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정치화로 국격 훼손한 민주당[김석의 시론]

2023. 7. 14.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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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국제부장
과학을 정치의 도구로 사용 땐
이성 실종되고 진리 왜곡 초래
민주당은 그로시 불러 정치쇼
괴담 정치세력 설 자리 없애야
코로나 왜곡 트럼프 반면교사
재선 실패하고 미국 국격 추락

‘아는 것이 힘이다(scientia est potentia).’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이 말은 종교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던 이성을 제자리에 돌려놓은 근세 철학의 시작을 상징한다. 그는 직접 관찰하고 실험하며 지식을 쌓는 경험을 강조해 중세시대에 억압받았던 인간의 이성을 회복시켰다. 베이컨이 말한 아는 것, 곧 지식이 오늘날 과학의 어원이 된 ‘scientia’라는 점은 과학이 이성의 산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지배세력이 과학을 자신의 입맛에 맞춘 정치의 도구로 사용하는 ‘과학의 정치화’가 이뤄지면 사회에서 이성은 사라지고, 과학이 알려주는 진리는 빛을 잃으며, 사회 구성원들은 무지몽매에 빠져들게 되는 예를 우리는 역사에서 숱하게 봐왔다. 415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로 활동하다 종교계와 갈등을 빚어왔던 히파티아는 광신도들에 의해 납치돼 살해당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천동설에 맞서 지동설을 증명한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2대 세계 체계에 관한 대화’를 썼다가 1633년 6월 종교재판에서 이단 행위를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서야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 중세 암흑시대는 지배세력인 종교계가 이처럼 과학을 정치화하면서 이성이 설 자리를 잃자 찾아왔다.

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코로나19 발생 당시 미국이나 각국에서 벌어진 혼란은 과학의 정치화가 초래한 일이었다. 필자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2020년 미국 대선 초반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를 앞서고 있었다. 막말 논란에도 뚜렷한 보수 가치를 내세운 탓에 강력한 팬덤을 갖고 있었고, 민주당 텃밭이던 러스트벨트(몰락한 동북부 제조업지대)까지 잠식해 재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코로나19에 상황이 뒤바뀌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에 영향을 줄까 과학자들의 잇단 경고에도 코로나19가 독감보다 치사율이 낮다며 심각성을 무시하고 마스크 착용도 거부했다. 그러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코로나19 확진을 받았고 사흘간 입원하면서 선거 판도는 뒤집혔다. 선거 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마스크만 썼어도 재선됐다는 말들이 회자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층을 겨냥해 과학을 정치화한 행동은 재선 실패로만 끝나지 않았다. 미국에서 엄청난 수의 확진자와 사망자를 불러왔고, 이로 인해 미국의 국제적 위상도 떨어졌다. 지난달 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수장 자리에서 물러난 로셸 월렌스키 전 국장은 당시 상황을 지적하며 과학의 정치화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퇴임 직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가진 고별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은 각종 공중보건 사태에 대해 위험성을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정치적 신념에 따라 이를 결정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도쿄(東京)전력의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처리수 배출 계획·시설을 2년 동안 종합적으로 검토한 최종 보고서를 내놓았다. IAEA는 최종 보고서에서 “처리수의 해양 방류가 사람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일본의 처리수 방류 계획은 IAEA의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한국보다 먼저 오염처리수가 도착하는 미국의 국무부는 “IAEA는 과학에 기반한 투명한 절차를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과학이 아닌, 지지층 확보를 위한 정치로 반박하고 있다. 설명을 위해 민주당을 찾은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에게 “일본 맞춤형 부실 조사”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민주당 극렬 지지자들은 공항과 호텔, 당사에서 ‘그로시 고 홈’ 등을 외치는 시위를 했다.

국제기구 수장을 불러놓고 과학적인 증거로 논쟁하지 않고 지지층을 위한 정치 쇼를 벌인 것이다. 자당의 이익을 위해서는 국격을 떨어뜨리는 행동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던 셈이다. 과학의 정치화는 이성이 설 자리를 없애 사회를 무지와 야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어 엄청난 사회적 손실을 가져왔다. 우리 사회에 과학이 아닌 괴담을 내세우는 정치세력이 설 수 없게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가 주술과 미신의 암흑시대로 추락하도록 둘 수는 없다.

김석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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