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콜라⋅막걸리 걱정할 필요 없는 3가지 이유
WHO 발암물질 지정은 선언적 수준
베이컨과 핵폭발을 동급으로 둘 수 없어
WHO의 발암물질 지정에 대한 오해와 진실
세계보건기구(WHO)가 아스파탐을 발암 가능 물질(2B)로 분류한 13일(현지 시각) 프란체스코 브랑카 WHO 영양·식품안전국장은 “기업에 아스파탐 함유 제품을 철회하라고 강제하는 것도 아니고, 소비자에게 소비를 완전히 중단하라고 조언하는 것도 아니다”며 “아주 약간의 절제를 권고할 뿐”이라고 말했다.
브랑카 국장은 이날 기자 회견에서 “가끔 탄산음료를 마시는 사람은 암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WHO가 아스파탐을 발암 가능 물질로 지정했지만, 일상생활에서 섭취하는 수준에서는 건강에 위험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인공감미료를 둘러싼 논란은 산업계에서 계속되는 모양새다.
식품⋅의약품 산업계에서 아스파탐을 대체하는 인공감미료를 찾아 나섰고, 소비자들도 아스파탐이 들어가지 않은 저칼로리 제품을 골라서 소셜미디어에 공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다이어트 콜라와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들이 ‘발암 위험성’을 근거로 아스파탐 대체제를 찾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 내용을 정리했다.
◇ IARC 카테고리
아스파탐의 위험성에 대해 논하려면 먼저 이번에 아스파탐을 발암 가능 물질로 지정한 국제암연구소(IARC)와 이곳의 발암 물질 분류 방식에 대해 알아야 한다. IARC는 WHO산하 기관으로 직접 실험이 아니라 지금까지 나온 연구 논문들을 분석⋅발표하는 곳이다. IARC는 발암물질을 1(암 유발군) 2A(아마도 암을 유발하는군) 2B(어쩌면 암을 유발할 수도 있는 군) 3(분류 없음)으로 구분한다.
하지만 이런 구분은 ‘암에 걸릴 확률이나 상관관계’와 무관하다. 예를 들어 1군에 베이컨(가공육)과 핵폭발(플루토늄)이 같이 들어 있는데, 핵폭발은 한 번만 노출돼도 무조건 암에 걸리지만, 베이컨은 평생을 먹어도 암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니 그 누구도 핵폭발이 베이컨과 똑같이 위험하다고 하지 않는다.
IARC가 아스파탐을 2B(암을 유발할 수도 있는 군)로 지정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2A는 암을 유발할 개연성(probable)이 크다는 것이고, 2B는 암을 유발할 가능성(possible)이 있어 보인단 뜻이다. IARC는 이번 발표에 앞서 아스파탐 관련 7000건의 연구 논문과 자료 1300건을 검토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 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는 “IARC가 수천 건의 논문을 검토했는데도, 아스파탐을 발암 유발 물질(1, 2A)로 지정하는 데 확신이 없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2B에 포함된 물질 중에는 코코넛 오일 비누, 김치(절인 야채), 알로에 베라, 섬유 산업 종사 등이 있다.
이 교수는 이번 발표에 대해 “WHO가 학계와 각국 정부에 ‘아스파탐 연구를 좀 해 달라’고 주의를 환기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인공 감미료에 대해 연구하도록 정부와 기업이 지원을 좀 해 달라는 뜻이란 것이다.
◇ 아스파탐 관련한 수 많은 논문들
이는 돌려서 말하면 아스파탐 대체 인공감미료가 아스파탐보다 ‘덜 위험하다’는 것도 아니란 뜻이다. 발암 물질로 지정되지 않은 것은 이와 관련한 연구가 없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연구가 없으니, 위험성을 모르는 것이지 위험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란 얘기다.
미국 의학 전문지 스탯(STAT)은 “아스파탐이나 다른 감미료와 다른 형태의 암 사이의 연관성을 찾지 못한 대규모 역학 연구들이 수두룩하다”며 해당 논문들을 소개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12년 미국 임상 영양 저널에 게재된 ‘간호사 건강 연구(NHS)’와 ‘건강 전문가 후속 연구(HPFS)’라는 두 개의 대규모 코호트 추적 연구다.
