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 받는 여성은 표정 검열까지 해야 하나”… 비난받는 ‘시럽급여’ 망언 [플랫]

플랫팀 기자 2023. 7. 1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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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젊은 사람, 여자들이 실업급여 많이 받냐고? 실업을 많이 당하니까 그렇지.”
“임금보다 실업급여가 많았던 사람이 45만명이라고 하면, 노동급여 올릴 생각을 해야지 실업급여를 줄이는 게 말이 되냐?”
국민의힘과 정부가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14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센터 실업급여 관련 상담창구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문재원 기자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가 지난 12일 국회에서 개최한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 이후 후폭풍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공청회는 정부·여당이 검토 중인 월 180여만원 수준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뒷받침하는 차원에서 준비됐다. 당시 공청회는 ‘여자들, 젊은 청년들은 웃으면서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온다’ ‘평소에 사지도 못한 명품 선글라스나 옷을 산다’는 등 실업급여 수급자들을 폄훼하는 발언이 나와 논란이 됐다.

📌[플랫]“여자들 실업급여로 샤넬사고 해외여행” 여성을 부정수급자로 일반화한 여당 공청회

가장 논란이 된 발언은 현직 실업급여 담당 공무원의 입에서 나왔다. 고용노동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 담당자로 공청회에 발표자로 나선 이 공무원은 “(실업급여 신청 때) 남성분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오는데,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 웃으면서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온다. 그러고 자기 돈으로 일했을 때 살 수 없던 샤넬 선글라스를 사든지 옷을 사든지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공청회 직후 브리핑에서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라는 뜻의 ‘시럽(syrup)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한 말도 논란이 됐다.

올 초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당한 김모씨(30)는 14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실업급여를 받아본 입장에서 너무 화가 난다”고 했다. 김씨는 “매월 받는 것도 아니고 구직활동하는 것도 주기적으로 증명해야 한다”며 “엄밀히 따지면 공짜로 받는 돈이 아니고 내가 납부한 고용보험에서 받는 돈인데, 그렇게 꿀로 보이면 국회의원 그만두고 실업급여나 받으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실업급여) 신청서 내러 갈 때 전날까지 펑펑 울어 눈이 부은 채 갔다. 그래도 그 자리에선 웃으면서 상담했다”며 “예의상 그랬던 것인데, 여자는 웃는 표정으로도 욕을 먹어야 하나”라고 했다.

국민의힘과 정부가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14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센터에서 한 시민이 일자리 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문재원 기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당시 공청회가 실업 상태의 구직자·여성·청년들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총체적으로 드러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 누리꾼은 “실업급여로 샤넬 선글라스 운운하는 건 ‘기초생활수급 아동이 감히 돈까스 사 먹느냐’며 민원을 넣는 수준의 시비 걸기”라며 “그렇게라도 마음을 달래고 재충전하면 안 되는 거냐. 실업급여 받는 사람은 쌀 사 먹을 돈도 아껴서 좁쌀로 죽이라도 쒀서 먹어야 하냐”라고 비판했다. 다른 누리꾼은 “실업급여 받으러 가는 여성은 표정 검열도 해야 하고 돈을 어떻게 쓸지 허락도 맡아야 하냐”며 “이게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한 정부의 여성 인식이냐”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고용보험·실업급여 제도와 노동시장에 대한 당·정의 몰이해가 이번 논란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실업급여란 실업 상태에서 어느 정도 생활을 유지하며 취업을 준비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로 그 산정 기준을 우선 이해해야 한다”며 “그런 실업급여가 최저임금보다 높다는 건 돌려 말하면 최저임금이 생계를 유지할 수준이 안 된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실업급여 제도의 취지와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일부 오남용 사례를 가지고 제도의 존폐를 논하다 보니 실언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이유진 기자 yjleee@khan.kr · 전지현 기자 jhyun@khan.kr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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