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소년’이 손 번쩍!…소년원서 일어난 뜻밖의 일 [따만사]
‘아이들이 졸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은 오산이었다. ‘함신익과 심포니 송’의 오케스트라 공연은 달랐다. 트럭에 ‘음악’을 싣고 ‘문화 예술’ 소외 지역을 찾아가는 음악인들이 있다는 제보를 받은 따만사가 지난달 28일 이들을 따라 도착한 곳은 대전 소년원이었다.
소년원생들이 굳은 표정으로 공연장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공연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다루기 힘든 연령대, 그것도 제도적 통제가 불가피했던 청소년들이 교양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지휘자의 질문에 아이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지휘자는 관중 속으로 들어갔다. “저 형은 곱창집 아들내미인데 저거 하고 있어” 지휘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사람은 곱창 모양 금관악기를 든 ‘호른’ 연주자였다. 아이들이 실룩 웃었다.
각각의 악기가 어떤소리를 내는지 소리도 들려줬다. 아이들은 ‘놀란 토끼눈’을 떴다. 노래방에서 흔히 봤던 ‘탬버린’도 전문가의 손에서 완전히 다른 소리가 나자 “우와~!”하며 탄성을 내질렀다.
함신익 “저 형은 바이올리니스트인데 집시야. 집시가 뭔지 아는 친구?”
원생 “저요! 저요! 집안일 하는 사람요?” “집에만 있는 사람?”
함신익 “넌 제발 손좀 그만 들어”, “넌 팔에 뭘 그린거니?”
원생들 “하하하~”
연주곡은 결혼식장에서 한번쯤 들었을 법한 유명 클래식 음악부터 BTS의 ‘다이너마이트’, 이무진의 ‘신호등’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자 아이들은 “제발 한 곡만 더 해달라”며 애원했다.
공연 후 즉석으로 소감을 묻자 한 여학생이 이렇게 답했다. “악기 하나에서 나오는 소리랑 여러 개 같이 합쳐서 나오는 소리를 비교해서 들으니 화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건지 알게 됐어요.” 단원들과 직원 모두를 감동시킨 답변이었다. 사회에서 남들과 조화를 이뤄 산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하모니’의 중요성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소년원 지도교사는 “아이들이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다. 원래 대답을 잘 안하는 아이들인데 눈들이 아주 초롱초롱 했다”며 “이곳 아이들은 대부분 결손 가정에서 자랐다. 문화 예술의 혜택을 보지 못한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삼양동 판자촌에서 세계 초일류대 교수로
심포니 송을 이끄는 함신익은 이른바 ‘흙수저’다. 서울 삼양동 달동네에서 자라 세계 초일류 ‘예일대’ 교수가 된 문화예술인이다. 드라마 ‘베토벤바이러스’의 주인공 ‘강마에’의 실존인물과 흡사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부모의 뜻에 따라 ‘순위고사’(지금의 임용고시 격)를 치러 합격했고, 성북구의 한 중학교에 배치됐다. 그러나 어린시절부터 꿔왔던 음악가의 꿈을 포기하지 못했다. 결국 안정된 교사가 되길 포기하고 미국으로 갔다.
그곳에서 웨이터, 냉동트럭 운전기사, 지압사 등의 일을 하며 음악을 공부했고, 라이스대학 석사를 거쳐 명문 이스트만 음악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5년 150대 1의 경쟁을 뚫고 한국 최초의 미국 예일대 음대 교수가 된 그는 고정관념과 형식을 파괴한 기발한 운영방식을 추구했다. 미국의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갈 차세대 지휘자 5인에 꼽히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대전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KBS교향악단 음악감독 등을 지냈으며, 현재는 오케스트라 ‘함신익과 심포니 송’을 이끌고 있다.
“Pass it on”
함신익이 가장 공을 들여온 것은 ‘찾아가는 트럭 콘서트홀-더윙’이다. 양 날개가 펼쳐지는 ‘윙트럭’을 개조해 음향시설이 부족한 지역에서 즉석 무대를 여는 것이다. 운영은 순전히 자비로하고 있다.
