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남용과 적극행정 간극[뉴스와 시각]

김병채 기자 2023. 7. 14.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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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검찰 수사에서 직권남용 혐의가 눈에 띄게 늘었다.

형법 제7장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 제123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직권남용 범죄는 1953년 형법 제정 시부터 포함돼 70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대부분의 판례는 최근에 형성됐다.

실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사돈 기업인 진도그룹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직권남용으로 기소됐지만,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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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채 사회부 차장

최근 몇 년 사이 검찰 수사에서 직권남용 혐의가 눈에 띄게 늘었다. 형법 제7장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 제123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직권남용 범죄는 1953년 형법 제정 시부터 포함돼 70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대부분의 판례는 최근에 형성됐다. 법제처가 운영하는 국가법령정보센터의 관련 조항 대법원 판례(결정 포함) 38건 중 16건이 2016년 이후 사건이다.

형법 몇 줄 아래에 있는 수뢰 범죄 판례가 장기간에 걸쳐 300건 이상 쌓인 것에 비하면 숫자도 적고, 축적 기간도 짧다. 금품 수수를 동반하지 않은 공무원 범죄는 처벌 사례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사법시험을 쳤던 수험생들은 “직권남용 관련 문제가 나오면 무조건 무죄라고 쓰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사돈 기업인 진도그룹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직권남용으로 기소됐지만,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금품을 받지 않은 공무원의 부적절한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직권남용은 정말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지만, 뇌물을 받지 않은 공무원을 처벌하기 위한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직권남용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 것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됐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사건이 시작이었다. 안 전 수석은 최순실 씨에게 이득을 줄 목적으로 기업들에 미르·K스포츠재단 출자를 강요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검찰은 금전적 이득을 취하지 않은 안 전 수석에게 강요와 직권남용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국민 법감정에 부응하는 형량이 나올 수 있도록 고민하다 법전 속에 있던 직권남용을 발견한 것에 가까웠다.

그 후 실세라고 불렸던 사람은 대부분 직권남용의 타깃이 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잘나갔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이 직권남용죄로 기소됐다.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 강신명 전 경찰청장 등 이른바 권력기관의 수장들도 직권남용을 피해 가지 못했다. ‘사법농단’ 의혹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주요 혐의도 직권남용이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참모, 국무위원들도 줄줄이 직권남용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로 대법원에서 실형이 확정되기도 했다. 이제 장관들이 공공기관장 사표를 받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감사 등을 통해 이유를 찾아야 한다.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직권남용이 남용되고 있다는 말이 많다. 윤석열 정부 인사들은 직권남용 범죄의 무서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선을 넘지 않으면서 일을 하고 있겠지만, 지금의 잣대라면 정권이 바뀐 뒤 직권남용을 피해 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검사 출신 감사위원이 감사원의 절차상 문제를 사실상 공개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도 취임 후 공무원의 적극 행정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는 한편에서 전 정권 정책 방향에 따른 국장·과장급 공무원까지 직권남용으로 수사를 받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모순된 상황에서 제대로 일하는 공무원을 찾기는 힘들다.

김병채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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