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속 ‘쿵’하는 소리와 무너진 축대···홍제천 사고현장 가보니
“쾅 하는 큰 소리가 들렸어요. 교통사고가 났나 했는데 몇 시간 뒤에 대피를 하라더라고요.”
집중호우가 쏟아진 지난 13일 오후 6시35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홍제천 인근 축대가 무너졌다. 다행히 인명사고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지반이 추가로 무너질 우려가 있어 축대 주변 지역 거주자들에게는 대피하라는 안내가 이뤄졌다. 유모씨(46)는 어머니를 모시고 서대문구청이 마련해 준 모텔방으로 이동해 간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유씨와 같이 순식간에 이재민이 된 사람은 46명, 총 20가구였다.
14일 낮 12시. 3.5m 높이의 축대 벽면이 떨어진 연희동 사고 현장에는 가파른 계단이 위치한 좁은 골목에 떨어져 나온 돌덩이들이 부서진 채로 쌓여 있었다. 토사가 쏟아진 축대 아래 동네는 재개발 예정으로 현재 거주자는 거의 없는 곳이라고 했다. ‘출입금지’ 표시가 붙은 채 일렬로 늘어선 건물 대부분은 창문이 없거나 깨진 상태였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갑작스럽게 대피를 하게 된 주민들은 “서울 한복판, 대로변의 동네에서 이런 난리를 겪을 줄 몰랐다”고 했다. 50대 이재민 A씨는 “잠깐 대피하는 건 줄 알고 고양이를 두고 갈 뻔 했는데, 데리고 가길 잘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전날 급하게 나오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짐을 가지러 돌아와 포크레인으로 파헤쳐진 집 앞을 막막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A씨는 비가 그치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 보며 “오늘 중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하고 걱정했다. 거동이 불편해 대피하지 않고 집에 남겠다고 한 90세 주민 B씨는 공사현장을 창밖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지대가 높아 장마철에도 비 오는 것을 걱정해본 적 없다던 이웃 주민들도 간밤의 소식을 듣고 밤잠을 못이뤘다고 했다. 집을 가려면 축대 위를 지나가야 한다는 이문천씨(61)는 “예전에 와우아파트 무너지던 것 생각도 나고, 놀라서 어제 저녁에도 아래로 내려와봤다”고 했다.
재건축이 늦어져 방치된 지 오래된 빈집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한 주민은 “재건축이 미뤄진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평소 쓰레기 문제나 악취 등이 심했다”며 “석축 앞 집이 재개발됐다면 이미 제대로 벽이 정비됐을 것”이라고 했다.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정두영씨(60)는 “축대도 축대지만 저 집도 이미 기울지 않았나”라고 했다.
야간에 갑자기 이재민을 받게 된 모텔 주인들도 안타까운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70대 숙박업소 사장 C씨는 “어제 저녁에 구청에서 전화를 받고 이재민을 위한 방을 몇 개 빼두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손님을 일부 받지는 못했지만 “누구에게 어떤 일이 있을 지 모르는데, 돕고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기다렸다”고 했다.
당국에서는 도로 하부의 석축이 물러난 틈으로 많은 빗물이 스며들면서 다량의 흙이 빠져나오게 됐고, 이로 인해 축대 하부에 빈틈이 커지는 ‘공동 현상’을 사고 원인으로 보고 있었다. 이날도 빗줄기가 쉴 새 없이 쏟아졌지만 오전 8시부터 모래포대로 석축 면을 메우는 복구작업이 진행됐다고 한다.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늦어도 밤까지 작업을 마무리해 주민들이 댁으로 돌아가실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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