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우리 공장 직원들은 '현대판 노예'인 건가요?"

심영구 기자 2023. 7. 1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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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제보] 끊임없는 욕설부터 성추행까지 일삼던 관리자를 복면 제보합니다 (글 : 배윤주 작가)


저는 대한민국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반도체, 그중에서도 대기업의 반도체들이 안전하게 작동하는지 검수하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23살 청년입니다.

이 회사와의 인연은 20살에 시작됐습니다.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집에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고 싶어 대학 대신 취업을 선택했습니다. 학교 선생님께서 지금의 공장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우리 학교 졸업생들이 취업하던 농업기계 쪽보다 연봉도 높았기에 인기 있는 회사였습니다. 2020년 1월, 저는 공장으로 처음 출근하게 됐습니다.
 

사회생활이 원래 이런 건가요?

아직도 출근 첫날의 풍경이 생생합니다. 현장에 들어가니 관리자가 의자에 앉아있었고 그 주위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다른 직원들이 보였어요. 30대로 보이는 관리자는 제 또래의 직원들에게 욕설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너 X발 이걸(불량난 걸) 또 못 보냐?"

직원들은 관리자에게 연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만 반복했습니다. 얼어붙은 분위기와 무서운 관리자 모습에 저도 당황했습니다. 제가 있는 곳이 더 이상 학교가 아니라는 것이 비로소 실감 났고, 이런 게 바로 사회생활인가 싶었습니다. '나도 곧 저렇게 되는 건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 싶었죠.

관리자가 제 이름을 불렀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늘 이름 대신 욕이었습니다. 관리자들은 항상 반말로 지시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화가 나면 기계를 쾅쾅 때리기도 하고, 책상이나 의자를 집어던지기도 했어요.

"너 때문에 휴대폰 망가졌으니까, 네가 고쳐와!"

어느 날은 관리자가 저를 혼내다 자기 분을 못 이겨 휴대전화를 집어던졌습니다. 망가졌다며 저더러 고쳐오라고 하더군요. 저 때문에 화가 나서 던졌으니, 제가 고쳐와야 한다면서요. 저뿐만 아니라 제 위의 선배들도 혼나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저희는 잘못을 빨리 인정하고 사과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더 혼나지 않고 험악한 분위기를 빨리 풀 수 있었으니까요.
 

SNS에서도 계속되는 욕설, 폭력적인 행동으로 이어져

관리자의 욕설은 모두가 함께 있는 SNS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관리자의 말끝엔 욕이 따라다녔습니다.

남녀 가리지 않는 성추행과 성희롱

"회사 사장부터가 성희롱을 해요. 남자들의 성기를 그렇게 만져요. 여자들은 밥 먹고 있으면 어깨에서부터 허리까지 자꾸 쓰다듬고요"

관리자들은 남녀 가리지 않고 성추행과 성희롱을 일삼았습니다. 그런데 관리자뿐만이 아닙니다. 사장부터가 남자 직원들의 성기를 만지고 다녔죠. 여자 직원들이 다 있는 앞에서도요. 관리자들은 장난이라면서 남자 직원들의 젖꼭지를 꼬집으며 괴롭혔습니다.

여자들에게는 '살 빼야 한다, 머리를 길러야 한다' 등의 외모 평가도 서슴지 않았어요. 회식할 때 엉덩이를 만지기도 하고 밥 먹을 때는 어깨부터 허리까지 쓰다듬기도 했어요. 여자 직원들의 팔뚝을 비틀어 꼬집기도 하고, 여자 탈의실을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일방적인 특근 통보와 강제 연차 소진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며 교대근무를 하는 환경 속에서 관리자들이 마음대로 직원들의 특근 스케줄을 짜고, 강제로 연차를 소진시키는 일이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아파도 원할 때 쉴 수 없고, 특근 스케줄에 맞춰 12시간씩 주 5일 이상 일해야 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식사도 형편없습니다. 그 안에서 철심이나 벌레가 나오는 일도 많았어요.
 

'현장의 왕'이라고 불리던 관리자

관리자는 공장에서 직급도 높고 직원들을 평가하는 막강한 권한도 갖고 있습니다. 승진에도 영향을 행사했고 지시를 받고 따라야 하는 구조라 관리자 말을 잘 들어야 하죠. 그리고 특히 가장 심하게 욕설과 폭언을 했던 관리자는 그중에서도 '현장의 왕'이라고 불릴 만큼 현장에서 힘이 셌습니다. 다른 관리자들도 이 사람 말 한 마디에 꼼짝 못 했어요.
이래서일까요? 우리 회사 퇴사율은 73.2%입니다. 10명 중 7~8명은 이 회사를 그만두곤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곳에서 4년째 일하고 있고, 제 위로 9년 넘게 다닌 선배들도 있습니다. 도대체, 왜 바보 같이 참고 있었냐고요?
 

