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행령 만들어 대공수사 지휘하려는 국정원 온당치 않다
국가정보원이 시행령인 ‘안보범죄 등 대응업무규정’ 제정안을 13일 입법예고했다. 대공수사권 폐지로 인한 국가안보 공백 방지를 위해 ‘합동 수사기구’ 등을 통해 국정원이 수사에 계속 참여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구체적으로 국정원이 유류물과 임의제출물을 수거해 분석·검증하고, 출국금지를 요청할 수 있게 했다. 안보범죄 수사를 위한 유관기관 협의회를 설치하고, 협의회 위원장을 국정원 부서장이 맡도록 명시했다. 국정원장은 필요한 경우 광역지자체별로 지역 협의회를 구성·운영할 수 있고, 해당 협의회 세부 사항은 국정원장이 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시행령은 국정원의 대공수사를 금지하고 경찰에 수사권을 이관한 국가정보원법 개정 취지와 어긋난다. 2020년 말 개정된 국정원법에 따라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내년 1월 경찰에 넘어간다. 국정원이 대공 정보와 수사를 독점해 얻는 효율성보다는 인권유린과 권한 남용, 정치 개입 폐해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서류 위조와 감금, 고문 등으로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경찰도 수사권을 넘겨받기 위해 전국 경찰서에 안보수사팀을 신설해 인력 등을 보강해왔다.
시행령 제·개정을 통한 윤석열 정부의 ‘편법 통치’는 이뿐이 아니다. 지난해 정부는 법무부 시행령 개정으로 검찰의 수사권 축소 법안(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을 무력화했다. 지난 11일엔 전기요금과 통합징수하던 KBS 수신료를 분리징수토록 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TV 수신료를 분리징수해도 방송법상 국민의 수신료 납부 의무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달 13일엔 ‘보조금법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됐다. 일부 단체 비리를 구실로 정부가 보조금을 축소·폐지해 시민사회 자율성을 위축시키려 한다는 비판에도 모법은 그대로 둔 채 시행령을 고쳐 밀어붙였다.
대공수사는 필요하지만, 시행령에 기반을 둔 국정원의 대공수사 지휘·참여는 재고돼야 한다. 상위법인 국정원법에 대공수사가 금지돼 있는데 시행령에 증거물 수집·분석, 출국금지 요청, 수사협의회 관장 등을 명시하는 건 헌법 위반이고 국회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다.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은 국정원도 동의한 사안이다. 국정원이 대공수사를 다시 해야겠다면 지금이라도 여론을 수렴하고 국회 절차를 밟아 국정원법 재개정을 통해 진행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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