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 연금’ 재건축 조합 꼼수 법으로 막자”...상임위는 與野 전쟁터

이슬기 기자 2023. 7. 1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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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 해산 후 청산 고의로 늦춰 유보금 수령
’청산 연금’ 막는 도정법 개정안 국회 계류
국토위, ‘대통령 처가 특혜’ 의혹에 여야 공방만 가열

#대전의 한 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2006년 신축 아파트를 준공한 지 17년이 되도록 해산을 못 하고 있다. 2016년 청산 절차를 밟겠다며 조합원들로부터 26억여원을 걷었지만 지난해 말 기준 잔액은 5만원이었다. 이 중 상당액이 조합 운영비와 법무사 자문료, 차량 수리비 등으로 쓰였다. 조합장 연관 회사 및 직원 명의 계좌로도 돈이 빠져나갔다. 이조차 조합원들이 조합장을 상대로 한 소송전 끝에 어렵사리 회계장부를 열람해 확인했다. 이들은 조합이 조합원의 사적 재산을 유용, 배임 및 횡령했다며 현재 소송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가 오는 24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 개정안 공포에 따라 준공 후 1년이 지난 조합을 대상으로 해산·청산 계획을 6개월마다 조사한다. 전국에서 정비 사업이 가장 활발한 지역인 만큼 선제적으로 조사에 착수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 4월 기준 준공 후 1년 넘게 해산 또는 청산하지 않은 조합이 189개에 달하고, 조합원의 피해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다며 “미해산 조합을 엄격하게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의 한 주택재건축현장. 사진은 기사와 무관. /뉴스1

재건축·재개발 조합의 유보금 유용은 부동산 비리 사건의 단골 메뉴다. 조합 해산 이후 임원이 고의로 ‘청산’을 늦춰 각종 비용으로 사용하면서 조합원에게 돌려주지 않는 식이다. 이를 막기 위한 개정안 일부가 최근 발의됐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가장 활발한 서울에선 오는 24일부터 시(市) 차원의 조사도 시작된다. 다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대치가 극심해 국회 차원의 신속한 논의는 어려운 상황이다.

14일 정치권에 따르면,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상 정비사업과 입주가 끝나면 ▲조합장은 1년 이내에 조합 해산을 위한 총회를 소집하고 ▲청산인을 선임해 사무 일체를 종결하며 ▲분쟁·소송을 위해 남겨둔 유보금을 조합원에 정산해야 한다. 통상 10억~30억원 규모다.

이 과정에서 조합장이 청산인 등과 결탁해 청산을 일부러 미루며 유보금을 월급처럼 수령하는 일이 발생한다. 정비사업 중 벌인 소송전이 길어지거나 소송을 남발하면, 매달 조합장 인건비와 운영비 명목의 돈이 유보금에서 빠진다. 업계에선 소위 ‘청산 연금’이란 말까지 나온다.

◇국토부·지자체, 조합 해산 후 ‘청산’은 감독 불가

문제는 주무 부처인 국토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리·감독 영역이 ‘조합의 해산’까지라는 점이다. 해산 이후 ‘청산 절차’에는 민법이 적용된다. 즉, 청산인이 고의로 절차를 늦추며 임금 및 상여금을 수령해도 정부가 감독할 권한이 없다. 조합 해산 이후는 법원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 위원장인 김영호 의원이 국토교통부와 실시한 전수조사에 따르면, 2010년부터 올해 5월까지 전국 17개 시도의 해산 조합 387곳 중 253곳(65.4%)이 미청산 상태였다. 이 중 5년 이상 청산하지 않은 조합은 64곳, 10년 이상도 25곳이었다. 정비사업이 활발한 서울에선 192개 해산 조합 중 청산을 완료한 곳이 49곳뿐이다. 10년 이상 된 미청산 조합도 전국에서 25곳에 달했다.

울산의 한 아파트 재개발 공사 현장.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스1

◇'청산연금 방지법’ 발의...청산 고의 지연하면 고발

이런 상황에서 최근 김 의원이 대표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 개정안은 주목할 만하다. 국토부와 지자체가 관리·감독하는 정비 사업의 범위에 ‘청산’ 단계를 포함하는 게 골자다.

개정안에는 ▲조합 정관에 ‘해산 이후 청산인의 직무와 보수’를 명시하고 ▲해산 직후 청산인이 성실하게 청산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성실의무의 규정이 담겼다. 특히 ▲국토부와 지자체가 청산인의 의무 수행 여부 확인차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현장 조사 결과 고의 지연 등 위법 사항이 확인되면 수사기관에 고발할 수 있도록 했다.

◇소관 상임위, ‘대통령 특혜’ 與野 대치만 격화

그러나 지난 5월 말 발의된 해당 법안은 아직 상임위 논의 단계도 거치지 못하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치르는 여야 모두 정무적 이슈 대응에 열을 올리고 있는 탓이다.

특히 소관 상임위인 국토위는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대통령 처가 특혜 의혹’을 둘러싼 여야 전쟁터가 됐다. 오는 17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을 상대로 현안질의를 앞두고, 야당인 민주당은 국정조사까지 요구하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 역시 원희룡 장관의 ‘백지화’ 발표 후 내부 이견으로 대야(對野) 공세는 물론 출구 전략도 고심 중이다.

국토위 소속의 한 국민의힘 의원도 “재건축 조합의 사각지대를 감시하는 법이 필요한 건 맞는다”라면서도 “고속도로 문제가 모든 이슈를 잡아 먹고 현안질의도 있기 때문에 상임위에서 머리를 맞대고 법안을 논의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원내지도부 차원에서 이 법안을 ‘당 중점 추진 법안’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김영호 의원은 조선비즈에 “조합원의 사적 재산을 연금처럼 매달 받아 챙기며 운영하는 청산조합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며 “법이 시행되면 국토부가 전국의 청산 조합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해 조합원 권리를 침해하는 조합은 수사기관에 고발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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