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프라우 3대 미봉 묀히] 한 발만 헛디디면 끝장 면도날 능선에 서다

신준범 2023. 7. 14.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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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수도승' 묀히 등반
알프스에서 가장 접근성 좋은 4,000m 험산…치명적인 2.6km
정상 직전의 면도날 설릉. 양쪽으로 천 길 낭떠러지라 신중을 기해 스위스 등반가들이 오르고 있다.

꿈에 천 길 낭떠러지 능선을 걸었다. 수백m 절벽을 외줄타기 하듯 걷는데, 겁이 나지 않았다. 한 발 디딜 틈만 있는 면도날 능선이었으나 친절한 백인 남자와 여자가 도와주었다. 여기만 지나면 정상인데, 잠에서 깼다. 길몽인지 흉몽인지는 현실에서 확인해야 했다.

아직 02시 44분. 시차 적응과 컨디션 회복을 위해 눈을 감았다. 묀히요흐 산장(3,657m)의 이불은 푹신했으나, 시차 적응이 덜 되어서인지, 열차로 빠르게 고도를 높여서인지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한국인이 묀히를 등반한 정보는 없었다. 몇 달 전부터 영어로 된 등반기와 영상을 반복해서 봤다. 험악한 바윗길과 압도적 고도감의 설릉을 안정적으로 걷는 모습을 예습하듯 머릿속에 그렸다. 스위스 등반가에게 묀히는 입문용 고산 등반지였으나, 국내 산행만 한 토박이 산꾼에게 묀히(4,107m)는 큰 도전이었다.

묀히요흐 산장에서 본 여명. 시야가 놀라울 만큼 깨끗했다.

스위스 융프라우에는 유명한 3대 미봉美峰이 있다. 아이거Eiger(3,970m), 묀히Mönch, 융프라우Jungfrau(4,158m)다. 미남미녀격 산이 널린 알프스에서도 이곳이 유명한 건 차려진 밥상이라서다. 아무리 멋진 산도 접근이 어려운 첩첩산중에 있으면 빛 좋은 개살구일 뿐.

3개 산은 능선이 딱 보기 좋게 그림처럼 펼쳐진다. 능선이 남서쪽으로 길게 뻗었는데 벵엔, 라우터브루넨, 그린델발트 같은 접근성 좋은 산간마을에서 보면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아무리 사진을 못 찍는 사람이 막 찍어도 달력에서 볼 법한 풍경을 담을 수 있었다.

드론으로 촬영한 묀히요흐산장(3,657m). 태양열을 에너지로 쓰며 헬기로 물자를 실어 나른다. 관광객도 즐겨 찾는 명소다.

순결한 처녀를 지키는 수도승 뮌히

융프라우 철도의 역할도 한몫 했다. 개통 110년이 넘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놀라운 집념의 결정체인 산악철도와 곤돌라가 있어, 해발 3,454m의 융프라우요흐역까지 오를 수 있다. 체력이 약한 사람도 3,000m대 알프스 주능선에 올라 유네스코 자연유산인 알레취 빙하를 걸을 수 있다. 히말라야였다면 위험한 여건을 감내하며 며칠 동안 열악한 대중교통으로 가서, 또 며칠을 걸어야 볼 수 있는 풍경을 편히 즐길 수 있는 것.

수도승이라는 전설과 달리 묀히는 거칠었다. 아이거 북벽보다는 순하지만 거친 남벽을 보는 순간 '사람이 오를 수 있는 산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만남부터 기세에 눌리긴 싫었지만, 우락부락한 거대한 괴물이 귀에 대고 고함을 지르는 것 같았다. 아이거에 비해 점잖다뿐이지, 국내파 토종 산꾼의 눈엔 괴물 같은 산이었다.

융프라우는 처녀성을 간직한 순결한 여성이며, 아이거는 괴물인데, 중간에 수도승인 묀히가 서서 융프라우를 아이거로부터 지켜준다는 그야말로 우화 같은 전설이 깃들어 있다. 눈으로만 보던 알프스 첨봉을 오른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져 있었다.

남동릉 초반의 바윗길. 고도를 높일수록 눈이 많아진다.

46년 경력의 베테랑 산악가이드 빌리엄 마티 슐네거William Marti-Schlunegger는 아침 인사로 "컨디션이 나쁘면 등반을 포기해도 된다"며 "건너편의 더 쉬운 능선을 오르는 방법도 있다"고 일러주었다. 고산병을 우려해 하는 말이었으나, 잠을 설쳤을 뿐 몸 상태는 좋았다.

