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방점 찍어 사랑 이상의 의미 전하는 재은·윤경 부부의 이야기
편집자주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연극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던 재은과 윤경이 연인·부부 관계로 발전해 아이를 입양하고 동성 혼인 입양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약 한 세기 동안의 이야기다. 2007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이별한 이후에도 서로를 응원하며 보내는 2099년까지의 이야기를 시간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중요 시간대의 장면을 비선형적으로 제시한다.
연극의 제목은 내용을 함축하거나 주제를 암시하면서 관객의 이해를 돕기 마련이다.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라고 사랑이라는 주제를 배제하는 듯한 이 연극의 제목은 오히려 왜 사랑이야기가 아닌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사랑이야기가 아니라면 어떤 이야기란 말인가.
이것은 사랑이야기다. 연극에서 동성 부부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은 여전히 많지 않지만 조금만 다른 장르로 시각을 돌려보면 동성 부부는 더 이상 생소한 소재가 아니다. 동성애를 넘어 제도적으로 부부를 이룬 이들의 이야기는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 그로 인한 갈등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연극은 낙천적이고 활동적인 윤경과 현실적이고 내향적인 재은의 로맨스에 방점이 찍힌다. 잘 만든 로맨스물이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몽글몽글 연애 감정을 상기시키듯, 윤경과 재은의 사랑이야기는 알콩달콩한 사랑의 순간을 꿈꾸는 관객에게 대리 만족을 선사한다.
작품에는 보아의 '아틀란티스 소녀', 엄정화의 '엔딩 크레딧', 아이유의 '밤편지' 등 대중가요가 중요하게 사용된다. 미래 시간대를 포함한 작품에서 특정 시대의 정서를 대변하는 대중가요를 사용하는 것이 혼란을 유발할 수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대가 혼재된 작품이지만 연인이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헤어지며 느끼는 감성은 과거나 미래나 그다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의 감성을 길어 올려 공감대를 형성했던 가요는 동성애의 특수성보다는 사랑이야기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사랑의 보편성에 방점이 찍혔지만 동성 부부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 작품만의 특별한 정서나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순간의 감정에 취해 단짝 친구였던 윤경에게 키스한 재은의 당혹스러움은 충동적으로 친구와 연인의 경계를 넘어선 상황에 대한 혼란과 더불어 상대가 동성 친구라는 점 때문에 배가 된다. "현행법이 감당할 수 없는 부부"라고 낙천적으로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제도적인 가족으로 국가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혼인신고서 불수리 통지서를 받아내는 장면이나, 아이를 갖기 위한 고민 등은 동성 부부의 특수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모든 부부가 각각의 고민과 갈등이 있듯 윤경과 재은 부부의 갈등은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연극은 이것이 온전한 사랑이야기임을 강조하기 위해 제목에서 굳이 사랑이야기가 아니라고 반어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금껏 동성 부부의 이야기를 사회적 편견과 배제의 시각으로 그려 왔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이 연극의 메시지는 로맨스물의 함의를 넘어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동성 연인의 사랑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사회적 관점에서만 보려 했던 경향은 또 다른 편견이자 배제다. 이 작품은 동성 연인의 한 세기에 가까운 사랑의 여정을 진한 로맨스물로 보여줌으로써 또 다른 편견과 배제에 도전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얻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100세 노인 연기까지 소화하며 대조적 성격과 취향의 연인 윤경과 재은을 찰떡같이 해내는 김시영, 김효진 배우와 딸과 사회자 역을 변화무쌍하게 그려내는 정다함 배우의 연기는 인물과 작품의 매력을 배가한다. 다만 다양한 시간대의 장면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풀어가는 작품에서 빈 무대와 간단한 소도구로만 무대를 꾸민 것은 아쉽다. 다양한 시간대를 표현해야 하는 만큼 무대 구현이 쉽지 않았겠지만 명색이 알콩달콩한 로맨스물인데 좀 더 참신한 무대 아이디어가 추가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연극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는 21일까지 국립정동세실극장에서 공연한다.
객원기자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지 가방에 물티슈 있어서"…6호선 토사물 치운 스무 살 청년
- "아직 아픈데 퇴원하라니" 보건의료노조 총파업에 의료현장 혼란
- '최진실 딸' 최준희 "할머니 경찰 신고, 섣부른 선택" 사과
- "내가 살아가는 이유"…천둥·미미, 예능서 직접 열애 고백
- 수백 장 찍고 보정까지… 20대 여자들은 왜 이렇게까지 인생샷을 찍을까
- 전기료·라면값 눌렀던 정부… 버스·지하철 뛸 땐 '멀뚱멀뚱'
- "1등 하면 삭발"...브브걸, 활동 재개 앞두고 독해졌다
- 말보다 사진… 남편 눈·팔 가져간 전쟁, 사랑은 못 빼앗았다
- 쓰레기 뒤지고 양식장 초토화… '이 새들' 어쩌나
- 아티스트 오마주...베끼기냐, 존경이냐 끊이지 않는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