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의 땅’에서 마주한 가축들, 세간의 이목이 쏠리는 건 알까[금주의 B컷]
권도현 기자 2023. 7. 14. 16:35
먹구름이 잔뜩 끼었던 지난 9일 오전, 경기 양평군 소재의 ‘한 땅’을 찾았다. 인적이 드물고 고요해 눈앞에 있는 중부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차소리만 드문드문 들려왔다. 웃자란 풀로 우거진 좁은 길을 따라가다 갑작스럽게 흑염소들과 마주쳤다. 이곳저곳 냄새를 맡던 염소들이 인기척에 놀라 소리가 난 곳을 응시한 채 길 한가운데에 버티고 섰다. 모두 네 마리였다. 차로 돌아와 앉았다가 염소들이 떠난 뒤에야 가던 길을 갈 수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자 관리되지 않은 창고와 비닐하우스, 기둥이 기울어진 목재 구조물 등이 나타났다. 이번엔 몸집이 큰 칠면조와 마주쳤다. 칠면조는 기자를 신경쓰지 않고 창고 주위를 돌아다녔다. 그 뒤를 암탉 한 마리가 졸졸 따라다녔다. 집에서 키우는 동물들이 돌아다녔지만, 이들을 돌보는 이는 아무도 없어보였다.
이 땅은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이 변경되며 특혜의혹이 불거진 김건희 여사 일가가 소유한 곳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의혹을 전면부인하며 사업을 백지화했다. 양평 시내는 고속도로 재추진을 촉구하는 지역주민들의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다.
오후가 되자, 일대에 거센 비가 내렸다. 현수막이 비에 흠뻑 젖었다. 문득, 오늘 마주친 ‘반려인’이 없는 생명들은 어떡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진·글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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