베테랑답게 그는 모르는 이가 없었고, 사람들은 그를 "빌리"라고 불렀다. 빌리는 어젯밤 장비 체크에서 내 배낭 속 물건 중 절반을 제외시켰다. 거리가 짧은 만큼 가볍게 짐을 싸서 빠르게 올랐다 내려오자는 의미였다. 말수는 적지만 산에서의 동작 하나 하나에 익숙함이 묻어 있어 믿음이 갔다. 등반 가이드치곤 노장인 60대였으나 몸은 돌처럼 단단했다.

2주 동안 악천후였으나 오늘 맑음

산장 문밖으로 나오자 카리스마 넘치는 발쳐호른Walcherhorn (3,692m) 산줄기 너머로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토록 화려한 해돋이를 보았던가. 스케일이 다른 알프스의 완벽한 일출, 나도 모르게 정지해 있었다. 경치에 빠져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었다. '목표는 정상이다. 정신 차리자'를 되뇌며, 채비를 서둘렀다. 굳은 표정의 나와 달리 남미에서 와이나포토시(6,080m)와 피스코(5,765m)를 오른 경험이 있는 사진 담당 민미정씨는 한결 여유로웠다.

하네스(안전벨트)를 차고, 헬멧을 쓰고, 아이스엑스(피켈)를 들었다. 한없이 쾌청한 날씨가 낯선 냄새를 풍기는 한국 산꾼을 환영하듯 맞아주었다. 빌리는 "운이 좋다. 2주 동안 계속 비와 눈이 내려 날씨가 나빴다"고 한다.

드론에서 본 남동릉 지능선 합수점. 묀히요흐 산장으로 뻗은 능선과 만나는 지점이다. 뒤로 융프라우가 명산의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남동 능선이 시작되는 지점은 고요했다. 아침 7시, 융프라우 철도가 잠든 시간 묀히 앞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빌리는 "느낌이 좋다"고 했으나 시작하는 와중에도 '내가 과연 오를 수 있을까'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능선 출발선에 서자 다시 막강한 스케일이 실감났다. 수도승은 전율이 올 만큼 압도적으로 거대했고, 거칠었다. 바람 한 점 없이 맑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최적의 날씨, 괴물이 거친 손을 상냥하게내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홀드가 많아 쉽지만 직벽마냥 고도를 높이는 탓에 긴장을 푸는 것이 바윗길의 관건이었다. 빌리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우리를 이끌었지만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내겐 가혹한 속도였다. 어지러움은 없으나 조금만 움직이면 숨이 차올랐다. 평소 달리기를 띄엄띄엄 한 몸뚱이가 원망스러웠다.

바윗길이 설사면을 만나는 곳에서 중등산화에 크램폰(긴 발톱 아이젠)을 착용했다. 남동릉에 올라타자 거짓말처럼 바람이 불고 구름이 생겼다. 손이 시린 와중에도 가이드 빌리가 꼼꼼히 장비를 확인해 주었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묀히를 오르는 민미정씨. 뒤로 트루베르크(3,932m)의 톱날 같은 능선이 힘 있게 뻗었다.

엄청 가파른데 걸을 수 있을까 싶은 설릉을 지그재그로 올랐다. 안자일렌으로 로프를 연결해 빌리가 선두, 기자가 중간, 민미정 사진가가 후미로 섰다. 오늘 등반을 위해 한 달 동안 헬스장에서 PT개인 트레이닝까지 받은 민미정씨는 쉼 없이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액션카메라인 고프로 음성인식 기능을 끊임없이 사용했는데, 나중엔 "고프로 사진 촬영"하는 소리가 배경음처럼 느껴졌다.

결코 가까워지지 않는 1.3km

거리가 짧아 입문용 등반지라는 별명과 달리 산은 가까워지지 않았다. 벽처럼 가파른 능선이 조금의 누그러짐도 없이, 100만 대군처럼 밀려왔다. 빌리는 로프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멈추지 않고 고도를 높였다. "헉~ 헉~ 헉~ 헉~"하는 숨소리가 몸 안을 진동했다. 어지러움은 없지만 산소가 적은 탓에 숨이 차올라 빠르게 걸을 수 없었고, 빌리는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었다.

오늘의 대장인 빌리와 최대한 템포를 맞추고 싶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점점 "저스트 모먼(잠깐만)"을 외치는 횟수가 늘었다. 숨을 돌리노라면 민미정씨가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내려가도 된다"며 "안전이 제일이다"고 걱정 섞인 말을 했다. 높이의 고도감은 살벌했으나,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다. 백두대간과 정맥을 타면서 배운 건, 아무리 먼 산줄기도 한 발씩 딛다 보면 완주한다는 것이다.

