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 아파트, ‘입주 1년’도 안 된 새 집?... “빗물받이 규격 미달·관리 미흡 가능성 ”

이미호 기자 2023. 7. 1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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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자리잡힌 구축...신축은 ‘중구난방’
지하주차장·조경 등도 ‘변수’

인천 서구 백석동 검암역로열파크씨티푸르지오, 서울 개포자이프레지던스, 흑석리버파크자이, 반포래미안원베일리...

수도권 곳곳에 호의주의보가 내려진 13일 인천시 서구 백석동 한 아파트 입구에 침수 방지를 위한 모래주머니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

최근 대형 건설사 브랜드 아파트에서 침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입주민들이 현장 사진이나 동영상을 SNS에 올리면서 뜻하지 않게 ‘유명세’를 타게 됐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입주한 지 1년이 채 안 된 신축아파트라는 점이다. 실제 신축아파트가 구축아파트보다 침수될 확률이 더 높은 것일까? 그렇다면 어떠한 이유 때문일까?

14일 건설업계 및 관련 학계에 따르면 우수관거 설계 관련 기준은 ▲하수도설계기준(환경부) ▲방재성능목표(지방자치단체 고시) ▲재해영향평가(지자체) 등이 있다. 2022년 개정·시행된 하수도설계기준은 우수관거의 설계빈도를 지선관거 10년, 간선관거 30년으로 정하고 있다. 다만 기후변화를 반영해 지선관로를 30년 빈도, 간선관거를 50년 빈도 이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방재성능목표는 홍수 저감을 위한 방재정책에 적용하기 위한 ‘강우량 목표값’을 뜻한다. 지자체장은 5년마다 이 목표를 재검토하고 공표하도록 돼 있는데(자연재해대책법 제16조의4), 각 지자체별로 시간대별 목표를 고시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30~50년 빈도 강우량 범위 내에서 결정된다.

재해영향평가는 일정 규모 이상 개발사업 시행시 받도록 돼 있다. 대부분의 아파트 시공이 이 기준을 따른다. 재해영향평가에서는 개발 사업 전·후 홍수량을 비교해 아파트 완공 이후에도 홍수량이 증가하지 않도록 구조적 대책을 수립한다. 단 이 때에도 30~50년 빈도 강우량이 기준이 된다.

따라서 최근 물고임 현상이 발생하거나 침수된 아파트의 경우, 배수 설계 자체가 잘못됐거나 용량이 부족했을 가능성 보다는 단지 내 빗물받이 규격 미달 또는 관리 미흡이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진걸 동신대학교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는 “침수지역에 대한 설계도면, 침수상황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 이후에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이번에 문제가 된 곳들은 배수설계 오류나 용량 부족 보다는 빗물받이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주 교수는 “빗물받이가 유량이 충분히 유입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지 않거나 관리미흡으로 유입부가 덮여 있었을 것”이라며 “만약 배수관로 용량부족이 원인이었다면 작년 강남 대치역 인근 아파트가 침수됐던 것처럼 침수 규모가 더욱 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신축 아파트는 빗물의 일부가 배수관을 통해 가지만 일부는 물길의 방향성이 잡히지 않아 중구난방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축은 시간이 오래 지나면서 물길이 일정한 방향성을 띄지만, 신축아파트는 그러한 길이 자리잡는데 필요한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간당 내리는 비의 양을 따져서 가장 많이 내릴때를 기준으로 배수용량을 결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배관을 깔게 되는데, 최근 내리는 비의 형태가 ‘매우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퍼붓는’ 국지성이라는 점에서 배수로가 빗물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땅이 빗물을 흡수하면 우리가 보지는 못하지만 지하에 물길이라는 것이 있다. 이른바 배수가 되는 길이 있는데 신축 아파트들은 배수관 외에 그런 길들이 자리 잡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일각에선 급격한 기후변화에 따라 하수관 설계기준을 변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후변화로 잦아지는 폭우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다. 한 주택공사 현장관리자는 “최근 국지성 호우는 500년 빈도(500년 만에 한 번 내릴 가능성)라는데 현재의 기준으로 충분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침수된 일부 아파트 내부 배수관만 넓힌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관리자는 “만약 기준을 바꾼다면 아파트 내부 뿐만 아니라 하수처리장까지 이어지는 모든 구간의 관경을 변경해야 한다. 필연적으로 상당한 시간과 예산이 든다”고 했다.

지하주차장 여부도 변수가 될 수 있다. 구축 아파트는 지하 주차장이 없는 경우가 많아 빗물이 바로 땅으로 흡수될 수 있다. 우수관도 지상에 있어 물이 빠지기도 쉽다. 하지만 신축 아파트는 지하주차장을 2~3층 높이까지 올리고 그 위에다가 조경을 하는 형태로 설계한다. 이때 배관시설도 함께 들어가는데 빗물이 바로 땅으로 흡수되는 것과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최근 신축아파트들이 고급화를 지향하면서 조경 면적을 넓게 가져가는데 배수로 확보에 걸림돌이 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화단과 우수관은 직접적 상관관계가 없다는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주택시공에 오랫동안 종사한 전문가는 “우수관경은 전체 유입면적이나 강우강도와 관련이 매우 깊다”면서 “아파트 조경 면적이 넓어진다고 해서 배수관경이 커질 이유는 딱히 없다”고 했다. 설사 아파트 내 조경시설이 아예 없다고 하더라도 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따르면 2015년 3월 1일부터 공동주택(아파트) 단지 내 조경시설 확보의무는 삭제된 상태다.

다만 신축 아파트에 식재된 나무들의 흡수력이 구축 아파트의 ‘오래된 숲’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린 묘목들은 뿌리가 자리잡는 데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재건축 시공을 할 때, 기존 나무들을 그대로 두고 공사를 할 수 없으니 옮기거나 없애야 한다. 그런데 옮기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다 나무가 제대로 자랄지도 미지수라 결국 다 없애버릴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또 그렇게 해서 완공한 신축아파트도 조경 계획에 따라 계절별로 인기 있는 나무들이나 꽃 등을 배치하고 아파트 콘셉트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자연적 특성에 따른 배수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기 힘든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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