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50 美 진출·헬기 첫 수출 기대감… 방산 톱4 진입 2년 앞당길 것”[M 인터뷰]
중동국가와 헬기 긴밀 협상 중
美수출땐 340조원 파급효과도
전세계적으로 국방력 강화 추세
러 무기 허점… 한국산 주목받아
FA-50 폴란드 납품, 실적 반등
올 역대최고 매출 3조원대 예상
소재부품 1800여종 중 900여종
2030년까지 국산화해 원가절감
6세대 전투기 등 미래사업 속도
인터뷰 = 이민종 산업부장 horizon@munhwa.com
폴란드와 말레이시아 등을 대상으로 한 경공격기 FA-50 수출 등이 웅변하듯 K-방위산업이 비상할 채비를 갖췄다. 정부는 2027년까지 ‘글로벌 방산 수출 4강 진입’ 목표를 세웠다. 앞서 올해 수출 목표도 21조5000억 원 이상으로 설정했다. 제대로 된 전투기가 없어 훈련기에서 맨손으로 적진에 폭탄을 투하해야 했던 6·25전쟁을 떠올리면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자긍심을 느껴도 좋을 변화라는 평가다. 방위산업의 발전은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우주항공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클 터이다. 대한민국 유일의 항공기 체계 종합 기업인 KAI(한국항공우주산업)의 강구영(64) 대표이사 사장은 “KAI의 엔지니어들이 ‘성공 DNA’를 갖고 정부와 군의 지원을 등에 업고 노력했기에 오늘의 결과가 있었다”며 “이제 ‘메이저리그’로 올라갈 기회가 주어졌는데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KAI는 지난 1999년 삼성항공우주산업, 대우중공업, 현대우주항공 3개 사를 통합해 출범한 회사다.
최근 취임 10개월을 맞은 강 사장을 KAI 서울 사무소에서 만나 방산 수출 상황을 자세히 들었다. 예비역 공군 중장 출신으로 군 복무 시절 F-4E를 주로 조종했던 강 사장의 넥타이를 자세히 보니 수백 대의 전투기가 촘촘히 디자인돼 있었다. 집무실에는 48대 1로 축소한 KF-X 한국형 전투기 모형 등이 그를 호위하듯 도열해 있었다.
―추가 수출이 예상된다고 들었다.
“고정익(固定翼) 항공기는 이집트를 대상으로 협상 중이다. 이름을 밝히기 어렵지만, 또 다른 중동 국가와는 회전익(回轉翼·헬리콥터)을 놓고 긴밀히 협상 중이다. 연내에 가시적인 성과가 기대된다. 좋은 소식을 전해 주고 싶다. 올해가 국내에서 처음 개발된 한국형 기동 헬기(KUH)인 ‘수리온’이 전력화한 지 10년째다. 이에 맞춰 회전익을 최초로 수출하게 되는 기념비적인 해가 될 수 있다. 특히 항공산업의 본토인 미국에 고등 훈련기 T-50의 수출을 타진 중이다. 성사되면 세계 4대 방산 수출국 진입을 2025년으로 2년 앞당기게 된다.”
―특히 대미 수출의 의미가 클 것 같다.
“미 해군과 공군은 기존의 고등 훈련기 가동률 저하로 조종사 양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탈(脫)냉전 여파로 50∼60년 된 훈련기가 많은데 그걸로는 훈련이 어렵다. T-50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면 글로벌 고등 훈련기 및 경전투기 시장에서 50% 이상, 최대 1300대 규모의 시장 확대가 예상된다. 쉽게 말해 미국에 500대를 판매하면 부가적으로 800대를 추가 수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최대 340조 원 규모의 산업·경제 파급 효과가 기대된다. 미국으로부터 전투기를 수입하는 나라에서 수출하는 나라로 바뀌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내년 후반기 또는 2025년 초에 우선 협상 대상자를 선정하는데 반드시 미국 사업을 수주해 한국 방위산업, KAI의 저력을 보여 주고 싶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방위산업의 환경이 급변했는데.
“탈냉전 때는 국방력을 줄이고 훈련 체계를 축소한다. 지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으로 신냉전 상황이 전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국방력을 강화하는 추세다. 러시아 무기 체계가 무용론이 제기될 정도로 허점을 드러내면서 서방 무기 체계와의 호환성, 납품 속도를 충족할 수 있는 한국산 무기 체계가 주목을 받고 있다. 내수 중심에서 수출 중심으로 KAI의 사업 환경이 바뀌고 있다. 수출 시장 확대와 기종 다변화 전략에 더욱 속도를 붙일 계획이다.”
