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도 평범한 필연… ‘죽음’ 있기에 삶은 더 소중하다[북리뷰]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 지음│김정훈 옮김│호두
‘죽음 연구’ 철학자 장켈레비치
역사·예술 등 장르 넘나들며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눠 탐구
“생명이 없는 건 영원히 죽은 것
존재 자체로도 삶의 의미 충분”
20세기 죽음 연구의 핵심 고전으로 불리는 ‘죽음 : 이토록 가깝고 이토록 먼’이 드디어 출간됐다. 700쪽에 달하는 긴 여정을 통해 현대 프랑스 철학자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는 철학과 문학, 신화와 역사, 음악과 미술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면서 신비하고 불가해한 죽음의 심오한 미로를 탐험한다.
죽음은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살면서 우리는 무수한 죽음을 접한다. 가족, 친구, 동료, 친척 등 무척 친근한 사이에서부터 질병과 노화, 전쟁과 기아, 재난과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낯선 이들에 이르기까지 매일매일 죽음과 마주친다. 또 죽음은 언젠가 깨어질 알처럼 우리 안에 선연히 존재한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죽음의 절대성과 필연성을.
그러나 흔하다고 해서 죽음이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다. 인간에게 죽음은 두려움과 호기심을 부르는 낯선 충격, 익숙해지지 않는 경이, 이해하기 힘든 신비다. 저자가 죽음을 ‘언제나 새로운 평범함’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누구나 죽음을 경험할 테지만, 아무도 죽음을 경험할 순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죽음은 ‘아직 미래’에만, 생명의 마지막 종점 이후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장켈레비치는 죽음을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눈다. 나 자신의 죽음, 즉 일인칭의 죽음은 예외적이고 절대적인 사건이다. 그것은 다른 어떤 죽음과도 구별되는 단 하나뿐인 죽음이다. 이때 죽음은 “나는 죽을 것”이라는 미래형으로만 표시되므로 우리는 죽음을 예감할 순 있어도 추억할 수도, 그 의미를 따질 수도 없다. 일인칭 죽음에서 죽음은 극적으로 중요하나 사유할 수는 없는 미지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삼인칭 죽음은 익명의 죽음, 얼굴 없는 사람의 죽음이다. 이때 죽음은 행정 좌표계에 출생과 사망으로 표시되는 하나의 작은 점이고, 기자가 보도하는 아무개 씨의 사건, 의사가 인증하는 증명서의 상태, 생물학자가 분석하고 탐구하는 생명 현상의 조각일 뿐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회적, 과학적 죽음에서 죽음은 나와 관계없는 사건으로만 제시되고, 그 실존적 비극성은 제거된다.
현대사회는 죽음을 삼인칭으로, 즉 통계상의 숫자나 처리할 업무 또는 잠시 입에 올려둘 가십거리로 다루는 데 익숙하다. 죽음을 이미 지나간 과거, 완결된 사건으로만 취급하는 이러한 죽음에선 그 삶의 생기, 구체적 실감을 느낄 수 없다. 한 사람이 지내 온 생생한 시간을 거세한 이 죽음은 모든 삶을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인칭 죽음은 나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다. 부모나 연인, 형제나 친구 같은 소중한 존재의 죽음은 마치 내가 죽는 것 같은 사건이다. 이들의 죽음이 가져오는 비통한 슬픔과 절망 속에서 우리는 나의 죽음을 실감하고 생생함을 깨달으며, 다음엔 내 차례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타인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이 되는 이 특별한 사건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죽음을 체험하고 그 의미를 생각할 장소를 확보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에 이르는, 죽음에 관한 방대한 사유를 넘나드는 끈질긴 탐구 끝에 장켈레비치는 죽음 속에 여전히 빛나는 삶의 눈부신 가능성을 발견한다. 죽음은 삶의 부정이 아니라 생생한 증언이다. 천으로 만든 꽃들은 죽음을 모른다. 그러나 영원히 살아 있기에 그들은 이미 죽어 있다. 죽음을 잃는 순간, 우리는 삶도 잃어버린다. 따라서 죽지 않음, 즉 불사를 얻으려 발버둥 치는 일은 어리석다.
죽음은 단 한 번뿐인 삶의 가치를 깨닫도록 우리를 이끈다. 죽음 이후에 아무도 나의 삶을 대신하지 못한다. 친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영원히 잃어버린 후에야 우리는 그들이 진귀한 보물임을 깨닫는다. 죽음의 생생한 현존은 한 생명의 절대적 귀중함을,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모든 나는 존귀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차리게 만든다.
죽음이 있으려면 삶이 먼저 존재해야 한다.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도, 아무리 비루한 삶일지라도,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이 절대적 사실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우슈비츠에서 연기로 사라진 갓난아기조차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죽음에 맞서 필사적으로 ‘자기’를 표현하고 전달하고 지키려 했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다. 한순간이라도 존재했다면, 그 삶은 무의미하지 않다.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누구나 “존재했다, 살았다, 사랑했다.” 죽음은 삶을 지우지 못한다. 따라서 죽음의 의미를 탐구하는 일은 희망의 존재를 탐구하는 일이다. 716쪽, 3만2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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