이 논문은 지난 1976년 간호사건강연구(NHS)에 등록된 30~55세의 여성 간호사 12만 1701명과, 1986년 HPFS에 등록된 40~75세 5만 1529명의 남성 보건 의료 인력(치과의사, 수의사, 약사)을 2~4년마다 추적 설문 조사한 결과 다발성 골수종이나 췌장암 같은 암 발생 위험이 증가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매일 1캔 이상의 다이어트 콜라를 마신 남성의 경우, 다이어트 콜라를 아예 마시지 않은 군과 비교해서 다발성 골수종 발병 위험은 유의미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다이어트 콜라를 마신 군은 그렇지 않은 군과 비교해서 적색육, 즉 돼지고기 소고기 등 육류를 많이 섭취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지난 2014년 미국 영양 저널(The Journal of Nutrition)에는 매일 다이어트 음료를 마신 사람들에게서도 발암 위험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연구 논문도 게재됐다. 이 논문은 1999년 사전 등록한 성인 남녀 10만 442명 가운데 비호지킨림프종(NHL)에 걸린 환자 1196명을 일반 탄산음료, 다이어트 콜라 군, 아예 안 먹는 사람을 분석한 결과 아스파탐은 비호지킨림프종과는 연관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비호지킨림프종에는 다발성 골수종, 거대 림프종,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 등도 다 포함된다. STAT은 이 밖에 독성학 문헌 검토를 통해 12개 이상의 대규모 연구에서 아스파탐 및 기타 감미료가 암 위험 증가를 유발한다는 증거는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 프랑스 소르본 파리 논문
STAT과 이덕환 교수는 WHO의 이번 결정은 지난해 3월 프랑스 소르본 파리북대학(노릇이래)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내다봤다. 프랑스 연구팀은 성인 10만 2865명의 식단, 생활 방식, 건강 정보 등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개인의 대체 감미료 소비량과 암 검진 정보를 비교 분석했는데, 그 결과 아스파탐을 많이 먹는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암 발병 위험이 1.15배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STAT은 해당 논문을 분석했을 때 “아스파탐과 암 유발에는 강한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논문을 보면, 아스파탐과 같은 대체 감미료를 아예 안 먹는 사람들 1000명 중 31명이 암에 걸렸는데, 화학물질을 ‘많이’ 먹는 사람은 암에 걸릴 확률이 1000분의 33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쉽게 풀어쓰면 다이어트 콜라를 평생 단 한 번도 안 먹는 사람과 매일 같이 마시는 사람을 비교했더니, 매일 같이 먹는 사람이 암에 걸릴 위험이 0.2% 늘었다는 뜻이다.
더욱이 발암물질을 논할 때는 암이란 질환의 특성도 감안해야 한다. 암은 고령화와 직결되는 만성질환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예를 들어 비행기가 추락하면 사망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하지만 사람 세포에 암을 유발하는 요인은 수백 수천 가지에 이른다. 이덕한 교수는 “암과 같은 만성질환의 원인을 따지는 개별 논문은 단순한 추정에서 출발할 때가 많기 때문에 정확성을 따지기가 특히 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국 사람들이 아스파탐과 같은 대체 감미료를 많이 섭취하지도 않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우리 국민의 아스파탐 평균 섭취량은 JECFA에서 정한 1일 섭취 허용량(40㎎/㎏.bw/일)의 0.12%에 그쳤다. 식약처는 이날 WHO·유엔식량농업기구(FAO) 산하 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JECFA)가 아스파탐의 현재 섭취 기준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발표한 데 따라 현행 기준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현행 아스파탐 섭취 기준은 체중 60㎏ 성인이 250ml 다이어트 콜라(43㎎)를 매일 55캔(2.4g)을 마셔야 채울 수 있다. JECFA는 아스파탐이 위장관에서 페닐알라닌, 아스파트산, 메탄올로 완전히 가수분해되어 체내 아스파탐의 양이 증가하지 않은 점, 발암성 연구 결과가 과학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 유전독성 증거가 부족한 점 등을 고려했을 때 현재 기준을 변경할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다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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