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쉬는 대기업…5일도 힘든 중기
지난 4월 미국에서 열린 '뉴욕 국제 오토쇼'에 참석했던 현대자동차 직원 중 일부는 업무 일정을 마친 뒤 연차 사흘을 사용해 현지에서 휴가를 즐겼다. 현대차·기아가 올해부터 '해외 출장 후 현지 휴가'를 재개했기 때문이다. 해외 출장지에서 휴가를 쓸 수 있게 하는 제도는 2019년 시행됐으나 곧바로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유명무실해졌다. 현대차그룹 직원 A씨는 "미국·유럽의 경우 항공권 비용만 절약해도 큰 복지 혜택"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직원 B씨는 최근 주말을 포함해 5일간의 강원도 휴가 일정을 겨우 잡았다.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 휴가다. A씨는 "신규 채용은 최근 5년간 이뤄지지 않았고 퇴사자는 계속 생기면서 기존 인력이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회사도 직원들의 휴가 반납을 암묵적으로 종용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여름휴가철이 시작됐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임금 차이 못지않게 '휴가의 질'에서도 격차가 뚜렷하다. 14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645개 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하계휴가 기간을 조사한 결과 '300인 이상 기업'은 '5일 이상'이 57.4%로 가장 많았다. 반면 '300인 미만 기업'은 '3일'이 53.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 대조를 이뤘다.
대기업 가운데 삼성·SK·현대차 등 10대 그룹으로 한정해보면 열흘에 육박하는 사례도 있었다. 유급 하계휴가 일수가 가장 많은 곳은 HD현대중공업으로 9일에 달했다. 주말까지 포함하면 실제 휴가는 13일이 된다. 개인 연차를 더하면 최대 20일까지 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MZ세대 中企외면 더 심해질수도
휴가는 근로기준법상 유급 연차가 일반적이지만, 일부 회사는 단체협약을 통해 사측이 근로자에게 유급 하계휴가를 추가 제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휴가·연차 제도의 차이가 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공고히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일자리를 구할 때 '워라밸'을 중시하는 20·30대 MZ세대의 중소기업 외면 현상이 더욱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단체협약에 여름휴가를 유급으로 보장받고 있는 대기업·공공기관 근로자와 달리 대다수 중소기업 노동자는 본인 연차를 써서 휴가를 갈 수밖에 없다"며 "이는 구직자들의 회사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유급 하계휴가 5일을 주는 대기업은 현대차, 롯데케미칼, 이마트 등으로 조사됐다. 삼성전자, 포스코는 유급 하계휴가가 없기 때문에 여름휴가를 가려면 개인 연차를 써야 한다.
반면 중소기업, 그중에서도 정보기술(IT) 업종 스타트업이 아닌 일반 중소 제조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휴가 일수가 짧은 것은 물론이고, 워케이션이나 원격근무 등을 경험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승용 경총 경제분석팀장은 "과거에는 임금 등 금전적 보상에 관한 관심이 주를 이뤘으나, 점차 워라밸 등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복지 시스템을 잘 갖춘 대기업에 대한 선호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승환 기자 / 이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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