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열망한 태국, '대혼돈'으로...'40대 개혁 총리 선출'은 꿈이었나
찬성표 준 상원 13명, 군부 압박 불가피
사법 리스크에 불확실성 커지면 내부 균열
"군부가 우리 짓밟았다" 성난 시민들 저항
태국 총리 선출을 위한 13일 의회 투표에서 하원 제1당 전진당의 피타 림짜른랏 대표가 고배를 마시면서 태국 민주주의에 짙은 먹구름이 꼈다. 피타 대표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재도전을 다짐했지만 군부를 비롯한 기성 정치권은 그를 무너뜨릴 태세다. 정치적 혼란으로 14일 태국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이 흔들렸다. 앞으로 태국에 닥칠 혼돈의 시나리오를 정리했다.
①닷새 내 반대·기권표 돌려야
'40대 개혁 기수'를 자처한 피타 대표에게 기득 권력의 벽은 너무 높았다. 그는 재적 749석(상원 249석·하원 500석) 중 하원에서 311표, 상원에서 13표 등 324표의 찬성표를 얻는 데 그쳤다. 총리 당선 ‘매직 넘버’(375표)와 51표나 차이가 났다.
반대(182표)와 기권(199표)은 태국 언론의 예상보다 많았다. 표결에 참석조차 하지 않은 의원도 44명이다. 태국의 금기인 '군주제 개혁' 등 전진당이 지난 5월 총선에서 내건 개혁 공약에 반감을 가진 의원들이 다수라는 의미다.
피타 대표가 집권할 기회는 남아 있다. 의회는 19일과 20일 연이어 2, 3차 총리 선출 투표를 실시한다. 의원들의 마음을 돌리려면 전진당이 군주제 개혁 관련 입장을 누그러뜨려야 하지만, 피타 대표는 "철회는 없다”고 선을 그은 상태다.
2차 투표에선 피타 대표의 득표율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 군부가 의원들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원 의원들은 지난 총선을 통해 구성됐지만, 상원 의원들은 전원 군부가 임명했다.
②푸어타이당 어부지리 집권?
더 큰 문제는 개혁·중도 진영의 내부 분열이다. 행정부와 사법부를 손에 쥔 군부는 피타 대표와 전진당을 전방위로 위협하고 있다고 방콕포스트와 네이선 등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피타 대표가 미디어 주식 보유로 선거법을 위반했다면서 총리 후보 자격 박탈과 의원 직무 정지를 권고했다. 헌법재판소는 전진당의 군주제 개혁 핵심 공약인 '왕실 모독죄 폐지'의 위헌 여부를 검토 중인데, 판결에 따라 당 해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혼란이 길어지면 총선 직후 전진당 중심으로 결성한 연립정부 내 균열이 불가피하다. 블룸버그통신은 “피타 대표가 2차 투표에서도 패배하면 동맹의 지지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총리 선거는 완전히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피타 대표의 총리 선출이 끝내 무산되면 연정 구성 권한은 제2당인 친탁신계 푸어타이당으로 넘어간다. 푸어타이당이 탁신 친나왓 전 총리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을 앞세운 뒤 전진당과 결별하고 군부 진영과 손을 잡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고 태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부패 혐의와 실정으로 해외로 망명한 탁신 전 총리는 이달 중 태국으로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지난 12일 귀국 일정을 연기했다. 이를 두고 "푸어타이당이 차기 정부 구성 주도권을 쥐기를 기다린다"는 해석이 나왔다. 펀치다 시리부나부드 태국 마히돌대 정치학 교수는 “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긍정적 신호는 아니지만, 푸어타이당은 태국에서 벌어지는 정치 게임의 키플레이어”라고 말했다.
③“모든 시나리오가 악몽”
민주화를 고대하는 태국 유권자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전진당의 총선 선전은 민주화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이 반영된 결과인데, 의회가 이를 노골적으로 무시했기 때문이다. 13일 의회 인근에서 대형 화면으로 투표 상황을 지켜본 전진당 지지자 수천 명은 “군부가 우리를 짓밟았다”고 분노했다. 일부는 눈물을 흘렸다.
온라인에서도 “국민의 뜻을 존중하지 않은 의원들에게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피타 대표가 졸업한 태국 탐마삿대 학생회는 14일 상원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치·사회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외환시장에서 태국 바트화 가치는 떨어지고 주식시장도 약세를 보였다.
미국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의 동남아시아 담당자 피터 멈퍼드는 “앞으로 몇 주 동안 태국의 정치·사회적 불안이 고조될 것”이라고 내다봤고, 타이PBS는 “피타 대표가 총리 지명을 거부당한 순간부터 모든 시나리오가 악몽”이라고 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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