 내정 간섭을 하거나 중국의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왕 위원은 블링컨 장관에게 “회색 코뿔소를 결연히 저지하고, 블랙스완을 적절히 처리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회색 코뿔소는 뻔히 보이는 위험을 방치하다 오는 위기를, 또 블랙스완은 가능성은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파급효과가 큰 사건을 의미한다. 미중 충돌을 피하기 위한 미국의 정책 선회를 요구한 발언으로 보인다.

---

대화 복원 움직임에 암초 떠오른 ‘해킹’

6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 인공지능 콘퍼런스에서 발표자가 정보화 시대의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1일 중국에 기반을 둔 해킹 그룹이 미국 정부 기관과 연결된 이메일 계정을 해킹했다고 발표했다. 상하이=AP 연합뉴스

미국 외교당국이 공개한 두 사람의 회담 내용은 지난달 대화에서 큰 진전이 없었다. 다만 미중은 블링컨 장관에 이어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중국을 찾으며 경제 영역으로 대화의 채널을 넓혔고, 존 케리 미 기후변화 특사의 방문도 예정됐다.

이런 상황에서 전날 중국 소행으로 추정되는 이메일 해킹 사건은 암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중국 정부 관련 해커들이 방중 가능성이 나오는 러몬도 상무장관과 국무부 직원 등 25개 미국 기관의 이메일 계정을 해킹했다고 지난 12일 주장했다. 중국 외교부는 “허위 정보”라고 선을 그었지만 블링컨 장관은 이날 회담에서 “미국 정부, 기업,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중국의) 어떤 행동도 큰 우려”라며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관영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이 시기에 미국이 갑자기 중국 해커의 공격을 공개한 것이 우연인가”라며 “미국 측의 일관된 접근법상 여론상 우위를 차지하고 러몬도 장관의 협상력을 높일 수단으로 이를 이용하고 있을 수 있다”고 화살을 돌렸다. 이 매체는 지난달 블링컨 장관 방중을 앞두고도 미국을 상대로 한 중국발 해킹 사건이 발표됐다면서 “이 사건들은 대개 중미 관계의 중요한 시기에 발생하는데, 이는 양국 관련 이슈에서 진전이 없는 시기와 일치한다”고 짚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