위태로운 남동릉 등반길이지만, 실로 환상적인 알프스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다만 산소가 적고 열차로 고도를 빠르게 올라온 탓에 고소 적응이 관건이다.

한 발씩 집중해서 발을 딛자 등반이 점점 편해졌다. 바윗길에서도 자신감이 생겨 안정적으로 즐기며 오를 수 있었다. 점점 괴물 수도승과 호흡이 맞아갔다. 뒤를 돌아보자, 난생 처음 보는 놀라운 경치였다. 천국이 이런 풍경일까 싶었다. 처음 만나는 세상의 풍경은 감격스러웠으나, 지금은 호흡이 가빠서 감동 받을 여력도 없었다.

올려다보면 '저런 곳을 사람이 올라갈 수 있나' 싶은데, 가이드를 따라 한 발씩 옮기노라면, 어느새 거길 올라와 있었다. 호흡은 다시 차오르고, 능선 양쪽으로 수백m 낭떠러지가 칼을 든 깡패처럼 위협하고 있었다. 칼날 능선이라 확보할 곳이 무척 드물어 한 명 떨어지면, 나머지 사람들이 딸려 추락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그 옛날 군대 시절 유격훈련장에서 죽을 것만 같이 고통스러웠던 순간이 겹쳐졌으나, 지금은 행복한 고통임을 끝없이 펼쳐진 알프스 산맥이 일깨워 주었다.

토요일인데다 인기 등반지라 현지 산악인을 많이 볼 수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능선에는 우리뿐이었다.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빌리가 야속했으나, 46년 가이드 연륜을 믿고 그의 속도에 따랐다.

남동릉으로 되돌아가는 하산길. 후미에서 안자일렌으로 스위스 가이드 빌리가 함께한다.

바윗길과 설사면, 눈과 바위가 섞인 믹스 구간을 지나고 또 지났다. 능선이 끝나지 않는다. 1.3km는 거짓말이었나. 능선은 점점 가늘어지고 독사 같은 소리를 내는 바람이 "쉭쉭"거리며 몸을 휘감았다. 발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이 공포가 될 수 있음을 몸으로 깨닫는다.

아이스 나이프 능선이다. 영상으로 보았던, 꿈에 보았던, 한 발씩 디딜수 있는 외줄타기 능선이다. 빌리가 설명하지 않아도 발 한 번 엉키면 끝장임을 알았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 발을 내밀었다. 시선은 발쪽으로 향했고 어마어마한 낭떠러지가 양쪽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심장이 철렁하는데, 은은한 가스가 몰려와 이불처럼 허공을 덮었다.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며 몸이 차분해졌다. 살벌했던 낭떠러지가 보이지 않자 걸음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문제는 장비였다. 가이드의 반대로 스틱을 두고 왔는데, 피켈의 길이가 짧다 보니 설릉을 짚으려면 허리를 조금씩 숙이거나 비틀어야 했다. 반복할수록 통증이 커졌지만, 추락 시 설사면에서 정지하고 확보점을 마련하려면 이보다 최선의 장비는 없었다. 안전을 기하기 위해 걸을 때마다 허리를 숙여 피켈로 눈을 찍었다.

스키를 메고 오르는 스위스 산악인들. 정상에서 북릉으로 내려가 스키를 타고 하산하는 이들이다. 스위스 산악인들은 6세 이전에 스키를 시작하고 2,000~3,000m 고소를 경험하기에 북한산 산행하듯 빠르게 오른다.

제일 덩치 큰 내가 떨어지면 일행들 다 죽으니 민폐 끼치지 말자는 생각으로 한 걸음에 모든 집중력을 쏟아 부었다. 허공에 구름이 섞여 꿈결 같았으나 도와주는 스위스 청년과 처녀는 없었다. 대신 더 든든한 베테랑 가이드와 끊임없이 사진 찍는 책임감 강한 사진가가 함께였다. 디딜 곳이 점점 좁아지고, 호흡도 조마조마해졌다. 희미한 이 길이 열반으로 가는 길 같았다. 극심했던 고통도 사라지고 호흡도 차분해졌으며, 멈춘 시간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꿈을 꾸고 있는 건지 꿈에서 깬 건지, 알 수 없었다.

끝나지 않는 능선을 건너 뾰족한 꼭대기에 닿았다. 정상임을 알리는 표식이 없어 빌리를 바라보았다. 그는 "스톱Stop"이라고만 얘기했다. "히어 이즈 마운틴 톱?"하고 묻자, 표정 변화 없이 "오케이"라고 했다. 기쁨에 젖은 우리와 달리 워낙 자주 왔던 그는 무감각했다. 아니면 하산길을 걱정하고 있었을 테다.

