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해외로 떠난다고요? 엔화 환전은 '지금 당장' 달러·유로화는 '천천히'
"여름휴가를 해외로 갈 예정인데 지금 환전을 해둬야 할까요? 좀 더 기다리는 게 나을까요?"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을 앞두고 환전 시기를 고민하는 해외여행족이 늘고 있다. 올해 달러 대비 원화가치는 연초 1230원대로 올랐다가 지난달 1320원대로 미끄러지더니 최근 1260원대로 되돌아오는 등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환전을 잘 해서 한 푼이라도 아껴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싶은데, 종잡을 수 없는 원화값 때문에 혼란스럽다.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는 환전 꿀팁을 알아봤다.
달러당 원화값은 이미 고점을 지났다는 평가가 많다. 미국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종점에 다가섰다는 인식이 시장에 퍼져 있다. 올 하반기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7월·9월·11월·12월 4번 남았다. 시장 참가자들은 미 연준이 한두 번 금리를 추가로 올리더라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확실히 잡겠다는 '마지막 인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 달러 약세 전망이 지배적이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미국 실물경기가 둔화되고 긴축 환경이 지속되면서 인플레이션 완화에 기여할 것"이라며 "미국 경제가 연착륙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에 하반기 달러가 약보합을 보이고 원화값이 '누운 S자' 모양을 그릴 것으로 예상했다. 올 3분기 달러당 원화값은 1200~1320원, 4분기는 1180~1290원으로 전망했다. 신한은행 S&T센터는 하반기 원화값이 1220~1320원 사이에서 점점 상승할 것으로 관측했다.
문제는 여름휴가철까지는 원화가치 상승 흐름이 나타나기 쉽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당장 오는 25~26일 FOMC에서 연준이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달러당 원화값이 지난 10일부터 5거래일 연속 오르며 단숨에 40원 가까이 급등한 탓에 되돌림(원화가치 하락)이 나타날 공산이 있다. 상당수 외환 전문가들이 원화 강세를 내다보지만 원화값이 1250원을 뚫고 1200원대 초반에 올라설 것으로 예상하는 시점은 4분기다. 백석현 신한은행 S&T센터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원화값이 상승세를 타려면 시간이 걸린다"며 "해외여행을 앞둔 실수요자라면 원·달러 환율이 1300원 아래로 내려왔을 때 조금이라도 사두는 쪽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일본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에게는 지금이 환전 적기다. 원·엔 재정환율이 100엔당 900원대 초반에서 등락하며 기록적인 엔저(엔화가치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10년래 원·엔 재정환율 평균(2013년 하반기~2023년 상반기)인 1023.32원보다 10%가량 낮다. '역사적 엔저'에 일본 여행객 수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 항공통계에 따르면 엔화가 하락세로 접어든 지난 5월 일본에 다녀온 사람은 148만5911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배에 달한다. 코로나19 이전 10년 평균인 108만8381명보다도 40% 가까이 많다. 같은 달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엔화 매도액은 301억6700만엔으로 4월(228억3900만엔)보다 32% 증가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 관련 방역 조치 해제로 일본 여행이 급증하면서 관련 엔화 수요가 늘어났다"며 "엔저 현상이 심해지면서 당장 쓸 일은 없어도 미리 바꿔두고 환차익을 기대하는 사례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다만 앞으로 오를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에 추가 하락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필요한 만큼 환전하는 게 좋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100엔당 900~930원대에서 횡보하다가 장기적으로는 상방 압력(엔화가치 강세)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엔화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는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 변경 가능성이 꼽힌다. 일본은행은 오는 27~28일 통화정책회의를 연다.
현재 엔저는 상당 부분 일본은행의 완화적 통화정책에 기인한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긴축적 통화정책을 펴나가고 있는 와중에도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0.1%로 정하고 10년물 국채 수익률을 0%대에서 유지하는 수익률 곡선 통제(YCC) 정책을 시행하며 '돈 풀기'를 지속하고 있다.
최근 엔저와 일본 물가 상승 영향 등으로 YCC 수정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BNP파리바는 최근 보고서에서 "일본은행이 이달 통화정책회의에서 YCC를 수정해 10년물 국채 수익률 운용 범위를 현행 0.5%에서 1.0%로 상향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유럽 여행족은 속이 쓰린다. 유로 대비 원화 환율은 연초 1330~1350원 선에서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지난 5월 초 1481.7원(5월 4일)으로 9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원화 입장에서 보면 역대급 '강유로'인 셈이다. 유로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 6월 중순 1380~1390원대로 떨어졌다가(유로화 가치 하락) 최근 다시 1410~1430원대로 올랐다.
유로화가 강세인 건 유럽중앙은행(ECB)이 긴축의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미국이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유럽은 반대로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유럽은 인플레이션이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어서다. 백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난 상반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전망 등이 제기되면서 유로화가 평소보다 10% 정도 과대평가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원화 약세로 유로 대비 원화 환율이 올랐다는 분석도 많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올 하반기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 조치로 중국 경제가 좋아지고 한국도 수출이 늘면 원화 약세가 해소되면서 유로 대비 원화 환율이 1380원대로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한 달 넘게 약세인 위안화도 중국 당국이 최근 '통화 방어전'에 나선 만큼 조만간 달러당 7위안 아래(위안화가치 상승)로 떨어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유로화로 미리 바꾸기보다 최대한 기다리는 편이 유리하다.
올여름 동남아시아 여행을 간다면 환율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원화를 달러로 환전한 뒤 동남아 통화로 다시 바꾸기엔 당장 7~8월은 원화가 크게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낮고, 대체로 동남아 주요 통화 대비 원화 환율은 변동성이 작기 때문이다. 환율 계산기를 두드리기보다 환전수수료 등 자투리 비용을 아끼는 편이 이득이 될 수 있다.
[임영신 기자 /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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