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과 우호적인 아세안 국가들은 왜 北 ICBM에 ‘엄중 우려’ 표시했나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지역 외교장관들이 북한의 지난 12일 고체연료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에 ‘엄중한 우려(grave concern)’을 표시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아세안 관련 연쇄 외교장관회의가 진행되는 중인 13일 발표한 ‘한반도에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아세안 외교장관 성명’에서다. 14일 열리는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 외교장관회의와 관련 의장성명에서도 북핵 관련 언급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의에는 안광일 주인도네시아 북한대사도 참석하고 있다.
13일 진행된 아세안+3(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서는 북한의 ICBM 발사와 관련해 박진 외교부 장관이 북한의 ICBM 발사를 강력히 규탄하고,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국제사회의 단호하고 단합된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박 장관은 이번에 자카르타에서 개최되는 대부분의 양자·다자 회의에서 빠지지 않고 북한의 ICBM 발사와 관련된 얘기를 하고 있다.
아세안 국가 외교장관들도 대부분 북한의 ICBM 발사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명하는 수준에서 박 장관의 발언을 지지했지만, 이번 회의에서 일부 아세안 국가는 ‘규탄’이라는 표현도 썼다고 한다. 아세안 국가들의 일반적인 북한에 대한 태도보다는 다소 단호해진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아세안의 13일 의장성명에는 “우리는 특히 제56차 아세안 외교장관회의/확대외교장관회의(AMM/PMC) 및 여타 아세안 주도 회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이뤄진 금번 행동에 깊이 경악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아세안 국가 다수와 전통적으로 우방 관계를 유지하는 북한이 스스로도 참여하는 ARF 외교장관회의 전 중대 도발을 한 데 대한 우려가 반영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아세안 국가들은 성명에서 “우리는 ARF를 비롯한 아세안 주도 협의체 활용 등을 통해 건설적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와 베트남이 2018년과 2019년 각각 1,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아세안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북·미, 남북 사이에서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역할을 해왔다. 북한과의 외교 관계를 통해 이같은 역할을 할 준비가 여전히 돼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 특히 이번 아세안 의장성명이 나오는데 의장국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아세안 국가들을 설득하며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되는 국면에서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다자안보회의인 ARF에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참석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고, 이번 회의 전 외교당국 각급에서 의장국 인도네시아를 접촉해 북한의 회의 참여 여부와 동향 등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ARF 회의는 남북 외교장관의 만남이 성사되는 주요 장의 역할을 했고, 이같은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세안 국가들의 회의가 이미 시작된 12일 북한이 ICBM 도발에 나서며 이에 대한 ‘단합되고 단호한 국제사회의 조치’를 보여주는 것으로 다소 방향이 바뀌었다. 정부는 북핵 위협과 관련 국제사회의 단합된 행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강대국들이 주도하는 협의체도 중요하지만 아세안 관련 회의처럼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국가들의 연합을 북핵 문제에 관여시키는 것도 중요한 과정으로 본다.
이같은 점에서 ARF 의장성명이 어느 정도로 북핵 문제를 다룰지도 주목된다. 과거 우리 정부는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 등 북핵에 대해 단호한 표현을 ARF 의장성명에 포함시키 위해 노력해왔다. 이번 의장성명에도 북핵 문제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보여주기 의해 우리 정부의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ARF에는 북한도 참여하며, 이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은 중국에 우호적인 아세안 국가들도 있어 어느 정도로 우리 정부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을지 예단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의장국 인도네시아의 역할도 중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ARF 회의에도 북한은 외교장관급 인사를 보내지 않았다. 2018년 리용호 당시 외무상 참석 이후에는 코로나19 확산과 정세 문제 등으로 줄곧 아세안 국가 주재 대사급 인사들이 북한 측 수석대표로 참석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는 안광일 주인도네시아 북한대사가 등록했는데, 전날 각국 수석대표들이 참석하는 리셉션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과 조우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한다.
1. 우리는 2023년 7월 12일 북한에 의한 최근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2. 우리는 특히 제56차 아세안 외교장관회의/확대외교장관회의 (AMM/PMC) 및 여타 아세안 주도 회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이루어진 금번 행동에 깊이 경악하였으며, 아세안지역안보포럼 (ARF) 회원으로서 북한 역시 헌신을 약속한 역내 평화, 안보 및 안정 증진에 대한 헌신을 재확인하였다.
3. 우리는 북한이 긴장을 완화하는 행동을 취할 것을 촉구하였으며, 비핵화된 한반도에서 지속적인 평화와 안정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환경 조성 등을 위한 관련 당사자 간 평화적 대화를 촉구하였다.
4. 우리는 모든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들의 완전한 이행과 국제법 준수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였다.
5. 우리는 ARF를 비롯한 아세안 주도 협의체 활용 등을 통해 건설적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재확인하였다.
자카르타=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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