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없이도 사는법]‘세모녀 전세사기’ 주범, 징역 10년 선고받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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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전세 사기를 벌인 ‘세모녀 전세사기단’ 모친 김모씨에게 서울중앙지법 형사 18단독 이준구 판사는 징역 10년을 선고했습니다. 검찰 구형량과 같은 형량입니다.
김씨는 선고 후 기절해 쓰러졌고 호흡곤란을 호소해 법정 경위가 응급 조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검찰 구형량과 같은 중형 선고에 충격을 받은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전세사기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피해자들도 있는 상황에서 양형이 약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오늘은 김씨에 대한 선고 내용을 통해 법원이 전세사기의 범의(犯意)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양형은 어떻게 정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무자본 갭투 알았으면 계약 안했을 것” 무죄 주장 배척
김씨는 2017년부터 두 딸의 명의로 서울 강서구와 관악구 등 수도권 일대 빌라 500여채를 전세를 끼고 사들인 뒤 세입자 85명에게 183억원 가량의 보증금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명의를 빌려 준 두 딸은 별도로 기소돼 재판중입니다.
김씨는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자신은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 세입자들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만기가 되면 보증금을 돌려줄 것처럼 속인 적이 없고, 보증금 또한 고의로 안 돌려주는 게 아니라 일시적인 자금 경색으로 어쩔 수 없이 돌려주지 못했을 뿐이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김씨가 두 딸의 명의로 임대사업자를 등록해 수백 채의 빌라를 사모을 무렵 김씨의 재산은 아파트 한 채가 전부였습니다. 뚜렷한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 고정 수입도 없었습니다.
2017년 4월 빌라 한채를 분양받아 소유하던 김씨가 3년여만에 400여채가 넘는 빌라를 소유한 방법은 ‘무자본 갭투자’였습니다. 신축빌라 분양업자와 짜고 빌라 시세와 같거나 비싼 전세보증금을 받아 사실상 자기 돈 한 푼 들이지않고 소유권을 취득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빌라 수백 채를 소유한 ‘임대사업자’ 김씨였지만 세입자와 나눈 문자를 보면 빌라 위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우도 상당수였다고 합니다. 여기에 일부 빌라의 경우 근린생활 시설로 허가를 받아 주거용으로 사용중인 불법건축물이었습니다. 김씨는 분양업자로부터 불법건축물에 부과되는 이행강제금에 충당할 명목으로 리베이트를 받아 챙기기도 했습니다. 집을 사는데 돈을 들이기는커녕 리베이트 명목으로 추가적인 돈까지 받은 것입니다. 이는 김씨 뿐 아니라 분양업자, 컨설팅 업체 등이 공모해 신축빌라의 경우 시세를 알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높은 전세금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사기죄는 사람을 ‘기망’해서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얻은 경우 성립합니다. 피해자들은 김씨가 자기자본 없이 임대차보증금으로만 빌라를 분양받아 ‘무자본 갭투자’를 한 사실이나 리베이트 명목으로 돈을 받아 챙긴 사실을 몰랐습니다. 만약에 알았다면 전세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들 빌라는 시세가 오르지 않는다면 임대차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사기 사건에서 처음부터 ‘피해자 돈을 떼먹을 생각이었다’고 순순히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법원이 사기 여부를 판단할 때는 피해자 입장에서 ‘알았더라면 거래하지 않았을 것’에 해당하는 중요 사실을 고지했는지를 따집니다. 그런 사실을 숨긴 것 자체가 사기 의도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의 경우에도 피해자들이 김씨가 400채 넘게 무자본 갭투자를 한 사실을 알았더라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어서 김씨에게 사기죄가 인정됐습니다.
◇피해 총액 100억원 넘어도 징역 15년이 상한
다음은 양형입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85명, 피해금액은 183억원입니다. 재판부는 “전세사기 범행은 서민층과 사회 초년생들이 피해자로 삶의 밑천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죄질이 좋지 않다”며 “책임이 가볍지 않음에도 기망행위가 없다거나 피해금액을 산정할 수 없다는 등 변명해 반성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에 따르면 사기죄의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때는 법정형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무기징역도 선고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특경가법이 아닌 형법상의 일반 사기죄가 적용됐습니다. 특경가법의 해당 조항은 피해자 한 사람당 피해액이 50억원 이상일 때 적용되는데, 전세사기의 경우 피해액 합계는 크지만 1인당 피해액은 50억은 커녕 5억이 넘는 경우도 좀처럼 없기 때문입니다.
형법상 사기죄의 법정형은 징역 10년 이하입니다. 피해자가 여럿이어서 형을 가중하더라도 법정 최고형인 징역 10년의 2분의 1 범위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현재까지 선고된 법정형 중 가장 무거운 형이 징역 15년형입니다. 작년 12월 수원지법 성남지원이 피해자 126명, 피해액 합계 123억의 전세사기에 대해 선고한 형량입니다.
지난 5월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가 미추홀구 일대에서 대규모 전세사기를 벌인 남모씨 일당에게 형법 114조의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했지만 이 경우에도 징역 15년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범죄단체조직죄가 ‘그 목적한 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하도록 돼 있어 사기죄의 법정형을 상한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전세사기의 경우 처음부터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생각으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경우보다는 무모한 갭투자에서 시작해 돌려막기 실패로 파국을 맞은 경우가 상당수이기는 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삶의 터전인 집을 잃고 극단적 선택까지 하는 피해자들을 고려하면 징역 15년의 양형도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현행법 해석상 넘어서기 힘든 한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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