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물고문’ 반구대 암각화, 이젠 벗어날까…유네스코 세계유산 신청

도재기 기자 2023. 7. 1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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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천전리 각석’과 함께
‘반구천의 암각화’ 명칭으로
문화재청, 내년 1월 신청서 제출
‘한지’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고래잡이 등 선사시대 핵심 문화유산이자 국보인 ‘울주 반구대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도전한다. 사진은 고래 등이 선명하게 보이는 반구대 암각화 탁본의 일부. 경향신문 자료

국보인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지’와 ‘인삼’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된다.

문화재청은 “13일 열린 문화재위원회 회의에서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으로 구성된 ‘반구천의 암각화’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으로, 한지는 ‘한지, 전통지식과 기술’이란 이름으로 내년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신청 대상으로, 인삼은 ‘인삼문화: 자연과 가족(공동체)을 배려하고 감사하는 문화’란 명칭으로 2026년 등재신청 대상으로 각각 선정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들 문화유산은 앞으로 등재 신청서 제출 등 국내 절차와 국제적 관련 기관 심사 등의 과정을 거쳐 최종 등재가 결정된다.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할 ‘반구천의 암각화’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각석’을 포함한 것으로 선사시대의 대표적 유산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대곡천을 낀 절벽 아랫부분에 자리한 높이 4m, 너비 10m의 바위 면에 고래·호랑이·사슴·멧돼지 등 바다와 육지 동물, 사냥 장면 등 모두 300여점의 그림과 문양이 새겨져 있다.

‘반구대 암각화’의 세부 모습(사진 위)과 근경. 경향신문 자료

신석기~청동기시대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생한 생활상을 보여준다. 또 그림의 표현방식 등으로 한국미술의 원형·한국미술사의 시초, 최초의 한국미술 작품이란 평가도 받는다. 특히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 그림의 하나이자 다양한 고래 모습으로 이미 국제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보다 대곡천 상류에 자리한 ‘천전리 각석’은 청동기~신라시대까지의 각종 그림, 글이 새겨져 있다. 다양한 기하학적 무늬와 동물, 추상화된 인물 등은 청동기시대 작품이다. 아랫 부분의 배 그림, 800여 자의 명문은 신라시대 조성된 것으로 신라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다. 문화재청은 “이들 유산은 다양한 주제의 사실적 표현은 물론 선사인들의 창의성, 암각 제작전통 등을 보여주는 독보적인 증거라는 점에서 세계유산의 중요한 등재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지닌다”고 밝혔다.

청동기시대부터 신라시대까지 각종 문양과 글자 등이 새겨져 있는 ‘울주 천전리 각석’(국보) 전경. 문화재청 제공
국보 ‘천전리 각석’의 세부 모습.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과 울산시는 올해 9월까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 초안을, 내년 1월에는 최종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등재 여부는 유네스코의 현지 실사와 평가 등을 거쳐 2025년에 결정될 전망이다.

문화재청과 학계에서는 ‘반구대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향후 보존 대책을 얼마나 제대로 마련하느냐에 달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국보로 지정돼 있고, 국제적 주목을 받는 유산임에도 불구하고 대곡천 하류에 사연댐이 세워진 이후 50여년 동안 해마다 장마철이면 물에 잠기고 또 급속하게 훼손되고 있는 유산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해에도 20일 이상 물에 잠기면서 부실한 보존 대책을 대표·상징하는 문화유산이다.

국제적으로도 주목받는 ‘반구대 암각화’는 대곡천 하류의 사연댐으로 인해 50년 가까이 해마다 장마철이면 침수가 반복돼 부실한 보존대책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이다. 물에 잠겼을 때의 반구대 암각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곡천 배 위에서 바라본 ‘반구대 암각화’. 도재기 선임기자

‘반구대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시작한 게 10년을 훌쩍 넘었음에도 이제서야 신청 대상에 선정된 이유도 보존대책 때문이다. 문화재위원회는 지난해 심의에서도 침수에 따른 보존 방안 미흡, 세계유산 등재 이후의 보존관리 계획 누락 등을 이유로 신청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등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보존방안 대책을 강조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날 “이번 문화재위원회 회의에서도 환경부 등 정부와 울산시의 보존대책에 관한 실효성 논의 등이 이뤄진 것으로 안다”며 “현재 추진이 계획된 사연댐의 수위 조절을 위한 수문 설치 등의 대책과 추진 의지를 관련 문화재위원들이 수용했고, 이에 따라 신청대상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위원회가 실효성 있는 보존대책의 추진을 믿고 선정했다는 의미다.

한 문화재위원은 “지금까지 난항을 겪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이 적어도 세계유산 등재 실사단의 실사 때까지는 제대로 마련되기를 기대한다”며 “실사단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경우 등재 실패는 너무나 뻔하다”고 말했다. 그는 “등재가 실패할 경우 국제적으로 나라의 체면이 구겨지는 일이고, 문화재청과 울산시는 물론 등재신청 대상으로 선정한 문화재위원들의 부실한 심의·결정도 당연히 비판받아야 할 것”이라며 “문화재위원회의 이번 선정은 보존대책을 서둘러 확정하라는 촉구의 의미도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전통 한지의 제작 과정 일부(사진 왼쪽)와 다양한 한지. 문화재청 제공

202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신청 대상으로 선정된 ‘한지, 전통지식과 기술’은 한지 제작 전통이 오늘날에는 마을 내 사회적 협동조직의 형태로 이어져오고 있어 공동체 문화를 잘 보여주며, 집필 도구의 용도를 넘어 문화유산의 보수·수리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 높게 평가받았다.

닥나무와 황촉규를 주재료로 하는 전통 종이 한지는 오랜 경험과 기술이 요구되며, 한지를 제작하는 장인은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으로 지정돼 있다. 문화재청은 ‘한지, 전통지식과 기술’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신청서를 내년 3월 말까지 유네스코에 제출할 예정이다. 등재 여부는 2026년 열리는 ‘무형문화유산보호를 위한 정부 간 위원회’에서 확정된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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