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레트로와 힙의 공존...당진의 풍경
2023. 7. 14. 15:09
여행지로서 당진이 달라졌다. ‘당진에 뭐가 있나?’ 한참을 생각해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멋지고 매력적인 여행지가 됐다. ‘예쁘고 멋진 사진’이 여행의 기준이 된 요즘 세대들의 힙한 여행지 당진. 감성 여행지 당진의 매력은 무엇일까. ‘핫플’로 만나는 당진의 풍경들을 소개한다.
약 10년 전쯤. 작고 소박한 폐교의 음악회를 위해 기타리스트와 피아니스트, 여성 가수 한 명과 함께 당진을 찾았던 적이 있었다. 지방마다 문을 닫는 학교가 늘던 시기,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폐교를 문화공간으로 리뉴얼하고 있었고, 당시 음악회가 열렸던 폐교 역시 당진에 새로 터를 잡은 열정적인 예술가가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어가던 곳이었다. 그곳이 지금 당진의 핫 플레이스가 된 아미미술관이었다.
당진은 그렇게 사연 하나쯤 있어야 기억되는 고장이다. 삽교호는 들어본 사람이 제법 있겠지만 그 밖의 여행지는, ‘노잼’의 지역이었다. 그러나 요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당진 여행을 계획하면서 찾아보고 또 살펴본 당진은 ‘인스타 성지’가 되어 있었다.
당진은 그렇게 사연 하나쯤 있어야 기억되는 고장이다. 삽교호는 들어본 사람이 제법 있겠지만 그 밖의 여행지는, ‘노잼’의 지역이었다. 그러나 요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당진 여행을 계획하면서 찾아보고 또 살펴본 당진은 ‘인스타 성지’가 되어 있었다.
아산만과 서해바다가 펼쳐진 포구의 풍경
아산만과 접해 있는 당진에는 이름난 포구들이 많다. 삽교호 인근 맷돌포포구와 음성포구도 있지만 바지락으로 유명한 한진포구와 매년 봄, 실치회로 미식가들을 불러 모으는 용무치포구도 유명하다. 오늘 같은 날에는 작고 조용한 안섬포구가 어울린다. 안섬포구는 과거에는 섬이었지만 간척사업으로 지금은 육지가 된 곳이다. 가을철 갯벌 낙지로 유명하지만 해마다 충청남도 무형문화재인 풍어당굿이 열리는 곳이다.
서해대교를 지나 20여 분을 달리자 바닷가 마을이 나타난다. 배가 지나가고 나면 어김없이 포구 쪽으로 파도가 밀려든다. 바다를 가르는 거대한 화물선이 만들어낸 파동이다. 조용하고 한적한 안섬포구를 즐기는 방법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바다멍을 하거나 차박이나 낚시를 즐겨도 좋은 바닷가 마을이다.
‘왜가리의 목’, 혹은 ‘누워 있는 사람의 목’을 닮아 이름 붙여진 왜목마을. 해양수산부 선정 아름다운 어촌마을 왜목마을의 바닷가에는 왜가리 조형물이 서 있다. 바다에서 긴 목을 내밀고 하늘을 바라보는 모양의 왜가리는 당진여행의 상징이 됐다. SNS 인증샷을 통해 유명해진 것처럼, 백사장에 서있는 날개 조형물에 앉아 왜가리 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마치 왜가리를 타고 하늘로 나는 듯한 멋진 장면이 연출된다.
‘왜가리의 목’, 혹은 ‘누워 있는 사람의 목’을 닮아 이름 붙여진 왜목마을. 해양수산부 선정 아름다운 어촌마을 왜목마을의 바닷가에는 왜가리 조형물이 서 있다. 바다에서 긴 목을 내밀고 하늘을 바라보는 모양의 왜가리는 당진여행의 상징이 됐다. SNS 인증샷을 통해 유명해진 것처럼, 백사장에 서있는 날개 조형물에 앉아 왜가리 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마치 왜가리를 타고 하늘로 나는 듯한 멋진 장면이 연출된다.
당진과 왜목마을은 최근 BTS 덕분에 주목을 받았다. BTS 멤버 슈가가 솔로 앨범 발표를 앞두고 유튜브 영상에 출연해 ‘당진 바다’를 언급한 것. 자신이 새 앨범 작업을 위해 3일간 당진에 머물렀다며 조용하고 편안한 당진의 바다를 얘기하자 왜목마을까지 덩달아 유명세를 타고 있다.
