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의 ‘시럽급여’ 여론몰이, 제2의 ‘주 69시간 사태’로 번지나

김지환 기자 2023. 7. 14.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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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연대회의가 14일 국회 앞에서 ‘실업급여 삭감 운운하며 노동자 삶 위협하는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실업급여를 ‘시럽급여’로, 실업자를 ‘베짱이’에 비유하며 실업급여 하한액(최저임금 80%)을 폐지 혹은 인하하려는 당정의 여론몰이가 역풍을 맞고 있다. 특히 “여성·청년들이 실업급여를 받는 중 해외여행을 가거나 샤넬 선글라스를 산다”는 고용노동부 직원 발언은 여성·청년의 반발을 사고 있다. 노동계는 당정의 실업급여 제도개편이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추진하다 여론의 역풍으로 사실상 좌초된 ‘주 최대 69시간’ 사태처럼 흘러갈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양대노총과 전국여성노동조합,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등으로 구성된 ‘여성노동연대회의’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청년 혐오 발언에 대한 당정의 사과를 요구했다. 여성노동연대회의는 “정부는 여성을 일 안하고 과소비를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양산하고 있다”며 “노동시장에 갓 발을 디딘 청년 노동자 역시 일할 의지가 없고 기성세대에 비해 적극적으로 구직하지 않는 존재로 그리고 있다”고 밝혔다.

여성노동연대회의는 당정이 실체도 불분명한 ‘실업자다움’을 강요하다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제이 여성민우회 활동가는 “불안에 떨며 어두운 표정으로 실업급여를 요청하러 가는 사회가 아니라 부당한 노동조건을 견디지 않거나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아보기 위해 재충전하고 이직을 준비하고 스스로와 주변을 돌볼 시간을 갖고자 밝은 얼굴로 노동청을 방문할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정이 실업급여 하한액 폐지 혹은 인하 근거로 제시한 통계도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정은 실업급여 하한액을 월 184만7040원, 최저임금 노동자의 세후 월 근로소득을 179만9800원으로 산출했다. 그러면서 전자가 더 큰 ‘역전현상’ 비중이 28%에 달한다고 설명한다.

세후 월 근로소득 산출 방식을 두고 논란이 있다. 정부는 월 기준 최저임금에서 근로소득세와 4대보험료를 빼는 방식으로 계산을 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노동자 대부분은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세후 월 근로소득을 계산할 때는 4대보험료를 빼고 실업급여 하한액을 계산할 때는 이를 빼지 않았다. 4대 보험료 중 건강보험·국민연금은 실직 뒤에도 부담해야 한다. 실업급여 하한액에서 건강보험·국민연금 보험료를 빼면 역전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실업급여 하한액이 폐지되고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노동 기간이 현행 180일에서 1년으로 연장되면 연간 수조원의 실업급여액이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이 경우 저임금 노동자에게 피해가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론의 반발이 거세지자 당정은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국민의힘 노동개혁특위 위원장인 임이자 의원은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이 실업급여 (개편)에 대해 걱정이 많다”며 “무작정 밀어붙이는 것보다 (야당과) 같이 논의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이정식 노동부 장관에게 당부했고, 이 장관도 이에 동의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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