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민법 개정안, 법사위 상정만 하고 논의는 시작 못해

조병욱 2023. 7. 1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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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민법 개정안
2년만에 법사위 상정... 논의는 못해
법사위원 절반 가량... 법안 취지에 공감
법원행정처, 기존 법 체계 미칠 영향 우려
동물단체, “생명존중 시작, 조속통과” 촉구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신설하는 민법 개정안이 2년만에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 상정됐지만 결국 논의는 시작하지 못했다.

법사위는 지난 13일 오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열어 32건의 법안 개정안을 상정하고 7건의 고유 법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날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민법 개정안도 2017년 7월 입법예고 후 2년여만에 처음 소위에 상정됐으나 다른 법안들에 밀려 심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날 소위에는 법무부의 개정안과 함께 의원입법 법안, 민법 개정안 통과 촉구에 관한 청원, 동물을 압류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민사집행법 개정안 등도 함께 상정됐다.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법사위원들은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4일까지 세계일보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민법 개정안 입법 취지에 대해 절반 가량이 취지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법사위원 18명 중 8명이 응답했고, 응답자는 모두 민법 개정안 입법 취지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또 법안 처리 시기를 묻는 질문에도 21대 국회 회기 내에 처리를 내다봤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해당 설문에서 "물건이 아닌 동물로서의 법적 지위가 필요한 시대"라고 했다. 또 법안 개정에 찬성하는 이유로는 "동물보호와 동물의 개념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에 큰 의의"가 있다고 봤다. 이번 국회 회기 내 처리를 전망하면서는 “아직 법적 지위와 범위에 대해 명확하지 않아 국회 논의는 갈 길이 멀지만, 동물 그 자체로 보호받길 원하는 국민에게 힘을 주고, 동물학대범에게 경고 신호를 주고자 21대 처리를 희망하는 차원”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동물을 물건이 아니라고 규정한 민법 개정안은 2012년 이후 여러 차례 의원 입법으로 발의됐다. 그러다 법무부가 2021년 7월19일 이를 입법예고했다. 당시 법무부는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구 증가, 동물을 생명체로 보호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 동물 학대나 유기 등 문제에 대한 국민의 우려와 관심”을 이유로 “국민의 인식 변화를 법 제도에 반영하고, 생명이 보다 존중받는 사회를 견인하기 위해 이 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독일(1990년), 오스트리아(1988년), 스위스(2003년), 프랑스(2015년)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하고, 동물의 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용역, 전문가 자문, 여론조사 등의 과정을 거쳤다. 또한 사회적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 법안이 통과하더라도 법체계상 권리의 객체로 둘 수 있도록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했다. 

이후 실무 논의가 진행됐지만 지난 정부에선 결국 민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뒤 지난해 11월 여당 지도부 회동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이 법안의 처리를 당부했다. 당시 한 참석자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동물을 물건으로 보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하며 법안 처리를 당부했다”고 전했다. 지난 4월 당시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민법 개정에 합의했다. 그러나 논의 과정에서 법원행정처 등의 반대 논리가 부각되면서 개정안 처리의 동력이 떨어졌다.

법원행정처는 법사위에 낸 민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조회에서 ‘신중검토’ 의견을 내며 사실상 반대했다. 행정처는 “동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자 하는 입법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민법상 이분적인 권리 분류체계를 새로운 체계로 변경시킨다는 점, 민법상 물건 개념은 전체 법질서와 연관, 형성 가능성이나 목표 방향만 열어놓는 프로그램적 규정에 그칠 우려, 민법에 이를 규정하는 것이 적절한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민법 개정안 공청회에 참석한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이사 박주연 변호사(법무법인 방향)는 “민법이 개정되더라도 동물의 법적 지위가 곧바로 권리 주체로 승격되는 것도 아니며 당장 형법상 재산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재물’ 범위에서 제외되지도 않는다”며 “비판적 의견이 우려하는 사회적 혼란이나 중대한 변화는 거의 없거나 최소한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해외에서는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는 조항에서 나아가 ‘지각력이 있는 생명체’라는 점을 명시해 법적 보호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덧붙였다.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 상정 안건 중 동물권 관련 법안
 
44. [2112764]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정부)
45. [2113482]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장제원 의원 대표발의)
46. [2113571] 민법 일부개정법률안(박성준 의원 대표발의)
47. [2114060]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이성만 의원 대표발의)
48. [2123139]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이탄희 의원 대표발의)
49. [2100091]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민법 개정안 통과 촉구에 관한 청원
50. [2107264] 민사집행법 일부개정법률안(임종성 의원 대표발의)
51. [2108390] 민사집행법 일부개정법률안(김도읍 의원 대표발의)
52. [2108513] 민사집행법 일부개정법률안(정운천 의원 대표발의)
53. [2111403] 민사집행법 일부개정법률안(한무경 의원 대표발의)
54. [2116351] 민사집행법 일부개정법률안(신정훈 의원 대표발의)
55. [2113573] 민사집행법 일부개정법률안(박성준 의원 대표발의)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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