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마음을 반영하는 식물, 집사가 힘들면 식물도 시들해요” 식물 유치원 운영하는 방호성 대표 인터뷰

이경은 기자 2023. 7. 1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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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식물 가게가 연남동에 입성했다. ‘식물 덕후’ 방호성 대표가 2030이 가득한 ‘그린하트클럽’을 만든 이유를 들었다.

"얼마 전에 아이도 태어났다며, 이젠 돈 벌어야지!"

특이하다. 이 가게만 들렀다 하면 손님들은 하나같이 사장 걱정이다. 식물에게만큼은 순도 100% 진심인 '그린하트클럽’ 방호성 대표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이곳은 여느 식물 가게와 살짝 다르다. 동네 식물 유치원 역할을 톡톡히 맡고 있기 때문이다. 식물 유치원은 초보 식집사를 위한 공간으로, 수준별로 나뉜 반에서 식물 키우는 요령을 배울 수 있고 시들어가는 반려식물을 '입원’시킬 수도 있다. 당연히 교육비는 무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일명 '눈맑광 식물 덕후’로 불리는 그의 열정 덕이다.

실제로 이곳은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손님으로 북새통이다. 한 번이라도 방문했다 하면 주변 지인을 영업해 '원 플러스 원’ 구조로 새 고객을 데려온다. 오죽하면 '식물계의 다단계’라는 별명이 붙었다. 방 대표가 이토록 식물에 애정을 가지는 이유가 궁금하다. 그를 만나 머릿속이 온통 '초록초록’해지는 식물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연남동에서 1년 6개월째 그린하트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방호성입니다. 반려식물을 판매하고 아픈 식물을 돌보면서 초보 '식집사’를 돕고 있습니다.

가게에 '식물 유치원’이란 별명이 붙었어요.

식물을 분양할 때 손님에게 식물 이름부터 관련 정보까지 다 알려드리다 보니 식물 유치원이란 별명이 붙었어요. 물을 주는 방법부터 잘못 알려진 것들이 많아, 제 가게에서 식물을 분양받아 가는 분들에게만큼은 정확한 지식을 알려드리고 싶었거든요. 또 분양받을 식물을 고민하는 분들에겐 상황이나 자금에 맞춰 추천해드리기도 하고요. 최근엔 아프거나 병든 식물은 임시 보호를 하기도 해요. 죽어가는 식물을 살리는 일이죠.

유치원엔 수강생 수준별 반도 있다는데요.

알려드리는 정보에 차이를 두다 보니 자연스레 반이 생겨났어요. '병아리반’ '참새반’ '토끼반’이 있는데, 반 이름에도 조금씩 의미가 달라요. 중급 단계인 참새반은 참새가 방앗간 가듯 다른 식물 가게에도 가서 구매할 수 있는 수준이고, 고급 단계인 토끼반은 중고 거래 앱 '당근마켓’에서도 식물을 거래할 수 있는 수준이에요. 병아리반으로 들어온 수강생이 토끼반으로 졸업하는 걸 보면 기분이 아주 좋죠.

초록색을 사랑하는 동호회

그린하트클럽은 말 그대로 초록색(그린)을 사랑(하트)하는 동호회(클럽)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소속감을 느끼면서 다 함께 예쁜 식물을 키우자는 의미에서 '클럽’이라는 단어를 붙였다고. 문을 연 지 만 2년도 안 됐지만, 이곳은 이미 동네 사랑방이다. 게임 속 NPC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서 동네 주민과 안부를 나눌 뿐 아니라 가끔은 속을 털어놓을 '연남동 대나무 숲’이 되어주기도 한다. 가게 앞엔 그가 팔거나 키우는 식물로 꾸며진 작은 정원이 있다. 특이점은 그가 퇴근할 때도 정원에 있는 식물을 가게 안으로 들이지 않는다는 것. 방 대표는 "한눈에 봐도 식물이 정말 많지만 누구 하나 훔쳐간 적이 없다"면서 "되레 가게가 쉬는 날엔 동네 주민이 나서 정원을 관리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어 더 많은 꽃과 식물을 두게 됐다"고 덧붙였다.
식물 유치원의 하루가 궁금합니다.

