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파업 이틀째…"응급환자 못 받아요" 병원 전국서 속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이 이틀째에 접어든 가운데 파업 참여 병원 상당수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큰 혼란은 발생하지 않는 모습이다. 사전에 외래·수술 일정을 조율하고 비(非)노조원도 적극적으로 진료 지원 업무에 가담하면서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고 있다. 문제는 '응급 환자'다. 거점 병원의 파업 여파가 다른 중소 병원의 응급의료 마비로 이어지면서 소위 '응급실 뺑뺑이'로 환자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힐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4일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엔 전국 의료기관의 응급실 운영 현황이 실시간 공유되고 있다. 남은 병상이 50% 미만이면 빨간색(경고), 50~79% 남으면 노란색(주의), 80% 이상 남으면 초록색(원활)으로 나타난다.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현재 파업에 참여한 지역 병원 상당수가 응급실 수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조원 400명이 파업에 참여해 전국적으로도 파업 참여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부산시 서구의 부산대병원은 전날 오전 9시 5분과 오후 6시 40분 각각 "파업으로 인한 인력 부족으로 모든 진료과 진료 불가", "신경외과 병실 및 인력 부족으로 수용 불가"를 공지했다. 이날 오전 "뇌출혈, 복부 응급수술 등 중증 응급 질환 치료는 불가능한 상태"임을 알렸다. 오후 2시 현재, 응급실 병상 17개 가운데 14개가 비어 있긴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역시 "병동 입원 불가로 입원 가능성 있는 환자는 응급실 진료가 불가하다"고 알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곳 응급실 내 고압산소치료 장비까지 고장 나 응급실에 실려와도 산소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악재까지 겹쳤다.
경남 양산시의 양산부산대병원은 응급실 내 병상 29개 가운데 22개가 비어있어 여유는 있다. 다만 이 병원 응급실에선 "의료진 부재로 모든 입원 예상되는 환자 진료 불가능"이라는 메시지를 종합상황판에 공유했다. 현재 양산부산대병원은 파업 개시 후 신규 환자 입원이 불가능한 상태다.
수도권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된 서울시 강동구의 강동경희대병원은 "중환자 입원이 불가능해 인터벤션(중재술)이 필요한 뇌졸중 환자 수용이 어렵다"는 메시지를 띄웠다. 이 병원 주변의 또 다른 중형병원 관계자는 "전주 대비 응급실 환자가 20% 가까이 늘었다"며 "파업 참여 병원들이 환자 수용이 어려워지면서 발생한 '풍선 효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의 국립암센터는 응급실 내 24개 병상 가운데 5개만 남아 '경고' 상태다. 국립암센터는 직원의 약 50%가 보건의료노조 소속이다. 이곳은 파업 개시 전날인 지난 12일, 노조와 병원 운영진이 파업 참가 인원을 최소화하기로 협의해 전면 취소했던 수술·외래 건수를 채우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의 경우 14일 오후 1시 기준, 응급실 내 30병상 가운데 15개가 비어 있어 약간 밀집한 상태다. 전날(13일) 오후 3시, 남은 병상이 7개에 불과해 경고 수준이었던 상황에서 나아졌다.
응급실은 외상, 손가락 절단등 위급한 환자의 1차 처치를 담당하는 곳이자 입원 환자를 중개하는 '게이트 키퍼'다. 수술 등 2차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를 구분하고 담당 진료과를 연결해 입원 치료를 진행한다. 문제는 파업에 참여한 노조 조합원의 상당수가 환자 돌봄을 책임지는 간호사란 점이다. 병동 입원이 어렵고, 이 때문에 중증 응급 환자가 초기 처치 후 받아야 하는 2차 치료가 더뎌지거나 이뤄지지 못하게 된다.
이번 파업에 참여한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병동에 입원했던 환자마저 돌볼 간호사가 없어 다른 병원이나 집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노조가 이번 파업에 필수 의료 인력은 참여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입원 병동 운영이 축소되면 그 여파로 중환자실, 응급실 운영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응급실이 비었는데도 환자를 받지 못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수용할 수 있는 응급실을 찾지 못해 환자가 병원을 전전하다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례가 더 늘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대구에서 일어난 여학생 추락 사망 사고와 관련해 대구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최근 피의자로 입건되면서 환자 치료 결과에 대한 책임을 의사만 떠안는다는 불만도 응급의학계 내부적으로 팽배한다. 또 다른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파업이 길어져 업무 부담이 커지거나 2차 처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게 되면 처음부터 위험한 환자는 받지 말자는 병원이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보건의료노조의 집계 결과 총파업 2일 차에도 122개 지부, 140개 사업장의 4만5000여 명은 중단이나 복귀 없이 동일하게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노조는 병원 경영자(사용자)·정부의 협상 결과를 바탕으로 이날 오후 4시 중앙총파업투쟁본부 회의를 개최해 '무기한 파업' 여부와 방식을 결정할 계획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당한 쟁의 행위를 벗어나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막대한 위해를 끼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업무개시명령'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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