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소통] 연금생활자 말고 연금술사로 사는 법

2023. 7. 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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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으로 술 사며 겸손하게
지혜 구하는 초심자의 마음
퇴직 후 제2황금기 불러와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하루 일정 소화하느라 얼마나 바쁜지 몰라요." 직장을 그만둔 직후 사람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다. 충분히 공감된다. 바쁜 직장생활을 하느라 미뤄놓았던 모임에 참석하다 보면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갑자기 찾아온 빈 시간과 허전한 공간에 익숙지 않아 필요 이상으로 무언가를 가득 채우려는 심리도 없지는 않다. 그렇게 6개월쯤 지나다 보면 모임 요청이 점차 줄어들고 공허하다는 느낌도 온다. 정년퇴직에 몸과 마음의 피곤함이 극단에 달하는 번아웃, 환갑과 중년의 위기까지 겹치는 3각 파도를 만나는 시기다. 가까운 동료가 재취업을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진심으로 축하 인사를 건네기 힘들다. 왜소해지는 자기 자신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10년 전 이맘때 나도 직장 문을 나와 광야에 홀로 던져진 신세가 되었다.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자유 직업인의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군대 두 번 가는 악몽을 종종 꾸던 것을 보면 한 개인에게 퇴직은 우주가 상실되는 혹독한 경험인 듯하다. 그러던 내가 요즘 공무원과 기업을 대상으로 제2의 인생 출구전략에 대해 자주 강의하고 있으니 세상일은 참으로 알 수 없다. 퇴직은 내게 고통이면서 동시에 선물이었다.

퇴직은 황혼기의 진입인가 아니면 황금기의 시작인가? 우리는 황혼기라는 인식에 짓눌려 있다. 그러나 미국 인류학자 메리 캐서린 베이트슨이 강조한 것처럼 평균수명의 증가는 노년기에 진입하기 전, '또 한 번의 성년기'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사 이래 처음 경험하는 세대로, 평생 하고 싶은 취미와 꿈에 도전할 시기라는 뜻이다. 인생의 진정한 황금기가 도래한 것이다. 직장인에게는 연금이라는 최소한의 보장 장치가 있으니 허황된 꿈은 아니다. 공무원이나 교직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황혼기가 아닌 황금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연금생활자로 만족하지 말고 연금술사가 돼야 한다. 연금술이란 평범한 쇠붙이를 황금으로 만드는 기술을 의미하지만, 100세 시대의 연금술사는 '연금으로 술 사는 사람'을 뜻한다. 직장을 나오면 누구나 초보자, 그것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닮고 싶은 사람이나 관심 있는 분야의 전문가에게 술을 사면서 적극적으로 정보와 지혜를 구하자는 말이다. 물론 술이 아닌 밥, 커피, 팥빙수로 바꿔도 좋다. 의논할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황금이 되기도 하고 쓰레기가 되기도 한다.

나는 요즘 경북 의성에서 새로운 황금을 발견했다. 의성은 KTX가 닿지 않기에 밤 9시에 강의를 끝내고 야간에 운전하며 서울로 돌아오기에는 무척 먼 곳이다. 그럼에도 의성도서관에서 5주 연속 강의하게 된 것은 일면식도 없던 경북대학교 퇴직 교수님의 간곡한 요청 때문이다. "강연료도 많지 않고 힘드시겠지만, 도농복합지역에도 양질의 여행 인문학 강의를 전했으면 합니다. 꼭 도와주세요."

서울이 아니고 대도시도 아닌 곳에서 유럽 인문학 강의가 받아들여질까 조금은 걱정했는데, 비가 오는 날에도 강의실은 가득했다. 도서관장은 팔이 부러져 부목을 한 채로 강의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중년 여성 수강생의 고백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 별로 배운 게 없어요. 산티아고 가는 길은커녕 해외여행을 언제 한 번이나 해볼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꿈을 놓지 않기 위해 강의를 듣습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보람이며 내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연금술사'에서 파울루 코엘류가 말했던 것처럼 인생을 살맛 나게 해주는 것은 꿈이 실현되리라고 믿는 것이다. 지난주에는 의성의 특산물 마늘 한 접을 선물로 받았다. 나는 아끼던 와인으로 화답했다. 무엇이 황금인가? 지금 내게는 마늘이 황금이고 수강생들이 곧 연금술사다. 퇴직은 나를 매일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손관승 리더십과 자기계발 전문 작가 ceonoma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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