사회초년생이 약점인 회사

직원들 대부분은 제 또래입니다. 회사는 특성화고등학교와 취업 연계가 되어있어서 고등학교 때부터 이 공장에 현장실습생으로 파견 나오다 취직을 한 어린 친구도 있었고, 병역특례로 채용된 오빠들도 있었고, 저처럼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온 친구들도 많습니다.

다들 그러려니 했던 것 같습니다. 어딜 가나 회사생활이란 비슷할 것 같고, 높은 직급의 사람들은 다 관리자 같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애초에 문제 삼을 생각조차 못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잘못해서 혼나는구나' 싶었습니다.

특히 병역 특례 채용으로 들어와, 쉽게 그만두지도 못하는 군인 신분의 동료는 관리자에게 괴롭힘을 더 많이 당했습니다. 머리를 맞거나 정강이 맞는 일도 많았어요. 동료는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으니 꾹 참는다고 했습니다.
 
"'그냥 군대 갈래 관두고?'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말 그대로 사람 취급을 안 했어요"
- 병역 특례 채용된 동료 A씨 -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취업

그동안 누구도 이게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만약 신고한다면 어디에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어요. 돌아보면 학교도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저도 담임선생님께 이 공장이 사람을 뽑는다고만 들었지, 어떤 공장인지, 근무조건은 어떤지 듣지 못했습니다.
취업 연계 제도로 들어온 주변 동료들한테 들어보니, 애초에 학교에서 이 공장의 근무 조건에 대해 잘못 알려주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3교대인 줄 알고 들어와 보니 2교대였고, 상여금 정보도 잘못되어 있었죠.
 

퇴사가 아닌 변화를 선택한 MZ세대 직원들

얼마 전 이 공장으로 이직을 해온 한 동료가 관리자들이 갑질하는 모습을 보더니 분노하더라고요. 저와 제 또래 동료들을 모아두고 애기해 줬습니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같이 일하는 직원에게 욕을 하고 때리느냐'라고요. 그때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당했던 갑질이 부당한 일이었다는 사실을요.

지금 저는 공장 앞에서 관리자를 처벌하고 더 나은 근무 환경을 실현하기 위해 제 동료들과 함께 투쟁 중입니다. 나이도 어린데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면 되지 않느냐 질문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래도 제가 동료들과 함께 애정을 갖고 일했던 첫 직장,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제 19살 동생도 이곳에서 직업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잘못이 잘못인 걸 몰랐을 때, 동생에게 우리 회사를 추천했습니다. 제 동생만큼은 저 같은 대우를 받지 않고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복면제보는 공장에 취업해 각종 갑질을 당한 MZ세대 공장 직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관리자들의 갑질 행태를 송지은 변호사, 이주영 노무사와 함께 하나하나 짚어가며 법적인 문제가 없는지 살펴봤습니다.

근로기준법에도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규정이 있는데요. 직장 내 괴롭힘의 가장 첫 번째 사유가 폭언 욕설입니다. 제일 많은 형태고 폭언, 욕설은 무조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합니다. 그러니까 관리자들은 근로기준법도 위반하고 있는 겁니다.
 

SNS 욕설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

또한, SNS 메시지 상에서도 욕설을 하거나 폭언하게 된다면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고요. 만약 같은 동료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서 누군가를 특정해서 욕설했다면 모욕죄에도 해당합니다.
 
형법 제311조(모욕)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설비나 책상 핸드폰도 던지는 행위는 폭행죄에도 해당하며 형사상 범죄행위입니다.
 
<대법원 2003년 1월 10일 판결 사례>
피해자의 신체에 공간적으로 근접하여 고성으로 폭언이나 욕설을 하거나 동시에 손발이나 물건을 휘두르거나 던지는 행위는 직접 피해자의 신체에 접촉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에 대한 불법한 유형력의 행사로서 폭행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03. 1. 10. 선고 2000도5716 판결).


형법상 강제추행죄에도 해당합니다. 강제추행죄라고 할 때 유형력의 행사가 필요한데 그 유형력의 행사가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일 걸 필요로 하지 않아요. 그 말인즉슨 이렇게 막 강하게 반항하지 않더라도 강제추행죄가 성립하거든요.
그래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서 등부터 엉덩이까지 쓰다듬는다거나 어깨 주무르는 행위, 상대방 의사에 반해서 했을 경우 모두 대법원이 강제추행죄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 남성의 성기를 만지거나 엉덩이를 주무르는 등의 성추행이 있으므로 강제추행죄입니다.
 
형법 제298조(강제추행)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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