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는 나의 스펙”… 그녀들의 ‘인스타 인류학’[북리뷰]
김지효 지음│오월의봄
‘인생샷’ 찍는 여성 12명 인터뷰
콘셉트 등 사전에 철저히 준비
촬영·보정·업로드 등도 세심히
댓글 ‘평판 관리’ 필수적 과정
새로운 이와 새로운 관계 맺기
‘인생 리셋의 장’ 등 의미 부여
여성 향한 차별적 시선 의식
“자연스럽게 보여야” 자기검열
시작은 ‘하두리’였다. ‘인생샷’ 열풍의 처음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맨 앞엔 ‘하두리 웹캠’이 있다. 본래는 화상회의를 하기 위한 용도였으나 우리는 이를 ‘셀카’용으로 사용했다. 이때의 ‘셀카’는 싸이월드 시절을 거쳐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의 ‘인생샷’으로 꽃을 피웠다.
여성학 연구자 김지효의 ‘인생샷 뒤의 여자들’(오월의봄)이 분석한 인생샷의 계보는 흥미롭다. ‘하두리 웹캠’으로 찍은 셀카가 유행하던 시기 중요한 것은 얼굴이었다. 눈이 얼마나 큰지, 코는 얼마나 오뚝한지 등. 디지털카메라와 휴대폰 카메라가 등장한 싸이월드 시절엔 패션이 중요했다. 타미힐피거 원통 가방과 빅포니 카라티, 본더치 모자는 그때의 ‘잇템’이다. 이후 컴퓨터가 아닌 모바일을 기반으로 삼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가 등장하며 비로소 인생샷 문화는 완성된다. 카메라의 화각이 넓어지면서 ‘배경’이라는 요소가 추가된 것이다. 아름다운 얼굴과 날씬한 몸, 트렌디한 패션, 거기에 힙한 장소가 합쳐진 것이 바로 인생샷이다.
하두리 웹캠이 유행이던 때, 얼굴을 평가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는 웹캠 사진을 모아 올리며 ‘얼짱’을 탄생시키고 그들을 추종했는데, 셀카가 이러한 온라인 커뮤니티와 함께 번창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개인적 행위인 듯 보이는 셀카가 사실은 언제나 사회적인 의미를 얻어왔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책은 인생샷을 찍는 여성들을 연구한 결과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인스타 인생샷 문화에 참여하거나 참여했던 20대 여성 12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파악한 인생샷의 첫 번째 특징은 철저히 사전에 기획된다는 것이다. 인스타를 “내가 꾸미는 제2의 집”이라고 이야기하는 윤희는 이렇게 말한다. “사진 찍는 날에는 친구와 인스타용 카페에 가요. 사진을 먼저 많이 찍고 사진이 잘 나올 음료랑 디저트를 시켜요. 맛있는 걸 시키는 게 아니에요. 음식 시키고 사진 열심히 찍고. 먹기 전 상태에서 서로 사진 많이 찍어주고 그다음에 ‘이제 우리 얘기하자’고 해요. 그러니까 사진을 거의 한두 시간 찍어요.”
인생샷의 두 번째 특징은 친구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인생샷은 사진을 찍고 올리는 간단한 과정이 아니다. 콘셉트 기획, 장소 및 의상 선정, 촬영, 보정, 업로드로 세분화된 꽤 긴 고민과 노동의 과정이다. 친구들의 도움이 필수다. 업로드 이후에도 친구와의 협업은 계속된다. ‘좋아요’를 눌러주는 것은 물론, 미모를 칭찬하는 댓글을 친구들이 달아준다. ‘평판 바람잡이’ 역할이다. 저자는 “평범한 셀카를 인생샷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닌, 아름다움을 승인하는 권력”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윤희는 “인스타가 하나의 스펙”이라고 말한다. 그는 학창시절 공부를 잘하고 예뻐서 또래 친구들로부터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학교에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게 퍼져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SNS였다. “나는 너희같이 공부만 하는 애들이 왕따시킬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SNS를 엄청 열심히 했어요. 저를 팔로하는 제가 모르는 사람들이 절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사실 상관없어요. 제가 아는 사람들에게 제가 팔로어가 많은 사람이라고 인식되는 게 중요하죠.”
물론 피드를 열정적으로 관리하는 모든 이들에게 상처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성급한 오류다. 하지만 윤희를 비롯해 차별과 괴롭힘을 당한 적 있다는 영기와 민경이 인스타를 통해 새로운 이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 하는 것은 유의미하다. 어떤 이들에게 온라인은 ‘인생 리셋’의 장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저자와 인터뷰한 12명의 여성 모두가 중요하게 꼽은 것은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어야 하고 인위적인 보정은 금물이다. 피드 관리도 너무 열심히 하는 게 티 나면 안 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에 의한 여성들의 자기검열이라고 말했다. ‘된장녀’ ‘김치녀’가 ‘인스타충’으로 이어지면서 여성들이 끝없는 자기검열에 시달리게 됐다는 것이다.
논의의 방향은 인스타 속 페미니스트들로 나아간다. 이들은 크게 인생샷을 전시하는 여성과 탈코르셋(강요되는 외모 가꾸기에서 벗어나려는 운동)을 전시하는 여성으로 나뉜다. 흥미로운 점은 탈코르셋을 전시하는 페미니스트 역시 색감 보정과 몸 보정 등을 거치며 인생샷과 유사한 문법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이 ‘귀여운 나’에서 ‘잘생긴 나’로 바뀐 셈이다.
저자는 힘주어 무언가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하나로 귀결될 수 없는 이 상황들을 직시하자는 게 저자의 메시지다. 책의 말미, 저자는 고백한다. “책을 다 쓰고 나서야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로부터 이 이야기를 시작했음을 깨달았다. 셀카에 민망할 정도로 집착하는 여자들, 그리고 페미니스트라면서 자기 자신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자들이 싫었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이 책을 쓰는 과정은 그들을, 그리고 나를 이해하는 여정이었다”고 말이다. 344쪽, 1만8500원.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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