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경험할 수 없는 ‘나’는 죽음에 대해 무얼 생각할 수 있나[책과 삶]
죽음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 지음·김정훈 옮김
호두 | 716쪽 | 3만2000원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심장이 마지막으로 박동하는 순간까지도 죽음은 현재가 아닌 미래에 있다. 내가 존재할 때 죽음은 존재하지 않고, 죽음이 존재할 때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죽음은 경험할 수 없는 초경험적 비극이자 피할 수 없는 자연적 필연이다. 죽음을 경험할 수 없는 ‘나’는 죽음에 대해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음악학자인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가 <죽음>에서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 책에는 1957~1959년 소르본대학에서 강의하고 라디오에서 방송한 구술 기록이 담겼다. 죽음이라는 화두를 이만큼 탐구한 작업은 전대미문이라고 할 만하다.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차근차근 설명하지만 사유가 광대하고 추상적이라 난해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장켈레비치는 1~3인칭 관점으로 죽음을 구분한다. 1인칭 죽음은 ‘나’의 죽음이다. 이 죽음은 경험하는 순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기에 형언할 수 없다. 2인칭 죽음은 ‘나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다. 대신할 수 없는 이를 잃었다는 애통함으로 죽음을 실제적으로 마주한다. 3인칭 죽음은 ‘나와 무관한 사람’의 죽음이다. 언론 기사로 읽는 이름 모를 타인의 죽음이 여기 해당한다. 장켈레비치가 첫머리에 예로 드는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보면 치안판사 이반의 죽음은 한 개인의 비극(1인칭)이고 가족의 불행(2인칭)이며 사법부의 인사이동(3인칭)이 된다.
장켈레비치는 ‘죽음 이편의 죽음’ ‘죽음 순간의 죽음’ ‘죽음 저편의 죽음’으로 사유를 이어간다. 삶은 유한하고, 육체가 있으며, 시간이 흐르면 노화한다. 그는 죽음이 삶의 장애물이자 조건이 된다고 본다. 죽음의 신비에서 삶의 절대적 가치를 긍정하는 환희로 나아간다. “죽음은 살아있는 존재의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살았다는 사실을 무화할 수는 없습니다. (중략) 누군가가 태어나서 살았던 순간부터, 무언지 말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항상 무언가가 남을 것입니다. (중략) 연연세세토록 이 신비로운 ‘존재했다’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장켈레비치 자신은 어떤 ‘무언가’를 남기려 했을까. 그는 나치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자 독일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1940년 이후 어떤 독일어 문장도 읽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대학 교단에만 있지 않았다. 1941년 지하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며 나치에 저항했고, 1968년 이른바 ‘68혁명’에 참가해 학생 시위와 노동자 파업을 지지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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