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FDA 처방전 없는 사전 피임약 첫 승인…임신중단권 논쟁에 미칠 영향은
효과 보려면 건강보험·가격 등 변수
임신중단 반대 단체, 피임약에도 반대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13일(현지시간) 프랑스 제약업체 HRA 파마가 만든 사전 피임약 ‘오필’을 의사의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도록 승인했다. 미국에서 처방전 없는 피임약 구매가 승인된 것은 처음이다.
경구 피임약은 1960년대부터 널리 보급됐지만 혈전증 부작용에 대한 우려 때문에 구매하려면 사전에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야 했다. 이번 조치로 미국 여성들은 내년 초부터 연령 제한 없이 편의점, 식료품점, 온라인 매장 등에서 사전 피임약을 간편하게 구입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FDA의 승인에 대해 “피임에 대한 접근을 획기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이정표”라고 보도했다. NYT는 전문가들은 피임약 처방전을 받으려고 병원을 방문하는데 시간, 비용 등의 어려움이 있었던 젊은 여성들, 특히 10대에게 오필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고 전했다.
청소년의 성 건강권 등을 옹호해 온 비영리단체 ‘청년을 위한 옹호자들’(Advocates for Youth)의 회원인 휘트론은 워싱턴포스트(WP)에 “젊은이들에게 이것(오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그들이 자신의 몸을 돌보는 데 중요한 것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미 언론은 지난해 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인정했던 1973년 ‘로 대 웨이드’의 결정을 뒤집은 뒤 오필 승인이 시급한 문제로 대두됐다고 전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해 6월 “임신중단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은 국민과 그들이 선출한 대표에게 반환된다”며 임신중단권 존폐 결정을 각 주 정부 및 의회의 권한으로 넘겼다. 미국에서는 이후 임신중단을 금지하는 주가 늘었다. 법률 소송이 진행 중인 지역들까지 포함하면 미국 50개 주의 절반인 약 25개 주에서 임신중단을 제한하는 법이 제정됐다.
이에 따라 원치 않게 임신한 여성들이 다른 주에서 임신중단 수술을 받거나 약을 복용하는 사례도 늘었다. WP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출산 연령의 약 4분의 1이 임신중단이 완전히 금지되거나 부분적으로 금지되는 지역에 살고 있다. 임신중단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피임이 더 절실한 문제가 된 것이다.
ABC방송은 이번 승인을 두고 “수백만 명의 여성에게 피임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연방 규제 당국의 전례 없는 조치”라고 보도했다.
다만 처방전 없는 피임약 구매 승인이 여성의 건강권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려면 건강보험 지원 등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NYT에 따르면 미국 내 대부분의 주에서 처방전 없는 사전 피임약은 공공의료보험인 건강보험개혁법(ACA)이 적용되지 않는다. 또 올 가을 발표될 예정인 오필의 소매 가격이 비쌀 경우 경제적 여유가 없는 여성들은 사는데 부담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
임신중단에 반대해 온 단체들은 처방전 없는 오필 구매에도 반대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미국의 생명을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Life of America )의 회장인 크리스찬 호킨스는 WP와의 인터뷰에서 FDA의 결정으로 젊은 여성들이 의사를 찾을 필요가 없게 됐다“며 ”범죄자들이 성적 학대와 강간 등 범죄를 더 쉽게 은폐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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