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뚱뚱했다.”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2023. 7. 14.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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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선정한 이 주의 신간. 출판사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들이 꽂힌 한 문장.

우리가 살에 관해 말하지 않는 것들
오브리 고든 지음, 장한라 옮김, 동녘 펴냄

“나는 늘 뚱뚱했다.”

‘뚱뚱한’ 저자가 비행기에 타자 옆자리에 앉은 남자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한다. “도저히 믿을 수 없군.” “이런 식으로 자리를 더 확보하는군요.” “이봐요, 제가 보행 보조기를 쓰는 사람이나 임신한 사람한테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요.” 결국 옆자리 남자는 온갖 불평과 항의 끝에 자리를 옮기는 데 성공한다. 언제부터 획일적인 사이즈의 몸만 허락되고, 인정받게 됐을까? 저자는 굴하지 않는다. “인간이 존엄성을 누리는 데 필요한 전제조건은 없다. 그런 이유로 신체적 정의나 뚱뚱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정의를 볼모로 삼고 경고해서도 안 된다.”

 

 

 

 

 

 

어쩌다 대한민국은 불평등 공화국이 되었나?
김윤태 지음, 간디서원 펴냄

“지나친 불평등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한국은 매우 불평등한 나라다. 최상위 1%가 국민소득의 14%, 상위 10%가 46% 정도를 차지한다.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강남/강북이 첨예하게 1등/2등 국민으로 갈려 심지어 세습된다. ‘시장 자유 강화(노동, 유연화, 부자 감세 등)’ ‘586 기득권 척결(세대론)’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하지만 과연 유효적절한 방안일까? 저자는 이런 방안들이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거나 세대론으로 계급갈등을 은폐하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이와 함께 불평등은 바꿀 수 없는 추세라는 ‘운명론’에 대해 정부 정책 및 사회적 주체들의 행동양식 변화에 따라 불평등 수준을 바꿀 수 있다는 ‘낙관론’을 견지하며 세부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기후 책
그레타 툰베리 지음, 이순희 옮김, 김영사 펴냄

“최악의 경우 구름이 티핑포인트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책은 많다. 그렇다면 이 책은 왜 특별한가? 지구와 인간 삶 전반을 횡단적으로 연결하겠다는 저자의 의지 때문이다. 그레타 툰베리는 과학자·활동가·작가·강연자들 103명에게 전문 분야별로 글을 써달라고 의뢰한다. 그렇게 모은 글을 ‘기후위기의 작동 방식과 효과’로, ‘실패하고 있는 현재의 노력’과 ‘당장 실행해야 할 계획’이라는 큰 틀로 나눠 묶었다. 한 공학자는 글로벌 위어딩(지구 괴이화)이라는 단어로 극한 기상 현상을 해설한다. 한 소아과 의사는 기후와 병원균 항생제 내성 증가의 연관성 연구를 설명한다. 한 원주민 활동가는 사헬 지역에서 기후위기와 싸우는 여성 활동가들을 소개한다. “기후위기의 희생자로만 살고 싶지 않다.” 모두의 외침을 새롭게 갱신된 지식과 구술로 엮었다.

 

 

 

 

 

 

손쉬운 해결책
제시 싱걸 지음, 신해경 옮김, 메멘토 펴냄

“우리는 손쉬운 해결책에, 설익은 행동과학에 자꾸만 속는다.”

자기계발서 광풍은 행동과학이 이어받았다. 긍정적인 사고가 개인의 운명을 개선할 수 있다는 세계관을 유지한 채, 각종 심리학 연구와 실험이 뒷받침되었다. 그릿, 넛지, 긍정심리학 같은 행동과학 아이디어가 그런 예다. 과학적 근거가 탄탄했던 것은 아니다. 데이터가 조작되거나 연구가 부실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정말로 자존감을 높이면 학력 격차도 불평등도 해결할 수 있는가? 사회문제를 치료할 수 있는 매끈한 처방전이 존재하는가?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다들 사실이라고 하니까 믿는다는 태도는 과학 저자로서 썩 훌륭한 태도가 아니다”라는 반성에서 출발한다. 행동과학 비판을 넘어, 그 설익은 과학이 우리에게 왜 그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은유 지음, 읻다 펴냄

“제가 감정을 경험하고 언어로 쓸 때, 그것도 번역이더라고요.”

예나 지금이나 ‘판을 깨려는’ 절망의 기대를 가진 사람들은 쉽게 판단 내린다. 무언가가 끝났다거나 망했다면서. 문학은 끝났고, AI 번역이 대체할 거라고 쉽게 예측한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이다. 무언가 끝나고 망한 자리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 있다는 걸. 저자 은유가 만난 번역 ‘노동자’ 7명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문학에 대한 사랑 하나를 쥐고 정답이 없는 번역의 세계를 탐험하는 사람들. 이들의 감탄하는 능력은 이타적으로 발휘된다. 오해를 무릅쓰고 이해의 자리로 가기 위해 힘과 시간을 쏟는다. 단순한 인터뷰집이 아니다. ‘인터뷰 산문’이다. 번역가들의 말과 삶이 저자를 통과해 나온 ‘또 하나의 번역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인간의 자리
박한선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인간은 동물의 왕국 어딘가에 있다.”

저자는 편견 중 가장 없애기 어려운 것으로 ‘아름다운’ 편견을 든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우월한 영혼을 가졌다는 믿음, 이를 통해 자연계의 수장이 되었다는 믿음이 그런 종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신의 자리 바로 아래 위치를 차지한다. 인류학과 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이런 믿음이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총체적 오해라고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 우리의 행동은 그저 인간이라는 종이 겪어온 시공간적 생태환경에 대한 적응일 뿐이다.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새 이야기를 더 많이 다루는 이유는 ‘인간이나 새나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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