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몸부림 치는 외톨이… 그 모습서 보이는 나를 다시 생각하다[작가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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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뇌 학자인 매리언 울프는 소설이 타인을 보다 정교하게 이해하게 해준다고 말한 바 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뇌가 극 중 인물의 의식을 적극적으로 따라 함으로써 잠시나마 타인이 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시뮬레이션해 본다는 것이다.
사랑했던 이에게 버림받았다는 절망, 실패한 예술, 따분한 일상 등 인물들은 각자 고통을 잊기 위해,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의지하고, 실망하고, 그러면서도 새로이 의지할 대상을 끊임없이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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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뇌 학자인 매리언 울프는 소설이 타인을 보다 정교하게 이해하게 해준다고 말한 바 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뇌가 극 중 인물의 의식을 적극적으로 따라 함으로써 잠시나마 타인이 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시뮬레이션해 본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살짝 비틀어 소설은 한편으로 세상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게끔 해준다고 말하고 싶다. 소설은 현실에 대한 일종의 ‘거리 두기’를 통해 너무 가까워서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상황이나 사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소설 읽기 자체가 일종의 객관화된 시선이랄까.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 또한 우리 자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이다. 1950년대 북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는 이 이야기는 시대와 배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기시감을 준다. 인물들은 모두 어디선가 한 번쯤 스친, 살면서 겪어본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데, 특히나 부정적인 측면에서 그렇다. 뻔뻔하고 허세 가득한 주정뱅이, 성인 아들을 과잉보호하는 중년 여성, 현실의 불만을 주변 약자를 공격하는 것으로 푸는 소심한 남성, 예술을 핑계로 어머니의 등골을 빨아먹는 청년 등.
그중에서도 주인공 주디스 헌은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지만 딱히 가까워지고 싶진 않은 인물이다. 가난하고 나이가 많으며 못생긴 그녀는 떠돌이처럼 하숙집을 전전하고, 쉽사리 무시당하거나 이용당하기 일쑤며, 돈이 없어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그야말로 안타까운 신세지만, 저자인 브라이언 무어는 그런 그녀를 동정하거나 응원하기도 어렵게 만든다. 오랜 시간 고립되어 지낸 까닭에 눈치가 없고, 속물적이며, 타인을 시시각각 판단하고, 일상적인 친절에도 큰 기대를 하는 등 망상에 빠져 지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주디스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외톨이 신세가 되고, 오랜 기간 의지했던 종교에서도 구원을 찾지 못한 채 몸과 마음이 서서히 망가진다.
시시한 인물의 처량한 결말에 홀린 듯 빠져들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주디스에게서 나의 얼굴을 엿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성실하고, 차분하며, 은혜와 예의범절을 알고, 한때는 구혼자도 있었던, ‘무고한’ 주디스는 이모의 병간호로 긴 세월을 보낸 뒤 고독한 처지가 된다. 정신을 차려보니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술. 주디스는 고통을 망각하기 위해,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를 메우기 위해,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을 마시고, 또 마신다. 실은 주디스뿐 아니라 다른 인물들 또한 마찬가지. 사랑했던 이에게 버림받았다는 절망, 실패한 예술, 따분한 일상 등 인물들은 각자 고통을 잊기 위해,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의지하고, 실망하고, 그러면서도 새로이 의지할 대상을 끊임없이 찾아 나선다.
그러므로 그런 인물들을 보다 보면 마치 거울을 보듯, 스스로에 대해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대하고, 실망하고, 열망하고, 실패하고, 그 모든 좌절과 고통의 감정에서 벗어나고자 무언가에 간절히 기대고 싶었던 순간들에 대해서. 무엇을 바라고, 그 기대와 현실의 간극을 채우기 위해 무엇에 의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한승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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