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배우조합, 만장일치 파업 결의···대기업 스튜디오 측과 협상 결렬

손봉석 기자 2023. 7. 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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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배우·방송인 노동조합



미국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 이하 배우조합)이 곧 파업에 들어간다고 13일(현지시간) 밝혔다. 미 작가조합(WGA)이 파업을 현재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배우조합이 합류하면서 할리우드의 양대 노조가 1960년 이후 63년 만에 동반 파업을 벌이게 됐다.

배우조합의 수석협상가 던컨 크랩트리-아일랜드는 이날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조합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도부 투표로 오늘 밤 12시(현지시간)부터 파업을 시작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조합은 지난 한 달여간 넷플릭스, 디즈니, 디스커버리-워너 등 대기업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영화·TV제작자연맹(AMPTP)과 고용계약 협상을 벌였으나, 결국 협상이 결렬됐다.

배우조합과 AMPTP 간 계약은 지난달 30일 만료될 예정이었다가 협상 과정에서 한 차례 연장돼 전날 오후 11시 59분(미 서부시간 기준) 만료됐다. 막판 협상에는 미 연방조정화해기관(FMCS)이 개입해 중재를 시도했지만, 양측은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크랩트리-아일랜드는 AMPTP와 공정한 협상을 할 수 없었다면서 “(AMPTP가) 우리에게 아무런 대안도 남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배우조합은 지난달 7일 파업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에서 98%의 찬성표를 얻었으며, 협상이 결렬될 경우 곧바로 파업에 들어간다는 계획으로 협상에 임했었다.

배우조합은 앞서 파업을 시작한 작가조합과 마찬가지로 스트리밍 시대 도래에 따른 재상영분배금(residual)과 기본급 인상,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배우의 권리 보장 등을 요구해왔다.

특히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시청자들이 작품을 볼 때마다 작가·감독·배우들에게 지급되는 로열티인 재상영분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배우들의 큰 불만이다.

배우들은 또 자기 외모나 목소리가 AI가 생성하는 이미지에 무단으로 사용될 것을 우려하면서 이를 방지할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의료·연금보험 강화와 불합리한 오디션 관행 개선 등도 요구했다.

크랩트리-아일랜드는 “현재의 스트리밍 모델은 출연자의 재상영분배금 수입을 감소시켰고, 높은 인플레이션은 회원들의 생계 능력을 더욱 위축시켰다”며 “배우들은 이제 생성 AI 기술의 등장으로 생계에 대한 실존적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랜 드레셔 배우조합 회장은 “고용주들은 월스트리트와 탐욕을 최우선 순위로 삼고, 그 기계를 작동시키는 필수적인 기여자들을 잊고 있다”며 “역겹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사측을 비판했다.

사측인 AMPTP는 성명에서 “이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노조의 선택”이라며 “노조가 역사적인 임금·재상영분배금 인상, 연금·건강보험료 상한액 대폭 인상, 시리즈 제작 기간 단축, 배우의 디지털 초상권을 보호하는 획기적인 AI 대책 등을 담은 우리의 제안을 묵살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조는 유감스럽게도 이 산업에 의존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재정적 어려움을 초래하는 길을 선택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배우조합은 기자회견에서 “어제 그들이 우리에게 준 AI 제안서에는 연기자들이 하루 일당만 받고 촬영을 하면 그 이미지를 회사가 소유하고 동의나 보상 없이 원하는 작업에서 영원히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며 AMPTP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할리우드 배우조합 파업은 1980년 이후 43년 만이다. 배우조합과 작가조합이 동시에 파업을 벌이는 것은 과거 TV에 판매된 영화 재상영분배금 문제를 놓고 함께 싸웠던 1960년 이후 63년 만이다. 1960년 당시 배우조합 회장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었다.

배우·방송인 노동조합에는 16만여 명 배우, 방송 기자, 아나운서, 진행자, 스턴트 연기자들이 소속돼 있으나, 이번 파업은 지난달 7일 투표에 참여해 파업을 승인한 배우 6만5천명에게만 영향을 미친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메릴 스트립을 비롯해 제니퍼 로런스, 벤 스틸러 등 정상급 배우 300여명은 지난달 말 조합 지도부에 공동 서한을 보내 파업 참여 의지를 밝히며 배우들 요구를 제대로 관철시킬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새 영화 ‘오펜하이머’ 제작·출연진은 배우조합 파업에 지장이 없도록 영국 런던에서 열린 시사회 시간을 1시간 앞당겨 진행하기도 했다.

주연배우인 맷 데이먼은 파업에 대해 “아무도 업무 중단을 원하지 않고, 배우들에게도 힘든 일이 될 것”이라면서 “하지만 우리 지도부가 협상이 공정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일하는 배우들에게 공정한 협상이 이뤄질 때까지 강하게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방송작가 1만1천여명이 소속된 작가조합이 지난 5월 2일부터 2개월 넘게 파업을 진행 중인 상태에서 배우조합까지 파업에 합류하면서 할리우드 산업은 막대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언론들은 출연자 수가 적고 완벽한 대본이 필요하지 않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나 작가·배우조합의 계약 상대가 아닌 독립 제작사들의 작업만 지속되고, 나머지 할리우드 대다수의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이 완전히 중단될 것으로 예상했다.

손봉석 기자 paulso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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