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간다” 유수영의 배드민턴…항저우·파리 패럴림픽 도장깨기

김양희 2023. 7. 1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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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우리가 간다][항저우, 우리가 간다] 장애인배드민턴 남자부 유수영
장애인배드민턴 국가대표 유수영.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그러니까, 라켓을 처음 잡았을 때 목표가 세계 1위였다. 세계 1위는 바로 그의 눈앞에 있었다. 2022년 초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덜컥 그를 이겼다. ‘아직은 넘을 수 없는 선수’라고 생각했던 터라 승리했다는 느낌조차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가 더이상 세계 1위가 아니라는데 있었다. 세계 1위 등극은 다음으로 미뤄졌다. 장애인배드민턴 국가대표 유수영(20) 얘기다.

유수영은 지난해 열린 대표선발전에서 평소 단단한 벽처럼 느껴졌던 김정준(44), 김경훈(46)을 연달아 이겼다. 김정준은 한동안 세계 1위를 호령하던 선수였으나 배드민턴이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도쿄패럴림픽 때 일본의 ‘젊은피’ 가지와라 다이키에게 패하면서 1위 자리를 내줬다. 김정준만 이기면 세계 1위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유수영의 목표도 그때 수정됐다.

지난 10일 경기도 이천 대한장애인체육회 선수촌에서 〈한겨레〉와 만난 유수영은 “목표에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세계 1위가 나보다 한 살 많은 가지와라다. 지난해부터 국제대회에서 6~7차례 만났는데 지금껏 단 한 세트도 이기지 못했다”면서 “가지와라와 경기하면 마치 벽에 치는 것 같다. 휠체어와 몸이 하나가 된 것처럼 움직이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구사한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도 “가지와라와 경기하면 재밌기는 하다. 많이 깨지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고 했다. 심재열 대표팀 감독은 “본인이 목표를 가지고 운동을 하니까 기량 향상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유수영의 배드민턴은 중학교 때부터 시작됐다. 친구들과 하는 게 재미가 있었다. 그의 장점은 순발력이 좋아서 몸놀림이 빠르다는 것. 그래서 “상대 선수가 때린 어려운 스트로크를 안정적으로 받아냈을 때 희열감을 느낀다.” 심 감독은 “상대 공격을 계속 받아내면 상대가 스스로 지쳐서 무너지게 된다. 상대가 질려하는 스타일”이라고 유수영을 설명했다. 다만 아직은 다분히 수비적이어서 공격 스트로크를 보완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남들과 똑같을 거라면 시작조차 안 했다”라는 좌우명에서 보듯이 유수영의 승부욕은 남다르다. 오죽하면 포켓몬스터 국내 배틀 대회에서 2위까지 했을까. 독학으로 배운 일본어로 SNS를 통해 응원 디엠(DM)을 보내준 일본인 친구들과 거리낌 없이 소통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의 말대로 그는 “한 번 꽂히면 끝까지 가야 하는” 성격이다.

배드민턴도 마찬가지다. 일단 시작했으니까 세계 1위까지 올라가 보고 싶다. 한때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준 선수에게 고스란히 패배의 아픔을 되돌려주는 것도 1위로 가기 위한 ‘도장깨기’다. 어릴 적 아시안유스파라게임 때 “처절하게 깨졌던” 중국 선수를 올해 바레인 대회 16강전에서 만나 똑같이 되갚아줬고, 세계선수권 복식 4강에서 졌던 독일 선수도 최근 대회에서 이겼다. 경기에서 지면 분하고 억울해서 펑펑 우는데, 그 눈물이 땀으로 이어지고 결국엔 승리로 이어지는 해피엔딩이 된다. 유수영은 “작년보다 지금 더 실력이 나아졌고, 내일은 더 나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장애인배드민턴 국가대표 유수영의 두 팔은 크기가 다르다. 라켓을 때릴 때 오른팔에 힘을 많이 주기 때문이.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14일이면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10월22일~28일) 개막 D-100일이다. 대표팀도 10일 소집돼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다. 장애인배드민턴은 심재열, 김정준으로 세계 1위 계보가 이어져 오다가 현재는 가지와라를 앞세운 일본에 왕좌를 뺏긴 상황이다. 한동안 세대교체가 안 됐는데 유수영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됐다. 유수영은 “항저우 대회는 파리패럴림픽(2024년)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파리에서는 무조건 가지와라를 이길 것”이라고 했다.

스스로에 대한 한계선을 긋지 않고 더 강한 적을 만나면 더 배우고 더 익혀서 기어이 넘어서고 말았던 유수영. 왼팔과 비교해 더 두꺼워진 오른팔은 그동안 그가 흘린 피, 땀, 눈물의 증거이다. “배드민턴은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하는 그는 오늘도 ‘세계 1위’를 꿈꾸며 날쌘 동작으로 코트를 누빈다.

장애인배드민턴 국가대표 유수영.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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