왜목마을은 일출과 일몰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어서도 유명해졌다. 서해 바다에서 일출이라니? 그러나 사실이었다. 당진 땅은 경기도 평택만의 북서쪽으로 삐죽하게 올라와 있어 당진을 기준으로 보면 평택만이 동해가 된다. 따라서 당진은 동쪽 바다와 서쪽 바다, 거기에 북쪽 바다까지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입지를 갖추고 있다. 이 같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해 뜰 무렵 바닷가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서해의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왜목마을은 일출과 일몰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어서도 유명해졌다. 서해 바다에서 일출이라니? 그러나 사실이었다. 당진 땅은 경기도 평택만의 북서쪽으로 삐죽하게 올라와 있어 당진을 기준으로 보면 평택만이 동해가 된다. 따라서 당진은 동쪽 바다와 서쪽 바다, 거기에 북쪽 바다까지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입지를 갖추고 있다. 이 같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해 뜰 무렵 바닷가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서해의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왜목마을에는 여행자들이 열광하는 또 하나의 포토존이 있다. 바로 해수욕장의 왼쪽 끝에 위치한 해식동굴이다. 규모는 작지만 감성 넘치는 사진을 선물해준다. 동굴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공간이지만, 비집고 안으로 들어가 동굴 안쪽에서 역광으로 촬영을 하면 인생 샷을 건질 수 있다. 특히 왜목마을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르는 해넘이 무렵에 사진을 찍으면 그 순간은 누구나 최고의 모델이다.
당진 최고의 감성 스폿, 아미미술관과 아그로랜드
아미미술관은 요즘 당진여행을 할 때 필수적으로 가봐야 하는 곳이다. 거기에 ‘인스타 핫플’ 혹은 ‘가보고 싶은 정원’ 같은 키워드들이 따라 붙는다. 당진 외곽 아미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 ‘아미미술관’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친구’라는 뜻의 프랑스어 ‘아미’를 붙였다고도 한다. 사라져가던 폐교를 살려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위로하는 힐링 공간으로 만들어냈다.
약 16만 명인 당진 인구를 생각하면 연간 10만 명 이상인 아미미술관의 방문객 규모는 놀랍다. 건물이 특별하다거나 이름난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는 것도 아닌데 방문객이 그렇게 많을 수 있을까. 소박하게 꾸며진 미술관 입구를 지나면 진초록 담쟁이덩굴이 감싸고 있는 전시관이 나온다. 한때 교실로 쓰이던 다섯 개의 공간을 전시관으로 만들었고, 교실과 주변의 자연이 또 하나의 전시처럼 어우러진다. 말 그대로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된 생태미술관의 전형이다.
현재 전시관에서는 ‘그린(green)’에 대한 인식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해석한 다섯 작가의 전시 ‘Rhapsody in Green’이 펼쳐지고 있다. 아미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이 감탄해 마지않는, ‘인증샷’을 위한 공간이다. 전시장을 나오면 탐스런 수국과 화려한 꽃들이 활짝 핀 정원이 펼쳐진다. 옛 학교의 건물을 그대로 보존한 한옥전시관과 또 하나의 전시관이자 복합문화공간인 메종 드 아미, 공원처럼 꾸며진 운동장과 그 옆에 만들어진 카페 지베르니를 산책 삼아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좋다.
아미미술관과 함께 당진의 이미지를 바꿔놓은 태신목장. 약 100만㎡(30만 평)의 목장 부지에 1,000여 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는 이곳은 지난 55년간 국민들에게 신선한 우유를 공급해온 한국 낙농업의 주역이었다. 또한 국내 최초로 ‘낙농체험목장’ 인증을 받아 체험공간으로 만든 곳이기도 하다. 낙농 체험농장인 만큼 드넓은 초원의 목가적인 풍경과 함께 소에게 풀을 먹이고 젖을 직접 짜 볼 수도 있다. 또 우유를 이용해 치즈와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체험도 가능하다.
그러나 태신목장이 전국적 유명세를 타게 된 건 보성의 녹차밭이나 고창의 청보리밭이 그랬듯 본래의 용도와 상관없이 기막힌 풍경 하나였다. 드넓은 목장 들판에 수레국화를 심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매년 여름 보랏빛 수레국화가 들판을 가득 채우고 그 뒤를 이어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피어 환상적인 인생 샷을 선물한다.
방목장과 정원, 체험장과 공원, 캠핑장, 숲길 등으로 구분되는 농장은 곳곳에서 만나는 타조, 당나귀, 셔틀랜드포니, 유산양 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방송 촬영지가 되었던 드레스가든을 비롯 느티나무 테라스, ‘배우길’, ‘느끼길’, ‘즐기길’, ‘달리길’ 등을 트랙터 열차로 이용할 수도 있다.
