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기다리지도, 참지도 않는

2023. 7. 1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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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가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새로운 사업을 통해 달라질 세상을 상상하는 것도 좋고, 하나의 문제에 인생을 걸고 몰두하는 사람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에서는 어떤 소설로도 접하기 어려운, 뜨겁고 펄떡거리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내가 가장 매력을 느끼는 지점은 큰 성공을 거두고 신화가 완성되는 결론부가 아니라 창업을 결심하게 되는 도입부다. 이전까지는 사업가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스스로를 평범하다 여겨 온 한 사람이 익숙한 세계를 떠나 천국보다 지옥이 가까운 낯선 세계로 진입하는, 바로 그 부분 말이다.

1000일 동안 셰에라자드가 들려준 이야기처럼, 창업가의 그것도 비슷한 내용 없이 모두 다르다. 그러나 그곳에는 반드시 두 명의 한 사람이 등장한다.

첫 번째 한 사람은 세상이 방치한 문제로 고통을 겪는 이. 그는 적응과 인내를 강요받아 왔다. 그에게 절실한 문제지만 더 많은 이에겐 별것 아니고 심지어 존재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는 깨닫는다. 내가 참을 일이 아니라고. 이어 두 번째 한 사람을 마주한다. 다양한 우연과 필연으로 첫 번째 이의 고통에 눈감지 못하게 된 이. 당사자이거나 가족 혹은 친구일 수도 있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럴듯한 인연의 고리가 없는 관계도 있다. 그는 지금껏 자기보다 현명하고 선량한 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려 왔다. 하지만 그는 깨닫는다. 다른 사람은 오지 않는다고.

창업이란 한 사람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도, 무언가를 참는 것도 멈추고, 스스로 한 사람을 구하자 맘먹으며 시작하는 이야기다. 고통 받는 한 사람의 희생을 끝내고, 지켜만 보던 한 사람의 무력을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기다림 대신 부딪힘을, 안정 대신 혼란을 택한 그는 미지의 모험담을 몸과 마음으로 써 내려간다. 한 창업가는 고백했다. 이것은 수영을 못하는 이가 족보 없는 영법으로 생존하면서 바다에 떠 있는 것을 모아 배를 만들면서 대양을 건너 신대륙을 찾는 이야기라고. 그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듯했지만, 점차 이야기가 그에게 건네는 말에 귀 기울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 사람을 계속 사랑해라, 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창업에는 실패와 좌절이 많아서 때로는 포기하라는 말이 자애로워 보이기도 한다. 한 사람으로 세상이 바뀌느냐는 냉소도 흔하다. 하지만 한 사람도 없는데, 세상이 바뀔까. 창업가의 이야기는 말과 글이 아닌, 한 사람을 위한, 한 사람의 절실한 생각과 행동이다. 이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세 번째 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창업가의 이야기를 통해 마침내 제 이야기에도 눈뜬 사람들. 어느새 다른 이의 이야기에 올라탈 수 있게 된 사람들이다. 내가 아직 세 번째 한 사람이 아니라면, 한 사람을 위한 이야기를 돛 삼아 폭풍의 바다를 건너는 한 사람을 응원하자. 오늘도 창업의 바다에는 한 사람에서 시작된 작은 배들이 모험의 닻을 올린다. 그가 낡은 지혜로 위장한 암초를 피해 끝내 신대륙을 만났다는 더 큰 이야기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권보연 인터랙티브 스토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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