출근하면 식물들을 한번 돌아봐요. 벌레가 생겼는지, 새순이 났는지 등을 주로 보죠. 그다음엔 물을 줘요. 식물에 따라 물을 주는 주기가 달라 신경 써야 해요. 넓은 가게도 아닌데 물을 다 주는 데 6시간 정도가 걸려요. 한창 일을 하다 보면 저도 하루에 화분 하나는 꼭 엎어요(웃음). 그다음엔 치료할 애들은 치료하고 분갈이할 애들은 분갈이를 해주죠. 제가 또 분갈이를 잘하거든요.

어떤 분갈이가 좋은 분갈이인가요.

분갈이는 식물의 특성에 맞게 흙을 갈아주는 거예요. 이곳에 오기 전 식물이 자라온 농장의 환경과 손님이 식물을 키울 환경이 다르니 분갈이는 필수죠. 실내 환경에 맞게 흙의 보수성과 배수성, 산성도 등을 조절해야 해요. 나름대로 연구해 최적화된 흙 레시피를 찾으려 하고 있답니다. 농장에서 가져온 식물은 모두 이런 조치가 필요해요. 그래야 식물이 오래 살 수 있거든요. 저는 손님이 데리고 간 식물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끔 "난 식물만 보면 다 죽이나 봐" 하는 분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더라고요.

식물 키울 때 필요한 초반 과정을 담당하는군요.

자잘한 부담을 덜어 병아리반도 식물 키우기를 즐길 수 있게 돕고 싶어요.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물을 주다 보면 가드닝에 재미가 붙기 마련이죠.

유치원을 방문하는 손님 연령대는요.

30대가 많아요. 개인적인 바람으론 20대까지 확장하고 싶어요. 애초에 연남동에 귀여운 이름의 식물 가게를 연 이유가 젊은 손님의 방문을 늘리기 위해서였어요. 그린하트클럽이 아니라 '그린하트컬렉션’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괜히 비싸 보이잖아요. 가드닝이라는 정말 좋은 취미를 조금이라도 많은 분이 시도해봤으면 좋겠어요.

키치한 가게 외관에도 어르신들이 방문합니다.

꼭 구입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오며 가며 들르세요. 식물에 대한 궁금증을 묻거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나누죠. 가끔 판매용이 아닌 식물을 탐내는 분도 계세요. 특히 할머님들은 꽃을 좋아하세요. 제 식물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답하면 "다 자기 거래!" 하면서 등을 한 대 때리고는 가져가버리세요(웃음). 돈도 주고 싶은 대로 주고 가세요. 저도 말로는 "안 되는데…" 하지만 식물을 대하는 할머님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면 굉장히 행복해지죠.

직접 반려식물을 추천한다고요.

손님과 함께 고민한다는 표현이 정확해요. 처음 온 분에겐 우선 둘러보면서 아무거나 골라보라고 해요. 예전엔 식물마다 레벨별 스티커를 붙여놨어요. 이 식물은 참새반과 토끼반 수준, 이런 식으로요. 그렇게 해놓다 보니 손님들이 자신의 레벨이 아닌 식물은 아예 쳐다보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스티커를 다 떼고 그냥 원하는 걸 고르는 시스템으로 바꿨어요. 고른 후에 난이도와 양육 환경을 따져보죠.

사람별로 적합한 식물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양할뿐더러 집에 볕이 많이 드는지, 자주 챙겨줄 수 있는지 등에 따라 반려식물이 달라져요. 처음엔 귀엽지만 크다 보면 너무 난잡해지는 식물은 지양해요. 주변 경관을 해치면 식물에 정이 떨어지거든요. 세월이 갈수록 점점 아름다워지는 식물이 좋은 거죠. 목적도 고려해요. 식물로 공기정화를 하고 싶다면서 선인장 '스투키’를 고르는 분들이 계세요. 공기정화 기능은 잎이 많고 클수록 뛰어나요. 스투키는 큰 도움이 되지 않죠.

식물 '임시 보호’(입원)도 지원한다고요.

아파서 살려야 하는 식물도 있고, 잠시 집을 비울 때 맡아주는 식물도 있어요. 식물을 치료하는 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그만큼 쉽게 죽지도 않아 골든타임이 중요하죠. 긴가민가할 때 와야 해요. 뿌리가 다 썩고 바짝 말라버렸을 땐 속수무책이죠. 한번은 15년 동안 키운 식물을 갖고 온 분이 계셨어요. 반려식물은 말도 못 하고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오래 보면 정이 드는 건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하찮아도 소중한 식물이 되죠. 그 식물은 뿌리가 썩어서 살균제 처리를 하고 다시 안정되는 데까지 약 두 달이 걸렸어요.

