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기업들 中의존도 낮춰라 … 손실봐도 구제 못해"
獨제조사 절반 中공급망 의존
지정학적 리스크 대응 위해
공급망 다변화로 완충 주문
디리스킹 채택불구 강경기조
폭스바겐 등 中투자 크게 늘려
獨기업들 정책 지지는 미지수
독일 정부가 처음으로 자국 최대 무역국인 중국에 대응하는 국가전략을 발표했다. 유럽 국가 중 대중국 무역 의존도가 유독 높은 독일이 지금까지 견지해온 중립 노선을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강경한 대중 '디리스킹(위험 완화)' 기조를 정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3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독일 신호등(사회민주당·자유민주당·녹색당) 연립정부는 내각회의를 열고 사상 처음으로 중국을 겨냥한 국가전략을 공식 의결했다. 독일 외무부가 작성한 64쪽 분량 대중국 전략 보고서는 자국 기업에 대중 의존도를 낮출 것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했다.
완전한 탈동조화를 뜻하는 '디커플링'은 거부하되, 독일이 공급망과 수출 시장을 중국에서 다각화해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취약성을 줄이는 디리스킹 기조를 공식화한 것이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교장관은 이날 내각회의에서 "다양한 무역 공급망이 구축될수록 독일 경제는 더 탄력적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보고서는 독일이 의약품·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정보기술, 부품, 전기자동차 배터리 원료에 이르기까지 산업 공급망 대부분을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보고서는 중국에 진출한 독일 기업이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손실을 봐도 정부는 이를 구제하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천명했다. 베어보크 장관은 보고서에서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기업은 더 큰 금융 리스크를 스스로 감당해야 할 것"이라며 "'위험한 기업 결정'에 대한 책임은 보다 명확해져야 한다"고 밝혔다.
대중국 전략이 수립됨에 따라 독일 정부는 구체적인 디리스킹 정책을 시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보고서는 사이버 보안, 감시 기술 등을 중심으로 한 수출 통제 대상 제품 목록을 조정하겠다는 정부의 기존 약속을 재확인했다. 지식재산권 유출 가능성이 있는 중국과의 연구개발 프로젝트에는 연방기금이 지원되지 않는 등 보다 까다로운 조건이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 안보에 민감한 기술 보호를 보장하기 위한 수출 통제 조치도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대중 의존도는 유로존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FT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과 프랑스를 뛰어넘는, 독일의 최대 교역국으로 지난해 양국 간 교역액은 약 3000억유로를 기록했다. 중국 시장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독일 일자리는 100만개가 넘고, 독일 제조기업 중 거의 절반이 공급망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을 만큼 불가분 관계를 맺고 있다.
다만 팬데믹과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시행을 전후로 독일은 대중국 전략을 재고할 수밖에 없게 됐다. 중국발 공급망 경색으로 모든 산업 분야에서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한 데 따른 부작용이 비로소 표면화됐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피해를 본 만큼 이를 거울삼아 대중국 전략을 보다 강경하게 수정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날 공개된 대중국 전략은 수개월간 발표되지 못한 채 표류해왔다. 대중국 강경 방침을 견지해온 녹색당 소속 베어보크 장관이 이끄는 외무부와 신중한 접근법을 지지해온 사회민주당 소속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총리실 간 첨예한 대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보고서를 통해 독일의 대중 강경 노선이 비로소 정립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위르겐 마테스 쾰른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관한 어려운 논쟁을 피하고자 했던 독일에 이 전략은 "사실상 순진함의 종말이 시작된 것"이라고 짚었다. 미국 리서치 회사 로디엄그룹의 노아 바킨 유럽·중국 전문가도 "기업 활동을 할 때 지정학적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는 중요한 신호를 자국 기업에 보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폭스바겐 같은 대기업이 이러한 대중국 전략을 지지할지 미지수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로 독일 화학업체 바스프, 자동차 제조회사 폭스바겐 등 주요 기업은 최근 중국 투자를 배로 늘리는 등 정반대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랄프 브란트슈테터 폭스바겐 중국 지역 총책임자는 "중국은 역동적인 성장 시장이자 핵심 기술 혁신의 원동력"이라며 "폭스바겐그룹은 중국 투자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NYT는 보도했다.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도 모두 중국을 최대 시장으로 간주하고 있다.
독일산업협회(BDI)는 "이번 대중국 전략이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처하는 것과 실질적 경제 관계를 추구하는 것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독일 정부는 이 보고서를 통해 대중 디리스킹 외에 중국의 안보 위협을 견제한다는 기조도 명확히 했다. 중국은 세계 인구 가운데 60%가 거주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갈수록 공격적으로 지역적 주도권을 요구하며 국제법 원칙을 흔들리게 만든다는 게 독일 정부의 지적이다. 이에 독일 정부는 인도·태평양 내 파트너와 함께 안보 정책적, 군사적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중국 정부는 이날 베를린 주재 중국대사관을 통해 해당 보고서에 명기된 전략에 강하게 반발했다. 베를린 주재 중국대사관은 성명을 내고 "중국 내정에 간섭하고 중국을 왜곡하고 비방하며 심지어 중국의 핵심 이익을 훼손하려는 노력에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전했다.
[한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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