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민주당이 혁신할 수 없는 이유
2020년 4월 15일 지구촌에 몰아닥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대한민국의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예정대로 시행됐다. 세계도 총선이 제대로 치러질지 주목했다. 투표율 66.2%. 2000년대 들어 치러진 총선에서는 가장 높은 투표율이었다. 선거 결과도 놀라웠다. 총 300석 가운데 더불어민주당과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180석을 휩쓴 여권의 압승이었다.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과 역시 비례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은 103석을 얻는데 그쳤다. 이 같은 결과는 국정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동시에 21대 총선은 정치권의 세대교체도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한 사람이 절반을 훌쩍 넘었을 정도로 많은 정치신인이 대거 등장한 선거였다.
한편 차기 총선을 8개월여 남긴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정당별 의석 분포는 일부 변화가 있었다. 지금은 더불어민주당 168명, 국민의힘 112명, 정의당 6명,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 진보당 각 1명, 무소속 10명 등 299명이다. 선거법 위반 등 유죄판결로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했거나, 탈당으로 국회 의석 분포는 21대 국회 출범 당시와는 많이 바뀌었다. 여기에 지난해 3월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이 교체됐고, 연이어 지방선거에서 새로운 집권당이 된 국민의힘이 압승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민주당으로서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패배한 요인으로 21대 총선 여당 압승을 꼽는 시각도 있다. 180석이라는 역대급 압승이 오히려 정권교체를 불러왔다는 것. 실제로 정부의 각종 인사 논란은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고, 조국 장관 사건은 ‘내로남불’ 프레임에 갇히게 만들어 이에 실망한 국민들은 등을 돌리고 말았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성 비위 사건은 진보 진영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혔다. 국민의 개혁 요구를 외면하고 현상유지에만 집착하는 안일한 국정운영이 화를 자초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당시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던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이 된 지금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여·야 간 협치를 제대로 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총선 민심을 들어 소수 야당에 굴복을 강요한 측면도 있었다. 야당의 강한 반발을 자초해 정국은 경색되고 말았다. 여권 내부의 갈등도 드러났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논란과 함께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갈등은 문재인 정부의 미숙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행정부 자체를 관리 조정할 수 없을 정도의 무능을 노정시키고 말았다.
물론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반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혁신으로 다시 한번 국민의 신뢰를 받겠다고 했다.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미 진영 간 가파르게 갈라진 민심은 반성과 혁신의 길을 막아버렸다. 불과 0.7%차이의 패배가 민주당의 혁신을 방해했다. 차라리 굳건한 지지층을 믿고 그대로 나아가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상태가 됐다. 이번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가 1호 혁신안으로 의원 전원의 불체포특권 포기를 제안한 것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고 깔아뭉개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 13일 박광온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혁신위의 1호 쇄신안을 추인하자”고 제안하면서 “내년 총선은 확장성의 싸움으로 민주당다운 윤리정당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채택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는 지난 6월 23일 당 소속 의원 전원이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서약서를 제출하고, 향후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가결을 당론으로 채택해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혁신위의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검찰 권력을 이용해 전방위적인 야당 탄압에 나서고 있다는 인식이 짙게 깔려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검찰이 정치권, 특히 야당을 겨냥한 수사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압수수색이 남발하고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희박한데도 거침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행태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국민도 꽤 있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마저 포기하면 검찰은 더 노골적으로 나올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방어권은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일부 지지층을 제외하고 일반 국민의 여론은 냉담한 편이다. 최근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사건과 코인 거래 등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꼬리를 무는 의혹 등으로 불체포특권이 검찰의 공세에 맞서는 것이라기보다는 ‘방탄국회’라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방패마저도 포기한다면, 속절없이 당한다는 수세적이고 자기변명 같은 주장보다는 국민을 믿고 당당하게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한 상황이 됐다. 나아가 검찰 그리고 현 정부를 적으로 규정하면서까지 자신을 지키겠다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정치는 적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국민을 향해 있어야 한다. 국민을 믿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선택을 받아 권한을 위임받은 국회의원의 책무 아니겠는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민주당의 혁신이 첫걸음도 떼지 못하는 이유가 또 있다. 코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물갈이 여론’ 때문이다. 21대 총선 결과 절반이 넘은 정치신인이 진출했지만, 현시점을 기준으로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비해 그 비율이 적다. 민주당 의원 168명 중 초선은 81명으로 48.2%다. 반면 국민의힘 초선은 60명으로 53.6%이다. 상대적으로 민주당이 국회 연차로만 치면 더 ‘보수적’이라는 말이 된다. 특히 민주당을 주도하는 3선 이상 의원이 39명이다. 이들은 차기 총선의 물갈이 대상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민주당이 제때, 제대로 혁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보수든 진보든 가진 것이 많으면, 변화하고 혁신하기 어려운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 아닌가.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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