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설 수 있을 때 떠나겠다”는 남편, 이를 돕고 지켜 본 아내[책과 삶]
‘디그니타스’로 가는 실제 여정 속
담담하고 치우침 없이 풀어가
사랑을 담아
에이미 블룸 지음·신혜빈 옮김 | 문학동네 | 300쪽 | 1만6800원
2020년 1월26일 일요일, 아직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지 않았던 때 아내 에이미와 남편 브라이언은 스위스 취리히행 비행기에 오른다. 비즈니스석을 타고 화려한 5성급 호텔에 묵지만 이들의 손에 들린 물건은 허름한 기내용 여행가방과 출장용 검은색 서류가방뿐. 호텔방에서 이들은 의사 G를 기다린다. 남편은 죽으러 왔고, 아내는 그의 죽음을 도우러 왔다. 의사는 이 모든 과정을 승인해주기 위해 방문한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브라이언은 “두 발로 설 수 있을 때 떠나고 싶어. 무릎 꿇고 살고 싶지는 않아”라고 했다. 아내는 방법을 찾았다. 의사 G를 만나고 사흘 뒤 그들은 ‘디그니타스’로 향할 수 있었다.
<사랑을 담아>(원제 IN LOVE)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두 발로 설 수 있을 때 스스로 떠나겠다는 결정을 내린 남편을 돕는 미국 소설가 에이미 블룸의 이야기다. 그와 남편이 조력자살을 지원하는 스위스의 비영리기관 ‘디그니타스’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스위스는 1942년 전 세계 최초로 인간이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 있도록 허용한 국가다. 비영리기관 디그니타스는 외국인도 ‘동행자살’(디그니타스는 생명중단 선택에서 동반과 지지를 중시한다는 의미에서 동행자살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을 허용하는 곳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곳의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206명, 2021년 212명, 2020년 221명이 디그니타스에서 ‘조력자살’로 죽음을 맞이했다. 미국 10개주에서도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 있는 곳이 있지만 미국법에서는 6개월 이내 시한부 삶을 선고받아야 한다.
책은 그녀와 남편의 스위스 여정을 빼곡히 적어가며 과거의 기록을 교차시킨다. 중년에 만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서로 취향을 공유해가며 풍성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던 두 사람은 최근 3년간 낯선 변화를 겪는다. 브라이언은 자꾸 무언가를 까먹고 새로 계약한 회사에서는 ‘일처리가 늦다’는 평가를 받아 사실상 해고당한다. 무채색 셔츠만 입는 아내에게 레이스가 달린 얼룩무늬 옷을 선물하는가 하면 예일대 동문 모임 날짜를 착각한다. 결국 이들은 신경외과 문을 두드리고 MRI 촬영 결과 조발성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다. 병원에서 돌아와 둘은 부둥켜안고 한참 울다가 잠든다. 진단받은 지 48시간이 지나지 않아 브라이언은 삶을 끝내기로 마음먹는다. 그의 결정은 흔들리지 않는다. 브라이언은 어머니의 말을 인용한다. “우린 오래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여기 있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방법을 찾아달라 한다. 에이미는 이때부터 “구글의 웜홀”에 빠져든다고 표현할 정도로 다크 웹사이트를 열심히 뒤진다. 독극물을 찾아보고, 질식사하는 방법 등도 알아본다. 모두 불가능했다. 대부분의 경우 ‘온갖 어려움’ 끝에 남편이 죽는다 치더라도 아내는 자살방조죄로 수갑을 찰 판이었다. 그들에게 놓인 선택지는 디그니타스뿐. 디그니타스의 도움을 받는 것도 쉽진 않았다. 디그니타스에 연락하고 ‘임시 승인’ 전화를 받기까지 5개월이 걸렸다. 에이미의 표현에 따르면 디그니타스는 시종일관 ‘온전한 판단력, 분별력’을 요구했다.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으로 내린 판단이 아니라 온전한 정신으로 내린 결정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책은 죽음을 결정한 당사자 목소리뿐 아니라 이를 옆에서 진행한 아내와 가족들의 이야기와 감정을 충분히 보여준다. 알츠하이머가 진행되고 있다는 걸 일찌감치 알아채지 못한 걸 미안해하고, 그의 가족들에게 ‘생명중단’ 결정을 전하는 힘겨웠던 과정도 하나하나 기억해낸다.
디그니타스는 당사자의 출생증명서와 치과 진료기록까지 수많은 서류를 요구한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사람이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모두 에이미의 몫. 에이미는 오랜 상담사에게 울며 전화한다. “도움이 필요해요. 내가 남편을 죽이려고 해요.” 상담사는 말한다. “당신이 그를 죽이려는 건 그를 사랑해서잖아요.”
2020년 1월30일 목요일, 브라이언의 마지막 순간은 가장 먹먹해지는 대목이다. 디그니타스는 ‘언제든 이 절차를 중단할 수 있고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우리 모두는 당신을 지지한다’는 말을 반복한다. 구토억제제를 마신 브라이언은 미식축구 선수 시절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고 아내에게 이야기한다. 그는 아내의 귀국행 비행기 시간까지 물어본다. 정말 마지막 순간엔 말이 없다. 의사가 준 약을 마신다. 그의 마지막 말은 “사랑해”였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나지막히 삶과 죽음, 그리고 선택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책에선 알츠하이머병으로 우아하지 않고, 존엄하지 않은 모습으로 삶을 마감한 지인들의 이야기도 전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디그니타스를 찾아가지 않으면 아이들은 머지않아 그의 생이 다하는 날 슬픔과 안도를 동시에 느낄 테지만, 이 방식을 택하면 그저 슬퍼하기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소망은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사탕을 나눠주던 만만한 ‘하부지’로 기억하길 원하는 것뿐이었다.
책의 문장들은 슬픔을 절제하면서도 남편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가득 드러낸다. 저자는 힘겹고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으며 그 순간을 써내려간다. 존엄사와 조력자살 등 여러 용어를 쓰지만 스스로 생명을 중단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있다. 스위스 내부에서도 이를 반대하는 의견이 계속 나온다. 저자는 어느 쪽을 강조하기보다 자신의 경험을 풀어내며 존엄한 삶과 죽음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타임 선정 2022년 최고의 논픽션 1위,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선정 ‘올해의 책’으로 꼽혔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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