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 ‘물량받이’ 만드는 선행매매, 리딩방 개설 어려워지고 철퇴 강해진다
지난달 말, 이른바 ‘선행매매’ 수법으로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는 유명 유튜버 김모씨가 2월 기소됐다는 소식이 뒤늦게 전해졌다. 김씨는 자신의 유튜브 시청자인 개인 투자자들을 속칭 ‘물량받이’로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미리 주식을 매수해 놓고 개미들을 현혹해 그 종목을 고가로 사들이도록 희생양 삼는 방식이다. 검찰은 김씨가 2012년 6월부터 작년 6월까지 1년여간 5개 종목을 개미들에게 추천하고 얻은 부당이익을 59억원으로 추산한다.
이같은 주식 선행매매 방식의 불공정거래가 여전히 성행하는 가운데, 최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이 강도 높게 개정되면서 형사 처벌과 별도로 고액의 과징금을 매길 수 있게 됐다. 지난달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따르면, 선행매매 등 불공정거래 행위를 한 자에게는 부당이득의 최대 2배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아울러 선행매매 범죄에 주로 활용되는 온라인 주식 리딩(leading)방을 투자자문업으로 규정해 진입 장벽을 높이는 법 개정안도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며 입법을 위한 첫발을 뗀 상태다. 선행매매를 어렵게 만들고 처벌 강도를 대폭 높이는 입법 장치가 잇달아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선행매매 부당이득 2배까지 과징금 물린다
선행매매는 법적 용어는 아니다. 원래는 기관 펀드매니저나 주식 중개인이 고객의 주문을 체결하기 전 동일한 증권을 자기계산(거래 상 자기에게 돌아오는 손해나 이익을 자기가 책임지고 계산하는 일)으로 매매해 부당이득을 챙기는 것을 말한다.
폭넓은 의미의 선행매매는 ‘미공개 정보로 이득을 취하는 주식 거래’를 모두 포괄한다.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차명계좌 등으로 미리 주식을 매수해놓고 해당 종목에 우호적인 리포트를 작성하는 스캘핑(scalping)도 국내에선 선행매매와 혼용되는 경향이 있다. 김씨처럼 특정 종목을 미리 사놓고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이를 홍보하는 행위, 카카오톡 주식 리딩방에서 회원들에게 특정 종목 매수를 추천해 사게 만든 뒤 고가에 팔아 차익을 남기는 행위도 모두 선행매매에 해당된다.
선행매매의 주체가 금융투자업자라면 자본시장법 제54조(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직무 상 알게 돼 정당한 사유 없이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선 안된다)의 규제를 받지만, 주식 리딩방이나 유튜브 채널에서 종목을 추천하는 사람들은 금융투자업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자본시장법 제178조에 의거해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로 처벌 받을 수 있다. 이 조항은 “누구든지 금융투자상품의 매매와 관련해 부정한 수단, 계획, 기교를 사용하거나 시세 변동을 도모할 목적으로 풍문의 유포, 위계(속임수)의 사용, 폭행 또는 협박을 해선 안된다”고 규정한다.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을 지낸 김영기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가 54조보다 적용하기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법정형 형량이 높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자가 아니더라도 현행법으로도 얼마든지 처벌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들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따라 부당이득의 최대 2배를 과징금으로 물 수 있게 됐다. 최근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은 불공정거래 부당이익을 ‘총 수익에서 비용을 뺀 값(선행매매의 경우엔 ‘주식 매도 단가에서 매수 단가를 뺀 차액’에 주식 수량을 곱한 값)’으로 규정하고 그 2배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전까지는 형법의 영역에서 벌금을 내는 데서 그쳤다면, 이제는 행정 처분인 과징금 부과를 통해 범행을 시도할 엄두조차 못 내게 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수 금융법전략연구소 대표는 “미국과 일본, 유럽에서는 불공정 거래로 형사 처벌을 안 받더라도 행정 제재를 통해 과징금을 물고 있다”며 “우리 금융위도 지난 20여년 간 과징금 제도 도입이 숙원사업이었는데, 이번 법 개정을 통해 범죄로 인한 부당이득을 철저히 환수하고 일벌백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실제 수사 단계에서 선행매매 혐의를 입증해 부당이득을 환수하기까지는 여전히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애널리스트들이나 유사투자자문업자들은 ‘내 리포트나 정보는 단순한 의견 개진이며 참고 자료일 뿐, 확정적 정보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제공한 정보가 주가를 부양했다고 단정 지을 만한 분명한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리딩방 허들 높인 개정안, 정무위 소위 통과…입법 첫발 떼
발효를 앞두고 있는 위 자본시장법 개정안 외에도 주식 리딩방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또 하나의 개정안이 지난달 27일 정무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대우증권 사장을 지낸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1명이 지난 2021년 6월 발의한 법안이다.
이 개정안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 온라인 양방향 채널을 이용한 유료 회원제 리딩방을 ‘투자자문업’으로 규정한다. 현행법에서 이들은 ‘유사투자자문업자’에 불과해, 진입 요건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 투자자문업자가 자본금과 운용 전문 인력 등 인적·물적요건을 갖추고 금융당국에 등록해야 하는 반면, 유사투자자문업자는 일정한 서식만 갖고 신고하면 업을 영위할 수 있다.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유료 리딩방 운영자는 반드시 투자자문업자로 등록해야만 한다. 투자자문업 등록을 하지 않으면 일방향 채널을 통한 영업만 할 수 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장을 지낸 김락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이 개정안의 취지는 유사투자자문업자들에게 더 강력한 의무와 제재를 가해 반사적 효과로 리딩방을 위축시키겠다는 것”이라며 “리딩방을 근절하기는 어렵겠지만, 강력한 제재는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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