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미래] 조선시대에도 우리말부터 공부했다
장지연 대전대 교수의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푸른역사 펴냄)는 신선한 책이다. 이 책은 언어라는 눈을 통해 한국사를 바라본다. 인간은 모두 자기 언어의 한계 안에서만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언어가 없을 때 과거는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과거를 바라볼 때, 우리는 한글과 한문을 맞세워서만 보곤 한다. 물론 한자로는 우리의 생생한 느낌과 펄떡이는 생각을 온전히 담기 힘들다. 그러나 한자를 썼다고 우리가 중국과 똑같이 한자를 사용한 건 아니다. 6세기 이후 사람들은 이두나 향찰처럼 한자의 뜻과 음을 빌려 우리말 지식을 표현하려고 애썼다. 설총은 이두를 집대성한 공으로 한문 대가 최치원과 나란히 문묘에 올랐고, 의상대사의 설법은 향찰로 기록돼 전해졌다. 13세기 중엽까지 팔관회 같은 국가 행사에선 향가, 고려가요 등이 불렸으며, 그 창작 주체인 화랑 또는 국선도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한글 창제는 조선을 보편 문명으로 끌어올리는 기획이었다. 당나라 이후에 만들어진 동아시아 국가, 즉 서하, 여진, 거란, 몽골 등은 모두 독자적 문자를 제정했다. 제 나라 소리를 담은 문자의 존재는 강한 행정 체제를 갖춘 국가 건설의 필수요소였다.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세종의 위대함은 이를 계기로 초월적 보편 문명을 이룩하려는 '혁신적' 생각을 품은 점에 있다. 불교와 유교 경전을 우리말로 번역해 보급하고, 혼란한 한자 발음을 바로잡으려 한 것이다. 아악 정비에서 보여주듯, 이때 세종은 중국을 대신해 스스로 학습한 보편 준칙을 내세웠다. 세종은 루터이고, 바흐이고, 칸트이고자 했다. 이는 이단이므로, 큰 반발을 불러왔다.
그러나 일단 훈민정음이 나오자, 조선의 언어 생활은 크게 변화했다. 남성은 한문, 여성은 언문이라는 흔한 상식은 명백한 오류다. 남녀 모두 한글부터 익히고, 이를 바탕 삼아 한문을 공부했다. 16세기 유교 경전을 번역해 보급한 후, 한문을 읽는 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우리말로 배우면 학습 시간이 크게 단축되기 때문이다. 외국어로 된 좋은 글을 우리말로 번역해서 보급하는 일을 국가가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언문의 힘은 강력했다. 답답한 감정을 토로할 땐 남성 엘리트들도 언문을 사용했으며, 반대로 여성은 언문을 이용해 상소 등 공적 의사를 표현했다. 우리말로 심오한 진리와 절실한 감정을 자유롭게 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문명은 성숙해진다. 지금 우리는 세종의 기획에 얼마나 가까이 왔을까. 주말 아침, 싸구려 영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새삼 돌이켜 생각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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