―러시아 무기 체계는 왜 그렇게 됐다고 보나. 각국의 국방 시스템에 반면교사가 될 듯싶다.
“껍데기는 세계 최고다. 문제는 소프트웨어다. 투자는 많이 한 듯싶고 홍보는 잘된 듯싶은데 성능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과장이 있었다고 본다. 중국, 동남아 주요 국가, 폴란드까지 전 세계 3분의 1에 달하는 국가가 러시아 무기 체계를 쓰고 있었는데 모두 화들짝 놀랐다. 그래서 서방 무기 체계로 전환하려 하는 것이다.”
―KAI와 한국 방위산업에 결과적으로 호재가 많아 보인다.
“정부의 K-방산 지원 정책으로 방위산업 수출에 탄력이 붙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KAI를 방문해 K-방산 수출 전략 회의를 연 것은 이를 알리는 터닝포인트였다고 본다. 또 ‘방산=비리’의 이미지가 사라지고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인식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의 신뢰도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엔데믹으로 세계 항공 시장도 회복세에 진입했다. 여객기 구매 움직임이 활발하다. 우리는 보잉과 에어버스의 전략적 파트너로 민항기의 핵심 구조물인 날개와 동체 등을 공급하고 있다. 항공 시장 회복은 우리에게 더 큰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실적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지난해 1분기가 KUH 3차 양산과 4차 양산이 동시 납품된, 다소 특별한 시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올해 매출이 낮게 나왔다. 항공기는 수주부터 납품까지 다른 업종보다 많은 기간이 소요된다. 납품되어야 매출과 영업 이익으로 연결된다. 물량을 확보해도 곧바로 경영 실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배경이다. 그러나 올해는 하반기에 FA-50 12대를 폴란드에 납품하는 것을 시작으로 경영 실적이 반등할 것이다. 1999년 창사 이래 최고의 매출인 3조 원대 중후반을 예상하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공군 전투기, 시험 비행기의 베테랑 조종사였던 강 사장은 지난해 취임하자마자 공군에서 비행 환경 적응 훈련을 마쳤다. 그러곤 FA-50에 탑승했다. 6년 만의 전투기 탑승이었다. 폴란드 수출이 매우 중요한데, FA-50을 직접 타보고 체험해야만 세일즈할 때 성능이 탁월하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국내외 에어쇼나 방산 전시회 등으로 출장을 가면 공군 조종복을 입고 각국의 인사를 만난다. 그의 조종 경험은 기종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각국 조종사들의 마인드와 마케팅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한국산 전투기의 강점이 궁금했다. 그는 국산 훈련기 KT-1, T-50 개발에도 참여한 바 있다.
―고등 훈련기, 전술 입문기, 경전투기 시장에서 FA-50이 주목받는 이유는.
“개발 단계부터 전투기로 성능 업그레이드를 고려한 다목적 고등 훈련기이기 때문이다. 20년간 한국 공군과 여러 수출국 공군이 운용하면서 성능과 안전성을 보장받았다. 미국, 유럽 무기보다 빠른 후속 지원 체계를 갖고 있어 운용국들의 가동률도 상당히 높게 유지되고 있다. 한국 공군의 블랙이글스는 해외 전시회에서 FA-50의 우수성을 수시로 직접 보여주고 있다.”
―취임 시 ‘일거리·팔거리·먹거리’ 조직 효율화를 강조했다.
“연구·개발(R&D)을 해야 제품이 나오고 팔 수 있어 달러를 거둬들일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고 싶었다. 사실 KAI가 2016년 즈음에 기술 개발에 집중적으로 나섰어야 했는데 매출 감소 및 이익률 저하로 투자하지 못했다. 항공기, 전투기는 개발 후 수명을 다하기까지 100년이다. 개발부터 1차 양산이 약 30년, 1차 양산이 끝나면 2차 양산에 들어가고 30∼50년을 쓴 후 막을 내린다. FA-50 개발이 1991년 시작됐으니 30여 년 만에 수출을 시작한 것이다. 한 국가에 대한 수출만 해도 7∼8년 이상 공을 들여야 가능하다. 국가 최고 지도자가 나서야만 성사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 미래 비행체를 만들면 아들, 손자 세대가 덕을 본다는 의미다. 거꾸로 지금 손을 놓으면 미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항공기, 항공산업은 국가백년대계(國家百年大計)라고 할 수 있다.”
