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진의 막전막후] 보조금이란 악습
역도 황제 장미란 용인대 교수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됐다. 그가 역도 세계를 제패한 데 이어 체육계 정책 결정권자로 발탁된 배경에는 '반복'이 있다. 장미란 차관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여자 역도 역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워낙 반복하는 걸 좋아한다"며 연습을 반복해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겸양했다. 고통을 인내하며 꾸준히 반복한 결과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는 거다.
어떤 반복은 역도 황제 겸 문체부 차관을 만들었지만 어떤 반복은 실패를 만든다. 악습이 반복되면 그렇다. 부정하게 집행돼왔던 보조금이 대표적인 악습이다. 윤석열 정부는 건전 재정 기조로 전환하면서 보조금 부정 수급의 반복을 끊겠다고 천명했다. 최근 감사 결과 사업 규모로 1조원이 넘는 보조금 부정 사용 실태가 드러난 만큼 대수술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예산 편성 작업에 개입하는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매년 예산을 짤 때 보조금 예산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관성적으로 유지하거나 늘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금처럼 예산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들여다보면서 재구조화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먼저 가져가는 게 임자"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사각지대에서 방만하게 운영됐던 보조금 예산을 이번에야말로 재편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의미다. 기획재정부는 내년 예산을 짜면서 각 부처에 보조금 등 예산을 줄여 내라고 요구하고 성과를 내지 못했던 사업 지원금은 칼질을 하고 있다. 부정 사용이 적발된 시민단체 보조금이 삭감 1순위에 올랐다는 후문이다.
우려되는 지점은 줄줄 새는 혈세를 줄이겠다는 의지가 국회 심사 과정에서 흐려지는 것이다.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보면서 특정 부문 예산의 증액을 요구할 권한이 있다. 다만 정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 심의가 이뤄지는 만큼 외풍이 세게 불 수 있다. 정부가 뚝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설득에 나서야 한다.
반복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악습은 '내로남불'이다. 정부가 악습을 없애겠다며 뽑은 칼은 내 편과 네 편 모두에게 날카로워야 한다. 내 편에 대해서는 무딘 잣대로 평가하다가 상대편한테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댄다면 국민의 반감을 사는 데 그치고 말 것이다. 보조금 개혁에 있어 이 지점을 특히 신경 써야 한다. 보조금 개혁은 내 편 네 편 가리지 않고 "정부 돈은 눈먼 돈"이라는 비웃음이 나오지 못하도록 분배와 수령 시스템을 공정하게 재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보조금 지원 기준과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내로남불' 지적을 피해 갈 수 있는 핵심이다. '내 편이 아닌' 단체들의 돈줄을 죄는 수단으로 변질된다면 '내로남불'의 반복일 뿐이다.
이 같은 반복을 끊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주던 혜택을 다시 거둬들이자면 반발이 거세고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인데 그 유혹을 억누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해내면 금메달감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실 비서관 5명을 각 부처 차관으로 임명했다. 장미란 문체부 2차관과 함께 인사가 났다.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을 뜯어고치고 현 정부 정책 기조를 부처에 뿌리내리는 취지라고 한다. 결과가 어떨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악습의 반복을 끊는 한 수가 될지 국민들이 두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홍혜진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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