그래서 만든 게 ‘더 윙’이다. 2014년 노루표페인트 한영재 회장의 도움을 받아 이 트럭을 만들었다. 그는 강원도 산간 벽지, 탄광촌, 군부대, 요양병원, 정신의료원, 하나원, 소록도 등 전국방방곡곡 문화 예술 접촉이 쉽지 않은 지역을 찾아 다녔다. 전신을 움직이지 못해 누워만 지내던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봤다.
함신익은 “한번은 겨울에 공연을 갔는데 아이들이 ‘징글벨’ 노래 조차 모르더라. 그 정도로 문화와 동떨어진 삶을 사는 아이들이 있다”고 떠올렸다.
단원들은 좁은 트럭 무대에서 최상의 연주를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 공연은 주로 관객과 거리가 없는 스탠딩 공연으로 이루어진다. 마치 ‘록 공연’ 인 듯 관객들은 트럭 바로 앞에 서서 춤을 추기도 한다.
10여년간 사용했던 더윙은 수명을 다해 현재 최첨단 ‘리뉴얼’ 더윙을 제작중이다. 오는 7월 말 또는 8월 초에 완성 된다. 국내 최초이자 세계 최초의 ‘트럭 오케스트라 공연’이지만, 함신익은 Pass it on의 뜻에 따라 특허를 내지 않았다. 좋은 일이라면 누구나 벤치마킹 하라는 의미다.
“예술은 ‘술’(Technic)보다 ‘예’(Art)가 먼저”
“악기를 다루는 테크닉보다 예술가의 자질이 우선이 돼야 한다”는 게 함신익의 모토다.
심포니 송은 ‘음악 사관학교’를 표방한다. 활동 기간은 최대 5년이며, 이 기간 동안 경력을 쌓아 더 좋은 무대로 옮겨가기를 장려한다. 이곳을 거쳐간 음악 인재들이 많다. 단원은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다. 배경이나 학벌은 중요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관객에 대한 자세가 중요하다.
함신익은 “오케스트라 음악가들은 주로 대접을 받아 본 일이 많지 봉사할 일이 많지 않다. 엘리트 코스를 밟고, 학교다닐 때부터 과외 등을 하며 극진한 대접을 받아온 이들이 많다”며 “그래서 반드시 필요한 경험이 봉사다. 이걸 해봐야 진정한 음악적 소양이 길러진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공연을 하고 난 뒤에 오는 뿌듯함에 단원을 자처한다. 고부현 단원(콘트라베이스)과 김소희 단원(플룻)은 “공연을 하면서 연주자가 힐링 받는 느낌이다. (함 선생님이) 클래식의 진입 장벽을 낮추셨다. 공연 중에 춤도 추고, 클래식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재편곡 하신다”고 말했다.
단원 내 분위기에 대해선 “함 선생님은 음악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하신다”며 “선생님도 평상시나 리허설 때는 친근하게 대하시고 딱딱한 분위기가 없다. 다만 카리스마가 필요할 땐 넘치게 발휘하신다. 준비성이 철저하시다”고 말했다.
“사비들여 봉사공연...기업 관심 절실히 필요”
‘함신익과 심포니 송’의 오랜 ‘팬‘이자 지원자인 안정근 충남대학교 명예교수는 “고아원, 탁아소, 소년원 등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대상이 사회에 많다. 문화예술적으로 낙후된 곳도 많다. 그런데 한국의 젊은 음악인들은 본인의 음악적 재능이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느낄 기회가 많지 않다”며 “함신익과 심포니 송은 그 메신저 역할을 하는 유일무이한 오케스트라”라고 찬사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관심과 후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포니 송은 2014년 창단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마운 손길들이 있었기에 유지가 가능했다. 연습실과 사무실은 10여 년간 EG그룹 박지만 회장이 조건없이 무상으로 제공해줬다. 트럭은 노루표 그룹에서 지원해줬다. 소년원 공연은 삼성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봉사 공연은 한번 갈 때마다 적잖은 돈이 들어간다. 일부 공연에는 후원이 있어서 단원들에게는 연주료가 지급되지만 함신익은 보수를 받지 않는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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