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분노 트윗' 나토 회의장 뒤흔들어…백악관 '격노'
"서방을 아마존 취급?" 英 국방장관 발언 여진도…우크라 "감정적 발언"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들이 내건 회원국 가입 조건에 강한 불만을 터뜨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트윗이 자칫 역효과를 부를 뻔했다는 사실이 13일(현지시간) 뒤늦게 알려졌다.
작년 2월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온 서방, 특히 미국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태도에 깊은 실망감을 드러내며 회의장 분위기가 얼어붙었고, 그제야 젤렌스키 대통령이 태세를 전환하면서 봉합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나토 정상회의 개막일인 지난 11일 공식 일정이 시작되기 직전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관련한 논의를 가리켜 "시간표가 정해지지 않는 것은 전례 없고, 터무니없다"며 "불확실성은 나약함이다"라고 트위터에 썼다.
당일 발표를 앞두고 있던 나토 공동선언문 초안에 구체적인 가입 일정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을 알고는 분노를 터뜨렸던 것이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당시 리투아니아 빌뉴스 정상회의장에서 모여있던 이들이 이 트윗을 접하고는 깜짝 놀랐으며, 미 대표단 소속 백악관 관리들은 '분노'의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고 전했다.
각국 관계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했고, 특히 미국 관리들 사이에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불만을 터뜨린 "가입조건이 충족되고 동맹국들이 동의하면 우크라이나에 가입 초청을 하기로 합의했다"는 문구를 아예 재검토하는 방안까지 거론됐다.
실제로 당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회담장에서 불러내 방에서 긴밀히 논의하는 모습이 포착될 정도로 상황이 긴박하게 흘러갔다고 복수의 나토 관계자들은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에 발끈한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신속히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덜 환영하는 어조로 선언문을 고치는 데까지 갈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한 나토 외교관은 "어떤 이는 가입 '초청'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대체하는 것을 원했다"며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 정부 당국자도 선언문 개정을 검토했음을 인정했다고 WP는 보도했다.
다만 격론 끝에 미국 대표단도 우크라이나 가입 초청과 관련한 문구를 빼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결국 초안대로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자는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특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해 중부 유럽과 발트해 국가들 사이에 당초 문구를 고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독일이 러시아와의 전면 대결로 치닫는 상황을 피하고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한 확약을 꺼리는 상황에서, 합의된 초안 정도가 현재 우크라이나에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는 계산에서다.
결국 11일 나토 정상회의는 예정대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튿날 회의장을 찾아 회원국들에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갈수록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우크라이나와 계속된 지원에 지쳐가는 서방 동맹들 사이에 갈등의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일 빌뉴스 회의장에서 설리번 보좌관과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약 30분에 걸쳐 격한 어조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WP는 "우크라이나의 가장 강력한 대변자들조차 이런 긴장감으로 인해 지치고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트윗으로 회의장이 들썩거렸던 다음날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이 우크라이나를 겨냥해 "사람들은 약간 감사받기를 원한다"며 "우리는 아마존이 아니다"라고 발언한 것도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서방의 무기 지원에 감사하는 태도를 보이라는 일침이었다.
이에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으로부터 여러 차례 감사 인사를 들었다"고 밝히고, 젤렌스키 대통령도 "지지를 보내주는 영국과 영국 총리, 국방장관에게 늘 감사한다"고 진화에 나섰다.
올렉시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뷰에서 월리스 장관의 발언을 두고 "누구나 감정적으로 되면 어떤 말을 하고는 후회하게 될 수 있다"며 "그것이 그의 실제 입장은 아닐 것"이라고 언급했다.
월리스 장관이 감정에 치우쳐 '말실수'를 했다고 꼬집으면서도, 영국의 공식 입장이 아닌 개인적 발언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은 셈이다.
다만 다닐로프 보좌관은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원하지만, 이미 우리가 갖게 된 것에 감사하기도 하다"며 "만약 모든 이들이 영국만큼 우리를 도왔다면 우리의 현재 상황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닐로프 보좌관은 "우리는 미국과 영국 덕에 전쟁 초반부를 견뎌낼 수 있었고, 우리 대통령이 개전 초기 가장 먼저 통화한 것도 보리스 존슨 당시 총리였다"고 덧붙였다.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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