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절 영웅이었던 간호사들, 이제는 '정치파업'한다고?

2023. 7. 1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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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신의칙' 저버린 복지부가 간호사들의 진짜 사용자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 컨설턴트]
조합원 8만5000명을 둔 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이 노조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업에 들어갔다. 일각에서는 '정치' 파업 혹은 '불법' 파업 운운하지만,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은 '합법' 파업이다. 파업 요건을 규정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조항들을 모두 거쳤기 때문이다.

이번 파업에 참가한 145개 사업장의 조합원 6만6000명은 법령에 따라 파업 찬반투표를 거쳤다. 투표 참가율은 83%를, 파업 찬성률은 91%를 넘었다. 조합원의 압도적인 지지 하에 파업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이유는 단체교섭 상대방인 병원 사용자들이 "눈치 보기와 시간 끌기 등 불성실 교섭으로 일관하면서"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노조의 7대 요구

정부는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을 두고 '정치파업' 낙인을 씌운다. 하지만, 노조의 7대 요구에 정치적인 것은 없다. 대신 노사 양자와 노사정 3자 혹은 노정 쌍방이 함께 풀어야 하는 보건의료 제도와 정책이 주를 이룬다.

파업 요구는 7개로 집약된다. (1)비싼 간병비 해결을 위해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 전면 확대 (2)근무조별 간호사 대 환자수 1:5로 환자안전 보장 (3)적정인력 기준 마련과 업무범위 명확화 (4)불법의료행위 근절을 위한 의사인력 확충 (5) 공공의료 확충과 코로나19전담병원 회복기 지원 확대 (6)코로나19 '영웅'에게 정당한 보상 (7)노동개악 중단과 노동시간 특례업종 폐기가 그것이다.

윤석열 정부도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이 법률상 합법적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는 "파업이 절차를 밟아서 진행하고 있다"는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의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파업이 절차상 하자가 없다면 정부가 할 일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인 단체행동권이 제대로 행사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윤석열 정부는 그럴 의도가 없어 보인다.

정부는 협상 당사자가 아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노조가 발표하고 발언하는 내용을 보면 파업의 권한 범위를 벗어난다"면서 "이 부분이 정당한 것인지 여부에 대해 법적인 검토를 면밀히 거쳐 필요하다면 업무복귀 명령까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노조법에서 허용하는 파업은 근로조건 협상이며 협상 당사자는 사용자이지 정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박 차관은 "(노조가 정부 정책에 대해) 당장 하라는 식으로 스케줄을 제시하고 정부가 하는 것에 따라 파업을 중단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정부를 파업 대상으로 보는 것이고, 국민을 겁박하는 것"이고 말했다.

이 주장은 얼핏 보면 맞는 말 같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지금까지 3년이 넘도록 보건의료업계의 노사 양자 혹은 노사정 3자 사이에 이뤄진 협의와 교섭의 내용을 고려한다면 박 차관의 주장은 거짓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7월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산별 총파업 대회에서 인력·공공의료 확충,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해결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력부족으로 붕괴 중인 병원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코로나19 사태 3년 동안 최일선에서 사투를 벌인 병원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하락했다. 물가상승률 대비 임금인상률이 낮았기 때문에 3년간 공공병원이 -8.5%, 사립대병원이 -4.4%의 임금 하락을 기록했다.

직능단체 가운데 변호사협회 다음으로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기득권 카르텔'인 의사협회의 반대로 지난 20여년 동안 의대 정원이 동결되어 의료 현장에 의사가 부족하다.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의사가 할 일을 간호사가 대신하는 불법행위가 만연해 있다.

주요 선진국의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은 간호사 1명당 환자 5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간호사 1명당 작게는 환자 15명에서 많게는 40명을 감당하고 있다.

신입 간호사 절반이 1년 안에 사직하는 현실

감당할 환자수는 선진국보다 3배에서 8배 많고, 의사 업무까지 불법적으로 강제 당하는 현실에서 간호사를 위한 인간적인 근무환경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이런 문제들로 해마다 신규간호사의 53%가 취업한지 1년도 안되어 병원을 떠나고 있다. 그 결과, 전체 간호사 면허소지자 48만 명의 절반인 25만 명만 의료 현장에서 버티고 있다.