―항공 분야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가 중요 과제다.
“항공 소재 시장 활성화와 항공기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한 요체다. 2019년부터 KAI는 국산 항공기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시작했다. 구매 품목 1800여 종에서 원가 절감을 기대할 수 있는 900여 종을 2030년까지 국산화할 계획으로 추진 중이다. 또 세아창원특수강 등 국내 업체 9개 사와 소재 국산화 컨소시엄인 ‘위드 코리아’를 꾸려 민항기 소재 국산화도 추진하고 있다.”
―뉴스페이스 시대, KAI의 미래 사업은 어떻게 준비되고 있나.
“6세대 전투기, 수송기, 차세대 기동헬기, 차세대 공중 전투 체계, 미래 항공기체(AAV), 위성·우주 탐사 솔루션 등 6개 미래형 신 플랫폼 개발 사업으로 압축할 수 있다. 조기에 착수해 KAI만의 퀀텀 점프를 달성하고 싶다. 6세대 전투기는 KAI만이 개발 가능하다. AAV의 경우 민간과 군이 함께 쓸 수 있는 전기 추진 수직 이착륙기를 개발할 것이다. 위성 및 우주 탐사 솔루션 개발을 위해서는 항공 영상 분석 스타트업인 메이사와 합작 법인 ‘메이사 플래닛’을 지난해 4월 설립했다. 항공기 개발 과정에서 축적한 기반 기술과 노하우를 토대로 민간이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가 다른 선진국보다 5년가량 늦게 출발한 만큼 더 지체하면 영원히 뒤처질 수 있다. 지금 조건 없이 전진한다는 각오로 매진할 것이다. 그래야 우주 미래 분야에서 승자가 될 수 있다. 제 임기 동안에 흔들림 없는 판을 깔고 싶다.”
■ 베테랑 조종사 출신 강 사장
美아이젠하워가 롤 모델… “어떤 조직이든 ‘서번트 리더십’이 중요”
강구영 KAI(한국항공우주산업) 대표이사 사장은 공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해 35년 넘게 공군에 몸담은 엘리트 조종사였다. 어린 시절부터 전투기 조종사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가졌던 건 아니었다고. 우수한 학업 성적을 자랑하는 모범생이었고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다. 학비 걱정 없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학비가 무료인 사관학교를 생각하게 된 이유다. 육·해·공 중 공군사관학교를 택한 건 당시 최고 수출 기업인 대우실업에 다니던 삼촌의 “미래에는 비행기가 대세가 될 거다”라는 추천 때문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말하지만, 공군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단다. 공군 조종사가 위험한 직업이고 비행사고로 세상을 떠난 선후배, 동기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팠다. 그 때문인지 강 사장은 군 생활을 떠올릴 때 가장 자랑스러운 일로 휘하 조종사들이 단 한 명도 인명 사고를 당하지 않은 점을 꼽았다. 그는 “운이 크게 작용했다”고 겸양해 했지만 꼼꼼하고 세심한 그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강 사장은 미국의 제34대 대통령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리더십의 롤 모델로 삼고 있다고 했다. 같은 시대의 라이벌이자 한때 아이젠하워의 상관이기도 했던 더글러스 맥아더는 스마트·엘리트적인 리더십의 전형이다. 반면 아이젠하워는 늘 상대방을 추어올리고 마음을 얻는 ‘서번트 리더십’을 보여줬다. 아이젠하워는 초고속 승진 대로를 밟은 맥아더와 달리 마흔 살이 넘어서야 소령을 달 정도로 승진이 더뎠다. 하지만 한번 승진 궤도에 오르자 그의 서번트 리더십이 빛을 발휘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최고사령관을 거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강 사장은 “제가 맥아더처럼 뛰어난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지 몰라도 아이젠하워가 굉장히 존경스럽다”며 “어떤 조직이든 서번트 리더십이 중요하고 KAI도 그런 마음으로 경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
△1959년 경남 창녕 △1978년 공군사관학교 30기 입학 △공군방공관제사령부 단장 △공군 남부전투사령부 사령관 △공군참모차장 △영남대 항공분야 특임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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