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빈손'… 거듭된 北 도발에도 힘 못 쓰는 안보리
전문가 "안보리 통한 안정 도모는 이제 옛말… 美도 의존 안 해"
(서울=뉴스1) 이창규 기자 =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지난 12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에 따른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한 공개회의를 긴급 소집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빈손'으로 끝났다.
우리나라와 미국·일본 등 10개국이 회의 뒤 별도의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의 거듭된 안보리 결의 위반을 규탄했으나, '국제평화·안전유지에 필요한 행동과 책임'을 갖는 안보리 차원에선 아무런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서 이른바 '안보리 무용론'이 재차 제기될 전망이다.
안보리는 미국·영국·일본·프랑스 등의 요청으로 13일(현지시간) 북한의 이번 ICBM 발사 문제 다루기 위한 공개회의를 열었다. 안보리가 북한 관련 문제로 공개회의를 개최한 건 지난달 2일에 이어 40여일 만이다. 지난 회의는 북한의 5월31일 정찰위성 발사 시도 때문에 열렸다.
그러나 지난 회의에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안보리 회의에서도 추가적인 대북 결의 채택은커녕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의장성명이나 언론성명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북한의 최중요 우방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이번에도 '한반도 긴장의 책임은 미국에 있다'며 북한을 두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북한은 작년에도 ICBM 8발을 포함해 최소 70여발의 탄도미사일을 쏴 올리는 등 전례 없이 높은 빈도의 무력도발을 벌였지만, 당시에도 중·러 양국은 '미국 책임론'과 '제재 무용론 등을 주장하며 사실상 북한의 '뒷배'를 자처했다.
이런 가운데 이날 안보리 회의엔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가 이해당사국 자격으로 참석, 발언에 나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북한 측 인사가 안보리 회의에 참석해 발언한 건 2017년 12월 이후 5년7개월 만이다.
북한 김 대사는 이번 ICBM '화성-18형' 발사는 "주권 국가의 자위권 행사"라고 주장하며 "주변국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오히려 그는 한미 양국 정부가 지난 4월 발표한 '워싱턴 선언'과 그에 따른 핵협의그룹(NCG) 설치, 그리고 미군 핵잠수함·전략폭격기 등의 한반도 전개와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등을 거론하며 "이런 전례 없는 행위들이 지역 정세를 핵전쟁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대사는 "한반도에서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할지 여부는 미국의 움직임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며 "그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미국은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란 말도 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지난 1990년대 이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북한은 연이은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등에 따라 2017년 말까지 안보리 차원에서 '고강도' 대북제재가 취해지자 2018~19년엔 우리나라·미국 등을 상대로 정상외교를 벌이며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으나, 이 시기에도 핵·미사일 기술 고도화를 지속해왔다는 게 각국 정부와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북한이 스스로 설정한 '시간표'에 따라 각종 무기개발 시험 등을 진행해오면서 그에 따른 군사적 긴장의 책임을 오히려 한미 등에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김 대사의 이번 안보리 회의 참석에 대해 "최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의 미군 정찰기 담화 등을 비롯해 북한이 일종의 '여론전'을 다시 시작한 것 같다"며 "무력도발 효과를 증폭시키고자 유엔에서 발언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은 앞서 10~11일 국방성 대변인과 김 부부장 명의의 3차례 담화를 통해 최근 미군 정찰기의 동해 상공 비행 등 대북 정찰활동을 비난하며 이 같은 일이 반복될 경우 군사적 행동으로 대응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리고 12일 ICBM 발사를 감행했다.
일각에선 "북한 김 부부장 등의 담화와 이번 ICBM 발사를 직접 연결 짓기는 무리"란 분석도 내놓고 있지만, "북한이 담화 횟수나 ICBM 발사시기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려 했을 수 있다"는 견해도 제시된다.
북한의 핵실험뿐만 아니라 탄도미사일 및 그 기술을 이용한 모든 비행체 발사는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특히 안보리는 2017년 12월 채택한 제2397호 결의에 북한이 핵실험·ICBM 시험을 감행할 경우 "대북 유류 수출을 추가 제한하기 위한 행동을 하기로 결정한다"는 이른바 '트리거'(방아쇠) 조항을 삽입하기도 했지만, 현재 이 조항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안보리에서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를 채택하기 위해선 전체 15개 이사국 가운데 9개국 이상의 찬성을 얻는 동시에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등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어느 1곳도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
의장성명이나 언론성명은 안보리 이사국의 컨센서스(전원동의) 방식으로 채택하기에 역시 이사국 가운데 1곳이라도 '반대' 의사를 밝힌다면 성립되지 않는다.
고 위원은 "안보리를 통해 안정을 도모한다는 기존 방식은 이제 더 이상 통용될 것 같지 않다. 미국도 안보리에 의존하는 대신 독자제재나 '소다자'(小多者) 방식의 제재 집행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며 "안보리 무용론은 한시적이 아니라 앞으로 상당히 오래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yellowapoll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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