알프스 첨봉을 배경으로 선 민미정씨. 헬멧과 하네스, 크램폰, 아이스엑스는 대여 가능하며, 스위스 산악가이드와 동행해야 오를 수 있다.

거대한 산의 덩치에 비해 정상은 무척 좁았다. 3개의 능선이 만든 뿔의 정점, 경치를 누리고 싶었으나 가스가 있어 모든 게 희미했다. 빌리는 "오늘 우리가 1등으로 올라왔다"고 했다. 가져온 월간<山> 깃발을 꺼냈고, 민미정 사진가는 언제 챙겼는지 태극기를 꺼내 등정사진을 찍었다.

그때 뒤에서 브로켄Brocken이 나타났다. 누군가 움직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독일 브로켄 산에서 처음 발견해 유래한 것으로 구름에 자신의 그림자가 비쳐, 허공에 검은 사람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나이면서 내가 아닌, 산이 보여 주는 나를 한 번쯤은 보고 싶었다.

눈과 바위가 섞인 믹스 구간이 많지만 난이도는 쉬운 편이다. 높이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다면 암빙벽등반 경험이 없는 워킹산행 마니아도 오를 수 있다.

위태로운 하산, 두 번째 외줄타기

올라오면서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는데, 우리가 정상에 서자 약속한 듯 줄지어 올라왔다. 산장에서 출발한 우리와 달리 아침 8시 열차를 타고 와서 등반을 시작한 이들이다. 멈췄던 시계가 이제야 흐르는 것만 같았다. 모처럼 한국말이 울리던 정상은 독일어로 바뀌고, 사진 몇 컷 찍지도 못하고 자리를 비워 줘야 했다. 사진을 더 찍고, 간식도 먹고 싶었으나, 수도승 정상은 위태롭고 좁았다.

빌리는 하산을 종용했고, 외줄타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내려가는 게 더 위험함을 알기에 당겨진 활시위처럼 근육과 정신이 팽팽해졌다. 내리막길에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수백m 아래 낭떠러지에 가닿았다. 몸이 굳는 것만 같았다. 디딜 곳과 가야 할 길만 집중해서 바라보자, 서서히 공포감이 사라지고, 편안해졌다.

정상에 선 월간山 취재진. 아침 일찍 출발한 덕분에 이날 모든 등반팀 중 첫 번째로 정상에 올랐다.

올라오는 이들에게 길을 비켜주는 것도 일이었다. 워낙 칼릉이라 피켈을 설사면에 박고 낭떠러지 사면으로 나가 발에 힘을 주고 있노라면, 괜히 긴장되었다. 백인이 아닌 사람은 우리뿐이었는데, 다들 오르내리는 속도가 상당했다. 전설적인 스피드 등반가 율리 스텍Ueli Steck(1976~2017)의 고향다웠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스위스 산악인들은 3세 때부터 스키를 타거나 산을 경험하기에 3,000m대 등반이 익숙하다고 한다.

가이드 빌리는 위험하다 싶은 곳에선 로프 거리를 좁히며 매서운 눈으로 주시했다. 한 번 쉬었다 가자는 말도 없이 몰아붙이는 무뚝뚝한 가이드였으나 안전에 관한한 스위스 시계처럼 정확했다.

융프라우요흐역에서 산장으로 이어진 만년설원. 제설차가 다져놓은 길 밖에는 크레바스가 있을 수 있어 위험하다.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융프라우의 산세가 화려하다.

정상에만 구름이 걸려 있었다. 고도를 내리자 영상과 사진으로 보았던 풍경이 펼쳐졌다. 사진과는 차원이 달랐다. 생생한 알프스 공기와 순백의 압도적 산줄기, 지나치게 아름다워 감각이 소화하기 어려웠다. 경험해 본 적 없는 거대한 세상과의 만남이었다. 설악산도 아름답지만, 이건 새로운 우주의 탄생 같은, 빅뱅의 경험이었다.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으나, 헐떡임의 고통이 더 가까이 있었다.

수도승 묀히는 죽비로 인간의 나약함을 끊임없이 내리쳤다. 가르침을 주려는 것이었다. 고통스러우면서 행복한 축복 같은 등반이었다. 우물 안 개구리이자 하수였음을, 그러나 지금 여기 있는 스위스 산악인 누구보다 행복한 하수임을 자처할 수 있었다.

