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유진투자증권의 높은 랩‧신탁 수익률…법인 자금 유치 고육책?

조슬기 기자 2023. 7. 1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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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채권형 랩(Wrap)·신탁 상품 불건전 영업 행위와 관련해 금융감독원 현장 조사가 한창인 가운데, 얼마 전 조사가 끝난 유진투자증권에서 '채권 돌려막기'가 의심되는 영업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법인들의 단기 유동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시장 내 형성된 적정 금리보다 높은 투자 수익률을 제시해 온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결국 높은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서는 단기 기업어음(CP) 대신 장기 CP 등을 편입해 운용하는 만기 불일치, '미스매칭' 전략을 수반할 수 밖에 없고, 이는 금감원에서도 문제삼고 있는 불건전 영업 행위라는 지적입니다.   

법인자금 유치 열 올린 유진투자증권…과도한 수익률 제시 논란  

14일 금융투자업계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유진투자증권은 올해 초인 지난 2월 법인 고객 대상으로 지역농협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부터 증권사 특정금전신탁(MMT)/머니마켓랩(MMW), 외화 신탁(USD Sell&Buy), 채권을 담보로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레포펀드(Repo)를 활용한 매칭형 수익증권 등을 판매했습니다. 

가입 기준은 MMDA의 경우 최소 10억원 이상, MMT나 MMW는 50억원 이상이었고, 가입 기간은 짧게는 1주일이나 2주 혹은 1~2개월, 길어야 6개월~12개월 이내로 법인 고객들이 3~6개월, 6~12개월 정도 여유자금을 굴리기에 적합한 채권형 랩·신탁 상품들입니다. 

문제는 이들 상품이 내건 수익률이 시장금리보다 대체로 높다는 점입니다. MMDA 수익률은 최소예치기간(7일) 이상이면 3.7%로 정기예금 평균금리보다 높았고 MMT와 MMW 수익률은 2주 이상이면 4%/4.3%, 1개월 이상 4.3%/5.0%, 2개월 이상 4.8%/5.5%였습니다. 

외화 신탁은 편입한 상품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5%대 중후반에서 많게는 6%대 초반 수익률을 제시하며 법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외화자금 유치에 나섰습니다. 
 
이러한 금리 수준이 과연 적정한 건지 타 증권사 신탁부서 담당자 등 복수의 관계자들에게 문의한 결과, 해당 상품을 판매했던 올해 초 2~3월의 경우 유진투자증권 측이 제시한 금리 수준은 시장 금리 수준을 뛰어넘은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유진 측 제안서 자료에서 건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채권을 제외하고 그 정도 금리면 높은 수준이며 MMT와 MMW도 2~3월에는 유진 측이 제시한 금리 정도는 안 나왔다"고 전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당시 시중은행 예금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금리 수준이 3.4%였고, A1등급 단기사채나 CP 수익률도 기간별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대체로 3% 후반에서 4% 초반이었다"며 "유진 측 제안서대로 운용할 경우 (수익률을 맞추기) 어려워 보인다"고 답변했습니다. 

결국 단기 상품인 채권형 랩이나 신탁에 돈을 넣은 법인 고객들에게 이러한 수익률을 맞춰주려면 채권 돌려막기는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단기 금융투자상품인 랩과 신탁에 만기가 장기(1~3년)이거나 유동성이 낮아 가격변동 위험이 높은 장기 CP 등을 편입하는 식으로 상품 운용과 판매가 이뤄졌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에 대해 유진투자증권 관계자는 "기관 고객에게 제안한 랩‧신탁 상품의 목표수익률의 경우 당시 시장 환경을 감안했을 때 합리적이고 타사 대비 평균 수준"이라며 "일부 목표 수익률이 높게 설정된 상품의 경우 투자 범위가 넓은 기관 고객들을 위해 다양한 증권을 편입하여 제안드린 상품"이라고 답변했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도 증권사들의 법인자금 유치 경쟁과 관련해 "경쟁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과도한 수익률 경쟁 과정에서 만기가 긴 채권을 담는다던지 유동성이 제약된 사모 채권이나 CP처럼 물량이 적은 것들 위주로 운용하다 보니까 작년 하반기처럼 금리 상승 국면이 재차 도래해 적절히 대처하지 못할 경우 리스크 관리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법인자금 유치 경쟁이 낳은 부작용…채권 돌려막기는 선택 아닌 필수?
 

업계에서도 증권사들의 랩·신탁 상품 관련 불건전 영업관행의 주된 배경에 거액의 법인 자금 유치 경쟁이 깔려 있다며, 자금 유치에 성공하려면 경쟁사보다 높은 수익률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만큼 영업력과 판매망이 잘 갖춰진 대형사보다 중소형사에서 이러한 영업 행태가 두드러진 모습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시중의 한 대형 증권사 법인영업 담당자는 "법인 고객들은 증권사들의 반드시 유치해야 하는 핵심 고객"이라며 "개인과 달리 가입 금액 규모가 클 뿐더러 이들 상품을 정기적으로 찾는 단골 손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회사마다 보유 중인 여유 자금을 짧게는 몇달, 6개월 정도 안정적으로 굴리며 적정한 이자 수익도 얻길 원하는 법인 고객들의 니즈에 채권형 랩과 신탁이 대체로 부합한다"며 "리테일은 물론 자산관리(WM) 영업의 핵심 축으로 랩과 신탁이 부상하면서 증권사 입장에서는 법인 자금 유치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지난해 하반기 시장 금리가 급등하며 장기채 평가손실로 많게는 수조원의 손실을 기록하며 법인 고객들 투자금을 돌려주지 못했던 아찔한 경험을 해놓고도 당국의 시장 개입으로 시장금리가 연초 이후 안정세를 되찾자 이런 영업 행태가 또 다시 도진 게 아니냐는 평도 나옵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장금리가 안정기에 접어들면 고수익을 내걸고 단기 상품에 만기가 긴 채권을 담아 미스매치 운용을 해 온 것은 업계 내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져 왔다"면서도 "그러다 또 시장금리가 요동쳐 고객 자산에서 손실이 나 자사 펀드나 계정을 동원해 불법적인 수익 보전 행위를 반복한다면 리스크 관리도 내부통제 장치도 작동하지 않는 심각한 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금감원은 증권사들이 작년 말 불건전 영업행위로 큰 홍역을 치르고도 이러한 영업을 여전히 지속해오고 있다고 결론내리고 지난 5월부터 하나증권을 시작으로 전 증권사를 대상으로 현장검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금감원은 최근 점검을 완료한 증권사 외에도 위법 개연성이 높은 증권사를 추가로 선정해 고객자산 운용 관련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 기능을 바로잡도록 조치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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