"고유한 향 뽐내는 식물에 매료돼"

동아리를 가장 즐기는 자는 동아리 회장이라는 말이 있던가. 여기도 그렇다. 클럽에 누구보다 열심인 건 방 대표 본인이다. 가게 내부엔 그가 소유한 식물이 많다. 따로 구분해두지 않아 손님 시선에선 무엇이 비매품인지 가리기 힘들다. 종종 손님들이 "여기서 살 수 있는 게 대체 뭐냐"며 장난치는 이유. 그는 새로운 식물을 들여오면 꼭 모종 하나는 팔지 않고 가게에서 키운다. 분양받아 간 손님과 같은 속도로 식물을 관리해보는 것이다. 지금은 초록에 푹 빠진 그의 과거 직업은 조향사다.

식물에 빠진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 향수를 만드는 조향사였어요. 처음엔 식물의 고유한 향을 알기 위해 식물을 가까이했어요. 라일락 향을 향수에 넣고 싶으면 라일락 꽃에서 향을 추출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비슷하게 화학물질을 조합해 만들어야 해요. 매일 식물원에 갈 수는 없으니 자주 접해야겠다 싶어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자연과 가까운 향을 만들고 싶었군요.

하다 하다 2017년엔 결국 식물 농장을 찾아갔어요. 농장에서 직접 일하며 수많은 고유한 향을 배우고 싶었어요. 결국 한 농장에서 일자리를 구했죠. 하루에 몇천 개의 식물을 돌봤어요. 그때 열심히 일한 덕에 지금은 꽃과 식물 모종만 봐도 어느 농장의 것인지, 품질이 괜찮은지 알 수 있어요.

결국 식물을 선택하셨네요.

2020년부터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돼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 시작하니 향수 산업이 전반적으로 침체됐어요. 운 좋게 그즈음 가드닝에 재미를 느꼈죠. 비(非)본질적인 향을 꾸며내는 일이 지겨워졌거든요. 아예 식물에 집중해보고 싶었어요. 향을 내는 방식으로 향수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초보 식집사 시절, 어려웠던 점은 없나요.

정확하지 않은 정보 때문에 많이 고생했어요. 길거리의 조경식물은 장마가 지나도 살아 있잖아요. 내 식물은 물을 많이 줘서 죽었다는데, 왜 쟤네는 살아 있는지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런 걸 하나하나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기본 원리를 알면 실내 환경에 맞춰 응용해볼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집 창가엔 농장보다 해가 덜 드니까 흙의 수분 보유력을 낮춰야겠구나, 이런 식으로요. "일주일에 물을 한 번 주세요" 식의 안내는 너무 무책임해요. 그렇게 하면 물을 열심히 줘도 다 죽게 돼요.

그린하트클럽의 목표가 있다면요.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플랜테리어 교육 B2B(기업 대 기업) 사업과 클럽 정체성을 살린 보태니컬 코즈메틱 사업을 꿈꾸고 있어요. 조향사 경력을 바탕으로 한 향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반영됐죠. 클럽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느껴지는 푸릇푸릇한 식물 향을 담은 제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식물 유치원 방문을 권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가게 주변엔 직업으로 그림을 그리는 분들이 꽤 있어요. 밤샘 작업을 마친 뒤 이곳에서 잠시 쉬고 가시는데 "진정되는 기분이 든다"고 말하세요. 찾아보니, 집에 식물이 자리하는 초록색의 공간을 마련하면 원시생활의 덤불과 유사하게 생각돼 내재된 안정감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도 있더라고요. 식물은 사람의 상태를 반영하기도 해요. 내 마음이 괜찮을 땐 키우는 식물도 튼튼하고, 마음이 힘들 땐 식물도 시들하죠. 쉬어 가는 분 외에도 식물 키우기를 시작하고 싶은 분, 식물을 매번 죽여 고민인 분 등 모두 환영이에요. 식물을 키우다 보면 삶에 규칙성이 생기고, 안정감을 얻을 수 있어요. 항상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딱이죠.

#반려식물 #식집사 #연남동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방호성

이경은 기자 ali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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