아그로랜드 태신목장은 주소상 예산군에 속하지만 당진시 면천면과 예산군 고덕면에 걸쳐 길게 자리 잡고 있다. 즉 당진 여행을 선택한 여행자도, 예산 여행을 선택한 여행자도 반드시 들러봐야 할 여행 명소인 셈이다. 이곳의 입장료는 성인 기준 1만 원이 조금 넘는다.
아그로랜드 태신목장은 주소상 예산군에 속하지만 당진시 면천면과 예산군 고덕면에 걸쳐 길게 자리 잡고 있다. 즉 당진 여행을 선택한 여행자도, 예산 여행을 선택한 여행자도 반드시 들러봐야 할 여행 명소인 셈이다. 이곳의 입장료는 성인 기준 1만 원이 조금 넘는다.
성지가 된 뜻밖의 풍경들
당진에는 천주교 성지가 두 곳 있는데, 풍경에 매료된 젊은 여행자들의 발길이 잦다. 합덕읍에 있는 신리성지는 모던하면서도 미니멀한 현대 야외미술관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조선의 카타콤(Catacomb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묘지)’이라 불리는 신리성지는 신부와 신자들의 순교지다. 성지 안에는, 병인박해로 순교하기 전까지 그곳에서 21년의 세월을 보낸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Daveluy 안토니오) 주교의 집이 복원돼 있고, 순교자기념관과 순교미술관도 있다. 신리성지에는 또 순교자들이 태어난 집과 마을, 농사를 짓던 땅도 당시의 지명과 함께 그대로 유지해 순교자들의 자취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한국 천주교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태어난 솔뫼성지는 지난 2014년 프란체스코 교황이 방문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솔뫼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생가와 기념관, 동상과 십자가의 길, 공연장인 솔뫼아레나로 꾸며져 있고, 오른쪽으로는 성전과 문화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기념관에는 김대건 신부의 성장기, 천주교 활동과 업적, 순교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고, 한국 교회사 등에 관한 자료와 희귀 성물 등도 전시돼 있다. 이곳에는 특히 한국에 오는 유럽 선교 신부들을 위해 김대건 신부가 직접 만들었다는 지도도 있다.
특이한 모양으로 지어진 ‘기억과 희망’ 성전 앞에는 프란체스코 교황 방한 당시의 흔적이 다양한 상징물로 조성되어 있다. 천주교 성지라고는 하지만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며, 차분히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치유의 공간으로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최근에는 솔뫼성지에서부터 신리성지까지 걷는 13.3km의 ‘버그내순례길’ 트레일도 여행자들이 많이 참여한다. 버그내순례길은 한국에 천주교가 들어오던 초창기부터 이용됐던 순교자들의 길이다.
당진 여정의 마무리는 삽교호다. 아무리 식상해진 여행지라 해도 삽교호를 빼놓고 당진을 이야기할 순 없다. 그러나 아쉬운 건 분명 있다. 삽교호는 그동안 대한민국 건설의 새 역사를 썼던 현장이었다는 것 말고는 시대의 변화에 좀처럼 어우러지지 못했다. 그래서 여행을 놀이가 아닌 감성으로 받아들이는 요즘 여행자들을 끌어안기에는 모자랐던 게 사실이다. 그런 삽교호에 최근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삽교호 관광지의 상징과도 같았던 놀이동산이 바뀐 것이다.
놀이동산이라고 해봐야 회전목마나 디스코팡팡 같은 추억의 놀이기구가 전부였던 그곳에 매머드급 대관람차가 생겨났다. 현재 당진 삽교호에는 세계 유일의 ‘논두렁 뷰’ 대관람차가 있다. ‘논밭 한가운데’라는 다소 생뚱맞은 입지의 삽교호 대관람차가 당진을 레트로 여행의 성지로 끌어올렸다. 요즘 각종 소셜 미디어에는 논과 밭을 배경으로 한 화려한 색감의 대관람차 사진이 넘쳐난다. 특히 삽교호의 저녁놀과 함께 사진에 담긴 대관람차의 모습은 여행자들의 감성을 지극하기에 충분하다.
대관람차가 생긴 이후 충남 여행지 내비게이션 검색 순위에서 삽교호가 꾸준히 1, 2위를 다툰다고 하니 돌고 도는 유행의 현주소를 이곳에서 확인하게 된다. 모처럼 여행자들로 북적거리는 삽교호의 풍경 속에서 마무리하는 당진 여행, 촉촉해진 감성이 여운으로 길게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지금껏 몰랐던 당진의 새로운 풍경 속을 천천히 거닐어 보는 건 어떨까.
[글과 사진 이상호(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8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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