스위스 가이드의 직업 정신

가파른 능선을 크램폰과 피켈로 균형을 잡으며, 느리게 내려갔다. 오늘 등정은 1등이지만, 하산은 수없이 추월당했다. 부족한 산소를 공급하느라 빠르게 숨을 몰아쉬며 몸의 아우성을 감당하느라 추월하는 유럽 사람들을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마지막 바윗길을 더디게 내려서자 설원이었다. 먼저 하산한 백인들이 희희낙락하며 로프를 정리하고 있었다. 긴장이 풀려 족쇄 같던 안자일렌을 풀고 물을 마시는데, 가이드 빌리가 고함을 질렀다. 50m만 가면 관광객이 지나는 안전한 눈길이지만, 그 사이에 크레바스가 있을 수 있다는 것. 99%의 등반이 끝났는데도 안전만 생각하는 빌리의 직업 정신에 탄복했다.

비로소 하이파이브를 하며 눈길에서 로프를 풀었다. 인도어와 중국어가 들리는 북적이는 길에서 묀히를 바라보았다. 저 무시무시한 덩치 꼭대기에 다녀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꿈에서 깬 것만 같았다. 격렬했던 한 편의 짧은 인생을 꿈 꾸고 일어난 것만 같았다. 문득 구름에 가렸던 건너편 융프라우의 구름이 걷히며 여왕의 등장 같은 황홀한 산세가 드러났다. 꿈에서 깨어나도 여전히 꿈결이었다.

46년 경력 산악 가이드 빌리엄 마티 슐네거.

interview

"스위스 시계처럼 안전엔 타협 없는 프로 가이드"

46년 경력 산악 가이드 빌리엄 마티 슐네거

묀히 등정은 스위스 산악 가이드 덕분이었다. 그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말수 적고, 딱딱하고, 인정 없어 보이지만, 안전에 관한한 희생적이고 철저하며 정확하다. 명품 스위스 시계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이 가는 산 사나이였다. 등반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더 이상 책임질 것이 없을 때 그제야 인간적인 면모로 다가왔다. 다시 알프스 험봉을 간다면 나는 백발의 베테랑 가이드와 다시 로프를 묶을 것이다.

인터라켄에서 70km 떨어진 스위스 산간도시 그슈타트Gstaad가 고향인 빌리엄 마티 슐네거는 1977년부터 알프스 등반가이드로 일했다. 혼자 산행과 등반을 하다 더 많은 경험을 쌓고자 가이드를 시작했다. 손님이 몰리는 여름 등반 시즌에는 거의 매일 산행과 등반을 한다. 그래서 알프스의 숱하게 많은 산을 올랐으며, 융프라우 일대의 산은 그에게 익숙한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알피니즘이 시작된 곳이자 산악인의 성지로 꼽히는 아이거 북벽은 원체 어렵지만, 최근 기후 변화로 날씨가 급변하고 낙빙과 낙석, 낙수가 많아 더 어려워졌다. 이곳 스위스 가이드들 중에서도 완등을 못 한 이들이 많을 정도로 아이거 북벽은 한계를 넘어서는 등반의 상징이다. 대기만성형인 그는 60세에 아이거 북벽을 처음 등정했다. 60대에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로 "러닝, 클라이밍, 자전거"를 꼽는다. 대자연 속에서 운동을 즐기면서 건강도 지키는 것.

투잡(2가지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등반 비시즌에는 그린델발트에서 기념품 가게를 운영한다. 2,000m 이하 산으로 이루어진 한국의 워킹산행 마니아들에게 코스 추천을 청하자 "묀히"를 꼽는다. 빌리는 "스위스에서도 보는 산이 아닌, 오르는 산으로 묀히는 무척 인기 있다"며 "융프라우 3대 미봉 중에서 가장 오르기 수월하고, 별다른 등반 기술 없이도 체력만 있다면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다만 날씨와 고산에서의 컨디션이 중요해서 "날씨가 안 좋거나, 컨디션이 안 좋으면 산장에 머무르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빌리는 "체력이 부족하거나, 무서우면, 내려오면 된다"며 "어려운 상황에선 하산하면 되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고 안심시킨다.

하산 후 민미정씨가 빌리에게 "우리가 너무 느려서 미안했다"며 "무서워서 발이 잘 떨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고 말하자, 그는 "빨리 가는 건 중요하지 않다"며 "손님이 느리고 겁내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가이드가 있는 것이다. 안전하게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게 더 중요하다"고 표정 변화 없이 말한다.

세월이 흘러도 정확히 책임을 다하는, 스위스 시계 같은 산 사나이와의 헤어짐이 아쉬웠다.

묀히 등반 가이드 신청

outdoor.ch/en/outdoor-activities/moench

빌리 매장 홈페이지

marti-grindelwald.ch

등반 정보

'묀히 등반 정보' 기사 참조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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