사회와 개인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여 양질의 간호인력을 양성해 놓았지만,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양성된 인력의 절반이 의료 현장을 이탈한 상황이다. 변호사와 의사 같은 '기득권 카르텔' 직업군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9.2 노정합의, '신의칙'을 저버린 보건복지부

이러한 의료 현장의 구조적 문제들은 코로나 19 위기가 터지면서 '복합위기'로 폭발했고,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의료 현장 수준의 노사 양자를 넘어 보건의료산업 차원에서 정부 정책을 다루는 사회적 대화체가 만들어졌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사회적 대화체를 통한 정보교환과 협의가 꾸준히 진행되었다. 그 결과, 2021년 9월 2일 보건복지부와 보건의료노조는 '노정합의문'을 체결하게 된다. 파업의 7대 요구 중에서 '노동개악 중단'을 뺀 6개 요구는 '9.2 노정합의'에서 정부가 노조와 함께 추진해 나가기로 이미 합의한 것들이다.

안타깝게도 보건복지부는 2021년 9월 2일 합의 이후 2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합의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스케줄을 밝히지 않고 있다. 거의 달마다 노정 협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한 것은 지킨다는 '신의'(in good faith)의 원칙이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기본 원리임에도 이를 부정하는 사태가 정부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의료기관 뒤에 숨은 진짜 '사용자' 보건복지부

우리나라의 의료기관은 90%가 민간, 10%가 공공이다. 미국 사례에서 잘 드러나듯 민간병원들은 돈벌이에 혈안이 될 수 밖에 없다. 미국만큼이나 민간 의료기관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상당한 수준의 공적 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것은 정부가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보건의료체제를 관리하고 통제하기 때문이다.

소유는 민간이 지배하지만 재정은 국가가 통제하는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제도는 국제적으로 '민간-공공 파트너십'(private-public partnership)의 모범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를 쉽게 풀이하면, 한국의 보건의료체제는 민간 소유가 지배적이기는 하지만, 그 돈 줄을 정부가 꽉 쥐고 있기 때문에 보건의료체제의 노사관계에서 사실상의 사용자(employers)는 정부, 즉 보건복지부가 된다는 사실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착취체제

돈 줄을 '원청'이 쥐고 '하청'에 대한 관리와 통제를 가하면서 일상적인 근로조건과 노사관계의 책임은 '하청'이 져야하는 현실을 '노동시장 이중구조'라 부른다. 재미난 점은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두고 '착취체제'라 비판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노동시장은 이중구조의 착취체제로 넘쳐나는데 그 대표적인 업종이 보건의료다. '원청'인 정부가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활용해 '하청'인 의료기관을 통제하고, '하청' 의료기관은 이윤을 조금이라도 남기고자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인 것이다.

ILO "정부 정책은 파업 대상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정부 정책은 파업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회원국으로 있는 국제노동기구(ILO)는 “정부가 채택하는 정책이 노동자나 사용자에게 바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파업의 정치적 측면과 직업적 측면을 구분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로부터 어려움이 생긴다”고 말한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ILO 는 "원칙적으로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이익과 직업적 이익을 지킬 책임이 있는 노동조합은 자기 조합원과 노동자 일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사회경제적 정책, 특히 고용, 사회적 보호, 생계기준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자기 노력의 일환으로 파업 행동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ILO가 채택한 국제노동기준 가운데 노동자의 파업권을 보장한 게 '결사의 자유와 조직할 권리' 협약 87호다. 이 협약은 2021년 4월 대한민국 정부가 비준하여 작년 4월부터 국내법적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ILO가 파업 대상으로 인정한 정부의 사회경제적 정책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보건의료 정책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돈은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파업의 첫번째 요구인 간병비 해결을 위해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을 전면 도입하는 데 한 해 2~3조 원이 든다고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돈이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작년 7월 발표한 윤석열 정부의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대기업의 세금을 깎아준 법인세 감면액이 4조1000억 원에 달하고, 다주택자 종합부동산세 감면액은 1조7000억 원에 이른다.

한해 대기업과 부자에 대한 한해 감세액은 6조 원에 달하며, 이를 윤석열 정권 임기 5년 전체로 보면 무려 30조 원이다. 다시 말해, 환자 간병비 경감을 위한 간호간병통합병동 확대와 간호사 증원은 국가 재정의 국민건강보험 지원을 통해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인 것이다.

스웨덴 노조가 파업을 하는 이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정부가 뜻이 있다면 대기업과 부자를 위한 감세 조치를 중단하고, 그 재원을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보건의료체제 개선에 투입하면 된다.

국제노조 회의에서 만난 스웨덴 노조간부에게 스웨덴 노조는 언제 파업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노조가 사용자나 정부와 합의를 했는데, 사용자나 정부가 그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우리는 반드시 파업을 한다. 그런데 대개는 사용자와 정부가 합의를 지킨다. 그래서 우리는 파업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런 게 '신의의 원칙'이다.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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