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래잡기] 역사는 왜 자꾸 바뀌는가

2023. 7. 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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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르 카바넬 '비너스의 탄생'.

최근 국가유공자 논란을 보며 영광의 자리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다시 재조명되는 한 화가가 떠올랐다. 21세 젊은 나이로 파리 살롱전(展)에 혜성같이 등장해 1889년 65세에 천식으로 사망할 때까지 프랑스 미술계의 엘리트로 추앙받은 알렉상드르 카바넬(Alexandre Cabanel)이다.

최고의 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에서 기초를 다진 그는 1844년부터 당시의 유일한 대규모 전시 기회였던 살롱에 참가하면서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았고, 발군의 미술가에게만 주어지는 로마상(Prix de Rome) 장학금으로 로마로 유학을 가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을 열심히 공부했다. 귀국 후에도 줄기차게 활동한 카바넬은 1864년부터 모교인 에콜 데 보자르의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꾸준히 걸작을 발표했다.

사생활도 잡음 하나 없는 품격 있는 신사였다. 카바넬의 인생은 말 그대로 승승장구였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고 역사, 종교, 신화를 열심히 연구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표현을 탐구했다. 제2제정의 황제 나폴레옹 3세는 카바넬의 공공연한 팬이었고, 미국에서부터 그를 만나고자 대서양까지 건너올 정도로 그의 명성은 자자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19세기 최고의 화가인 카바넬의 이름을 모르는 것일까. 여기 있는 그의 작품 '비너스의 탄생'이 카바넬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1863년의 살롱에 출품된 이 작품은 대중의 찬사를 받았고 벽에 걸리자마자 나폴레옹 3세에게 판매됐다.

로마신화에서 비너스는 진주처럼 굴 속에서 태어난 것으로 묘사되는데, 카바넬은 굴을 과감히 생략하고 바다의 기포를 침대 삼아 방금 잠에서 깨어난 듯 몽롱한 비너스와 그의 탄생을 축하하는 사랑스러운 천사들의 모습을 그렸다. 현실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지만, 어차피 신화 속 존재인 미(美)와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는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다. 도자기처럼 매끈한 피부, 탱글탱글한 머릿결에 풍만하면서도 미끈한 몸매는 오늘날 인공지능(AI)으로 만들어진 듯 완벽하게 예쁜 모습이다.

문제는 카바넬을 비롯한 당대의 명망 있는 미술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1863년 살롱에 귀스타브 쿠르베나 에두아르 마네, 그리고 인상주의자들의 '괴상한' 작품이 전시되는 것을 거부한 사건이었다. 20세기 현대미술사의 주류가 될 작가들이 기존 체제에 반항을 하며 보다 전위적인 형태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연히 같은 해에 만들어진 비현실적인 '비너스의 탄생'과 딱히 아름답지도 않은 매춘부의 맨살을 보여준 마네의 현대적 누드화 '올랭피아'는 초기 현대미술사에서 두고두고 나란히 비교가 되는 짝이 되어버렸다. 20세기 이후 집필된 미술사에서 카바넬은 현대미술의 발전을 저지하려한 악당으로, 전통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게으르고 생각 없는 화가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21세기에 또 한 번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제는 모더니즘의 거대 담론이 그 안에 속하지 못한 수많은 다른 방식보다 꼭 우수한 것은 아니라는 시각이 부각되고 있다. 미술 그 자체의 존재론적 당위성을 탐구했던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가들 못지않게, 여성이나 민족 정체성의 문제, 그리고 전통의 새로운 변주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의 노력도 조망받는다. 마네가 카바넬보다 훨씬 더 혁신적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만, 카바넬의 행보도 당대의 미술 교육자로서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다는 쪽으로 관점이 바뀌는 것이다.

긴 호흡으로, 보다 더 많은 사람이 교훈을 배울 수 있는 기회로서 과(過)와 공(功)의 역사를 조금씩 다듬으면서, 충분히 통합적이고 유연한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제시할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지현 OCI미술관장(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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