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법조 AI 시대와 ‘생각근육’[살며 생각하며]

2023. 7. 1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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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법조 생성형 AI 정식 도입되면
어려운 사건에 집중할 수 있어
독서·명상으로 생각근육 키워야
답변 진실 여부 정확하게 판단
국가 차원 ‘AI굴기’ 기회 살려
국력 높이는 결정적 계기 돼야

미국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하나인 챗 GPT가 답변한 가짜 판례를 뉴욕 연방지방법원 제출 문서에 삽입한 두 변호사가 벌금 5000달러씩 제재받았다. 제출된 문서에는 허위 판례와 인용 문구가 포함돼 있었다. 가짜 판례를 점검 않고 그대로 인용해서 생긴 사건이다.

요즘 시중의 화두는 당연히 AI다. 지난해 11월 말, 미국에서 오픈 AI의 챗 GPT 3.5가 나왔을 때만 해도 이토록 빨리 전 세계가 생성형 AI 속에 들어갈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두 달 만에 1억 명의 사용자를 모아 인터넷 시대 이후 최단 시간, 최다 가입자 수를 올렸다.

이제는 ‘아는 것이 능력’이었던 구시대와 ‘검색이 능력’이 된 인터넷 시대를 지나 ‘질문이 능력’이 되는 시대가 시작됐다.

앞으로 사회 각 분야에 AI를 기반으로 업무 혁신이 일어나면, AI와 관련된 여러 쟁점이 드러날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오답변 문제인데, 생성형 AI의 답변이 100% 완전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AI 체계의 운명적 한계에 의해서 생긴 할루시네이션(환각) 현상은 필연적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환각’보다는 ‘오답변’이 더 정확하겠지만, 아직 그 정확한 원인은 아무도 모른다. 향후 누적 사용자 피드백과 문답 데이터의 축적 등 여러 방법으로 개선될 것이다.

이런 일을 두고 일각에서는 AI를 핵폭탄에 비유하지만, 오히려 비행기나 자동차와 유사하다. 비행기 등은 운행면허가 필요하고 간혹 사고도 나지만, 인간이 사용해야 하는 도구다. AI 역시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AI가 거대 악이 아니라, 그것을 악용하는 인간이 문제다.

두 번째는, AI에 대한 입법 규제다. 데이터 주권, 개인정보 보호를 중심으로 규제 입법을 하는 유럽에 비해 미국은 산업 진흥을 기반으로 입법을 추진한다. AI의 기반 기술인 초거대언어모델(LLM)을 가진 4대 강국인 한국은 유럽연합(EU) 모델이 아닌 미국의 AI 진흥 입법 추세를 지켜본 뒤 입법해도 늦지 않다.

국내 기업은 한글이라는 언어 체계로 미국 거대 IT 기업들의 공략 속에서도 지금까지 인터넷 검색 등 정보통신 분야 시장을 어느 정도 지켜냈다. 하지만 자동 번역 기술의 향상, 머신 러닝, 딥러닝 기술 등의 발달로 한글이 보호막이 되는 시대는 끝났다. 네이버·카카오·통신 3사가 보유한 LLM을 통해 전문 분야에 특화된 AI를 출시하는 틈새 전략이 필요하다.

산업에서 생성형 AI의 최적 분야는 법조다. 우리나라 사법부의 정보화 수준은 이미 세계 5위권 안팎인데 개발 초창기부터 최종 사용자인 법관이 시스템 구축에 협업해서 효율적인 전문가 시스템을 구축한 덕이다. 그 덕분에 민사소송의 효율성 측면에서 세계 1위를 수년간 유지했다. 법조 생성형 AI가 정식 도입되면 과중한 업무를 덜어줄 수 있어 판사는 어려운 사건에 집중할 수가 있다. 이미 구글 바드(BARD)에서는 간단한 소장과 판결문 초안까지 작성해 준다.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인 경우, 스마트폰에 AI 앱을 설치하거나, 웹페이지 주소(URL)를 홈 화면에 추가해서 최소한의 권리를 쉽게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방대한 미공개 판결문 자료가 실시간으로 축적돼 법원 내부용 판결문 작성 도우미 AI 시스템이 도입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필자도 35년간 선고한 1만156건의 판결문 데이터를 하드디스크에 저장해 사용하지만, 법원 내부 ‘판결문 검색 시스템’에 잠자고 있는 수백만 건의 살아 있는 판결문들이 적절한 법률 제·개정으로 공개적으로 사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전이라도 외부망과 단절된 내부 전용망에서 AI의 학습 데이터로 사용할 수 있다.

개인 변호사들은 방대한 자체 DB를 구축한 대형 로펌과의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AI로 인건비를 줄여 수임 단가를 낮춰 생산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변협과 리걸테크 사이의 불협화음도 생기고 있다. 이미 미국·일본에서 변호사 단체와 로펌은 리걸테크와 상생 중이다. 미국의 범용 AI는 각종 법률 양식 한글 문서도 자동 작성해 준다. 2000여 개의 미국 리걸테크 회사는 대형 로펌들과 손잡고 AI에 특화된 각종 신개념 서비스를 제공한다. 국내 일부 B2C(리걸테크-소비자) 서비스는 별론으로 하고, B2B(리걸테크-변호사·로펌) 정보제공형 AI 서비스는 제공돼야 한다. 만약 이것에 제동을 걸면 MS와 구글의 거대 범용 AI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법조 AI는 일종의 양날의 검이라 선용하면 보검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앞으로 법조·의료 등 각 전문가 분야는 AI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사용자만이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사용자는 지혜로운 질문과 답변의 진위 판단 능력을 길러야 한다. 생성형 AI에 단계식 트리 구조로 적합한 질문을 하는 정도에 따라서 결과 값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능력을 함양하려면 아날로그 내공인 ‘생각근육’을 키우는 게 관건이다. AI 답변의 사실 여부를 사용자가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근육은 다양한 분야의 독서와 꾸준한 글쓰기, 전문가와 대화, 지혜를 증장시키는 명상과 사고 실험의 생활화를 통해 튼튼해진다. 국가 차원에서도 ‘AI 굴기’의 기회를 ‘반도체 굴기’처럼 국력 상승의 결정적 계기로 만들어야 ‘AI 대항해 시대’의 선도국이 될 수 있다.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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