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휴가 20일 갑니다”...“우린 5일 쉬는 것도 힘들어요”

정승환 전문기자(fanny@mk.co.kr), 이유섭 기자(leeyusup@mk.co.kr) 2023. 7. 14. 19: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일 여름 휴가쓰는 대기업 직원
5일 휴가도 눈치보며 쓰는 중소기업
[사진 = 연합뉴스]
지난 4월 미국에서 열린 ‘뉴욕 국제 오토쇼’에 참석했던 현대자동차 직원 중 일부는 업무 일정을 마친 뒤 연차 사흘을 사용해 현지에서 휴가를 즐겼다.

현대차·기아가 올해부터 ‘해외 출장 후 현지 휴가’를 재개했기 때문이다. 해외 출장지에서 휴가를 쓸 수 있게 하는 제도는 2019년 시행됐으나 곧바로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유명무실해졌다.

현대차그룹 직원 A씨는 “미국·유럽의 경우 항공권 비용만 절약해도 큰 복지 혜택”이라며 “숙소도 출장 중 묵었던 곳에 연속해서 머물 경우 50% 이상 할인해주는 경우가 많아, 직원들이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직원 B씨는 최근 주말을 포함해 5일간의 강원도 휴가 일정을 겨우 잡았다.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 휴가다. A씨는 “신규 채용은 최근 5년간 이뤄지지 않았고, 퇴사자는 계속 생기면서 기존 인력이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회사도 직원들의 휴가 반납을 암묵적으로 종용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여름 휴가철이 시작됐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임금 차이 못지않게 ‘휴가의 질’ 에서도 격차가 뚜렷하다.

[사진 = 연합뉴스]
14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645개 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하계휴가 기간을 조사한 결과 ‘300인 이상 기업’의 경우 ‘5일 이상’이 57.4%로 가장 많았다. 반면 ‘300인 미만 기업’은 ‘3일’이 가장 큰 비중(53.5%)을 차지해 대조를 이뤘다.

대기업 가운데 삼성·SK·현대차 등 10대 그룹으로 한정해서 보면 휴가 기간이 열흘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었다. 매일경제 취재 결과 10대 그룹 중 7곳이 유급 하계휴가에 개인 연차를 붙이는 것을 제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휴가는 근로기준법상 유급 연차가 일반적이지만, 일부 회사는 단체협약을 통해 사측이 근로자에게 유급 하계휴가를 추가 제공하고 있다.

유급 하계휴가 일수가 가장 많은 곳은 HD현대중공업으로 9일에 달했다. 주말까지 포함하면 실제 휴가는 13일이 된다. 개인 연차를 더하면 최대 20일까지 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휴가·연차 제도의 차이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공고히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일자리를 구할 때 ‘워라밸’을 중시하는 20~30대 MZ세대의 중소기업 외면 현상이 더욱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단체협약에 여름휴가를 유급으로 보장받고 있는 대기업·공공기관 근로자와 달리 대다수의 중소기업 노동자는 본인 연차를 써서 휴가를 갈 수밖에 없다”며 “이는 구직자들의 회사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해외나 제주도 등에서 한 달 동안 머물길 희망하는 직원들이 늘면서 ‘워케이션(휴양지 원격 근무)’을 허용하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아직 제조업계에선 드물지만 네이버·LG유플러스·CJ ENM 등 다른 업종에선 앞 다퉈 도입하고 있다.

LG전자 직원 B씨는 “주말·여름휴가·안식휴가·개인연차까지 붙여 20일 정도 휴가를 내 미국에 갈 예정”이라며 “자녀를 미국 현지 어학 캠프에 보내기 위해 활용하는 직원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LG전자의 경우 유급휴가는 4일이지만 노조 창립기념일 대체휴일을 여름휴가와 붙여서 쓰는 게 일반적이라 실질적인 유급휴가는 5일이다.

유급 하계휴가 5일을 주는 대기업은 현대차와 롯데케미칼, 이마트 등으로 조사됐다.

현대차 생산직 직원들은 오는 31일부터 내달 4일까지가 하계휴가 기간이다. 직원 휴가에 맞춰 현대차는 공장 생산설비 정비를 실시할 예정이다.

서울 양재동 본사를 포함한 사무직은 본인이 원하는 기간에 휴가를 쓸 수 있다. 물론 개인연차를 붙여서 사용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포스코는 유급 하계휴가가 없기 때문에, 여름휴가를 가려면 개인연차를 써야 한다. 연차를 몰아 1주일 이상 장기 휴가도 가능하다.

반면 중소기업, 그 중에서도 IT 업종 스타트업이 아닌 일반 중소 제조기업의 경우, 대기업에 비해 휴가 일수가 짧은 것은 물론이고 워케이션이나 원격근무 등을 경험조차 못 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승용 경총 경제분석팀장은 “과거에는 임금 등 금전적 보상에 관한 관심이 주를 이뤘으나, 점차 워라밸 등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대기업에 대한 선호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