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배우조합, 63년 만에 작가조합과 동반 파업…할리우드 마비 위기
미국 작가조합(WGA)이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 이하 배우조합) 역시 파업에 들어간다. 배우조합의 파업은 1980년 이후 43년 만이며 할리우드 양대 노조라 불리는 작가조합과 배우조합이 동반 파업에 나선 것은 지난 1960년 이후 63년 만이다. 양대 노조의 동반 파업에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화 산업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배우조합의 수석협상가 던컨 크랩트리-아일랜드는 13일(현지 시각) LA 조합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도부 투표로 14일 0시부터 파업을 시작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배우 16만명이 소속된 배우조합은 넷플릭스, 디즈니, 디스커버리-워너 등 대기업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영화·TV제작자연맹(AMPTP)과 고용계약 협상을 벌였으나 협상은 결렬됐다. 배우조합에 속한 배우들은 파업 지침에 따라 14일부터 영화 촬영은 물론, 이미 제작이 끝난 영화들의 홍보 행사, 각종 시상식 등에도 참석할 수 없게 된다.
배우조합은 지난달 7일 파업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를 부쳤고 당시 투표자 98%가 투표에 찬성했다. 이후 협상이 결렬될 경우 곧바로 파업에 들어간다는 계획으로 협상에 임해왔다.
배우조합은 지난 5월부터 파업을 시작한 작가조합과 마찬가지로 스트리밍 시대 도래에 따른 재상영분배금(residual)과 기본급 인상,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배우의 권리 보장 등을 요구해왔다. 특히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시청자들이 작품을 볼 때마다 작가·감독·배우들에게 지급되는 로열티인 재상영분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배우들의 큰 불만이다. 배우들은 또 자기 외모나 목소리가 AI가 생성하는 이미지에 무단으로 사용될 것을 우려하며 이를 방지할 대책도 요구하고 있다.
프랜 드레셔 배우조합 회장은 “고용주들은 월스트리트와 탐욕을 최우선 순위로 삼고, 그 기계를 작동시키는 필수적인 기여자들을 잊고 있다”며 “역겹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사측인 AMPTP는 성명에서 “이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노조의 선택”이라며 “노조가 역사적인 임금·재상영분배금 인상, 연금·건강보험료 상한액 대폭 인상, 시리즈 제작 기간 단축, 배우의 디지털 초상권을 보호하는 획기적인 AI 대책 등을 담은 우리의 제안을 묵살했다”고 밝혔다.
◇ 파업 장기화되면 경제 손실 5조원 관측도
이번 양대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제기면서 할리우드 산업에 큰 타격이 있으리란 우려도 나온다. 영국 가디언은 “미 배우조합의 영향력은 전 세계에 미친다”며 “할리우드 배우가 출연하는 모든 영화나 프로그램은 14일 자정부터 중단되거나 대규모로 일정을 변경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당장 영향을 받을 작품으로는 올해 가을까지 촬영이 예정돼 있던 리들리 스콧 감독의 대작 ‘글래디에이터 2′와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속편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2′, TV 대작 시리즈 ‘하우스 오브 드래곤’, ‘안도르’ 등이 꼽힌다.
CNN에 따르면 케빈 클로든 밀컨 연구소 수석전략가는 배우조합과 작가조합의 동반 파업이 조속히 해결되지 않을 경우 경제적으로 40억달러(약 5조원) 이상의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클로든은 “영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 할리우드 제작사의 스튜디오가 있거나 후반 작업을 주로 하는 지역들이 실질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측인 AMPTP가 이번 협상 막바지에 미 연방조정화해기관(FMCS)의 중재를 요청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며 “(AMPTP 소속) 스튜디오들은 배우조합 파업의 즉각적·중기적인 영향에 대해 (작가조합 파업 때보다) 훨씬 더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할리우드의 대기업들은 배우들의 파업 영향을 심각하게 인식하면서도 배우들의 임금·재상영분배금 인상 등 요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스트리밍 경쟁 심화, 산업구조 재편으로 기업들의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비용 절감에 열을 올리는 기업들 입장에서 배우들의 요구는 지출 증가이기 때문에 들어주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디즈니의 수장으로 복귀한 밥 아이거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오전 CNBC와 인터뷰에서 “배우들의 기대치는 현실적이지 않은 수준”이라며 “그들은 이 사업이 이미 직면한 일련의 도전을 가중하고 있으며, 솔직히 이것은 파괴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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